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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8)

문학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름 프란츠 카프카에게 上

어디를 가면 이 밤에 묵을 숙소를 찾을 수 있는지 말해다오

고독의 반려자여,
41세는 세상과 작별하기엔 너무나 이른 게 아닐까요?
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폭력이나 부조리함과 더불어
고립된 영혼의 절망에 맞서
끝없는 용기와 투쟁을 보여준 당신에게
늘 감사합니다.
안녕, 안녕, 카프카!
© shutterstock
인생이란 커피보다 더 쓰지 않고, 에그타르트보다 더 달콤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자기를 두고 “탄생을 앞둔 긴 망설임”이라고 했던 작가 때문이었지요. 식탁에서 빵 부스러기를 흘린다고 트집을 잡는 고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고통을 느끼고, 죄의식으로 얼룩진 내면으로 달아나 한껏 웅크렸던 청년, 세계의 부조리함에서 불안과 소외를 겪으며, 폐결핵과 고독이라는 견고한 성(城) 안에서 20세기가 낳은 가장 문제적인 작가, 체코의 유태인 게토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소설을 썼던 프란츠 카프카(1883~1924) 바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문학청년 시절, 당신이 그랬듯 골방에 틀어박혀 나는 고립과 고독 속에서 당신의 〈굶는 광대〉나 〈시골의사〉 같은 단편들을 필사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문학이 주는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위안”에 기댈 수밖에 없던 탓이었겠지요.

몇 해 전 여름, 우리 부부는 중부 유럽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프라하가 당신이 나고 자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고색창연한 보헤미아의 수도, 유태인 지구, 독일인 지구, 체코인 상인지구로 분할된 이 프라하를 두고 “나의 어머니”라고 했지요. 거기에 덧붙여

“이 어머니는 여러 개의 발톱을 갖고 있다”라고 했어요. 프라하 중심부를 가르며 흐르는 블타바강, 물결이 은비늘인 듯 반짝이는 강에는 백조들이 여럿 떠 있으며, 그 강을 가로질러 걸쳐진 카를교에는 예술가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홈리스들이 멋진 개를 데리고 관광객들에게 푼돈을 구걸하고 있었지요.

그 풍경은 세상이 그다지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신호를 주는 듯합니다.

길모퉁이를 돌면 마주치는 광장에는 ‘카프카’란 이름을 딴 카페도 있는데, 그 이름에 꾀여 들른 관광객들에게 칵테일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고 있었지요. 카를교를 건너면 ‘카프카박물관’이 나옵니다. 전시품들이 기대만큼 풍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행적을 더듬어볼 수는 있었지요. 박물관 방명록에 꽤 긴 글을 남기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늦은 오후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이었습니다.

당신이란 존재를 빚은 것은 프라하라는 도시, 유태인이라는 혈통,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 타고난 유전적 기질 따위겠지요. 남부 보헤미아의 푸주한이던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당신 아버지는 지방을 떠돌며 행상을 하다가 프라하에서 작은 양품점을 열었어요. 소매상점으로 시작한 사업이 번창해서 도매상점으로 규모가 커졌지요. 돈은 꽤 모았지만 아버지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제압하기 일쑤였습니다. 섬세한 감정의 결을 지닌 당신은 매사에 큰소리로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불화했지요. 키가 182센티미터나 되는 유태인 청년은 법학을 전공하고, 지방법원과 형사법원에서 법률 실무를 보다가 그만둔 후 보헤미아 왕립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들어갔지요. 공사에 재직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틈날 때마다 여러 카페를 드나들며 지식인, 예술인들과 유대를 이루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당신은 1908년에서 1922년까지 14년 동안 공사 직원으로 근무했는데, 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퇴근하고 한밤중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일이 당신의 유일한 욕구였지요. 밤새워 소설을 쓴 탓에 피곤을 느낀 당신은 가끔 상사에게 거짓말을 했지요. 〈판결〉을 밤새워 쓴 이튿날에는 직장 상사에게 “저는 오늘 아침 일찍 가벼운 기절을 했고 약간의 열이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비록 아마도 열두 시 이후가 되겠지만, 사무실에 나갈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썼지요. 당신은 퇴근한 뒤에는 산책, 목공소 일, 승마, 수영, 조정(漕艇)같이 몸을 쓰는 활동에 매달렸습니다.

1927년 7월, 당신은 친구인 후크 베르그만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 대신 나는 행복의 문턱에 있다”고 했지요. 어쩌면 당신은 애초 불행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청소년기에 보여준 당신의 활력과 명랑성을 보면 그런 예단은 틀린 게 분명합니다. 당신은 시골의사인 외삼촌 지크프리트 뢰비의 집에서 이종사촌들과 어울릴 때 청춘의 특권으로 비상한 쾌활함을 누릴 수 있었지요. 젊고 명랑한 사촌누이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도 타고, 수영도 하고, 건초더미에서 잠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누이들과 당구도 즐기고, 산책도 하고, 숲속으로 춤을 추러 갔어요. 당신은 나중에 이 시절을 회고하며 이 세계에서 누린 완전한 행복의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지요. 당신이 청소년기의 특권으로 행복한 시절을 누린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율리에 보리체크나 펠리체 바우어, 밀레나 예젠스카와 같은 여성과의 연애에서는 머뭇거림과 실패 사이에서 부유하는 보트처럼 떠 있었지요. 당신은 “나의 존재는 당신에게 헌정된 것입니다”라거나 “나는 당신에게 갔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당신에게. 당신 곁에 숨고자 당신에게 갔습니다. 당신의 두 손 사이에 얼굴을 묻습니다. 너무나 행복했고, 자랑스러웠으며, 자유로워졌고, 강해졌습니다”와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연애편지를 썼습니다만 어쨌든 약혼과 파혼을 하면서도 끝내 결혼까지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타오르는 불꽃같던 밀레나에게 쓴 편지는 당신 사후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란 책으로 엮여 출판됐습니다.

1986년 프라하의 한 헌책방에서 뜻밖에도 당신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 한 묶음이 발견되었지요. 당신에게 엄혹한 훈육의 주체였던 아버지는 집과 가게에서 법의 화신이고, 아니, 법 그 자체로 군림했지요. 당신은 그런 아버지 앞에서 늘 불안과 함께 인생 최대의 굴욕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와 마셨던 맥주에 대해서도 썼더군요.

“저는 항상 술이 잘 깨지 않았지요.”

이런 사소한 고백은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술이 센 편은 아니었나 봅니다. 누군가는 이 편지들에서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한 흔적을 엿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이것도 저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떴습니다. 1924년 6월 3일, 빈 근처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한 뒤 프라하 동쪽에 새로 조성된 유태인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고독의 반려자여, 41세는 세상과 작별하기엔 너무나 이른 게 아닐까요?

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폭력이나 부조리함과 더불어 고립된 영혼의 절망에 맞서 끝없는 용기와 투쟁을 보여준 당신에게 늘 감사합니다.

안녕, 안녕, 카프카!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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