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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강변가요제〉 우승자 이상은

앨버트로스처럼 자유로운 영혼

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에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대학가요제〉보다 몇 년 늦게 시작한 〈강변가요제〉는 MBC의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이었다. 〈강변가요제〉는 우리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가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1회와 2회 때는 대상 없이 금상이 최고였다. 1회 대회 금상은 홍삼트리오. 형제 둘과 사촌 한 명으로 구성된 홍 씨 세 명이 ‘기도’라는 노래를 불렀다. 우렁찬 남성 하모니가 기가 막히게 멋있어 굉장히 좋아했던 노래다.

이선희는 1984년 대회에서 ‘4막 5장’이라는 남녀 혼성 듀엣의 일원으로 출전해 ‘J에게’로 대상을 차지했다. 빅마마의 신연아, 장윤정 등이 모두 〈강변가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현미도 1981년 중앙대 약대생들로 구성된 그룹 ‘인삼뿌리’의 일원으로 참가해 장려상을 탔다. 그때는 그룹 이름도 논두렁 밭두렁, 한마음, 송골매, 노고지리, 인삼뿌리 등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어느 해는 봄, 어느 해는 겨울, 일정치 않게 열리던 〈대학가요제〉와 달리 〈강변가요제〉는 이름이 강변이라 강가에서 개최하려니, 여름철 청평유원지 등에서 열렸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도 여름방학이면 서울에 와서 〈강변가요제〉를 매년 생방송으로 봤다. 1988년 잊을 수 없는 그해 〈강변가요제〉 대상곡 광경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에 나온 이상은이 뽀글머리에 맘보바지, 무릎을 덮을 듯 말 듯 긴 블라우스인지 코트인지 모를 웃옷을 입고 탬버린을 흔들며 막춤을 출 때, 노래에 대해 어쩌고저쩌고할 생각도 못 했다. 그냥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라며 넋 놓고 멍하니 화면을 쳐다봤다.  

아마도 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우의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이 대상을 탈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금상을 타고, 대상은 막춤의 이상은에게 돌아갔다.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고 노래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의외였다. 그다음 날인가, 이상은이 〈강변가요제〉 우승자로서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했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가요제에서의 선머슴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모자를 쓰고 단정히 앉아 이야기하는 어린 숙녀였다. 그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술은 그때 이미 알아봤다.

이상은을 다시 본 건 내가 미국으로 건너오고 한참 뒤다. 우연히 다른 가수의 노래를 찾다 발견한 곡이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이다. ‘담다디 아냐?’ 하는 마음에 들어봤는데 웬걸. 처음 북소리부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우리 전통 가락도 들리고 재즈 리듬도 들리고 남미 민속음악 분위기도 나는 기가 막힌 조합의 음악이었다.


맘보바지 이상은의 첫인상…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공무도하가’를 배운 기억이 났다.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를 타며 불렀다는 슬픈 노래다. 학창 시절 여옥이 부른 노래의 가락은 어떤 것이었을까 늘 궁금했다. 이상은이 붙인 가락이 원 곡조와는 많이 달랐겠지만, 글자로만 존재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그 노래에 그가 처음으로 음악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MP3에 다운 받아 출퇴근 시간에 늘 들었다. 언제나 헷갈리던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후렴구도 순서대로 외우게 되었다. 그러다 6집 앨범의 ‘삼도천’도 내 가슴에 푹 꽂혔다. ‘공무도하가’처럼 여러 장르와 민속 음악이 결합된 듯하면서 뉴에이지풍의 맛이 훨씬 더 강한 노래다.

5집에 실린 ‘언젠가는’도 좋아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가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회심곡에 “네가 본래 청춘이며, 내가 본래 백발이냐”라는 구절이 있다. 젊은 날엔 난 그냥 젊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래 주름살투성이인 것 같지. 두고 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안다.

탬버린을 흔들며 막춤을 추던 18세의 이상은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30여 년이 흘렀다. 한때 이상은의 호가 담다디인가 할 정도로 담다디 하면 이상은, 이상은 하면 담다디였다. 이제 이상은은 먼 세계를 떠돌다 돌아와 삶과 죽음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또 홀연히 떠난다. 마치 앨버트로스처럼.

매번 돌아올 때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한 가지 변함이 없는 것은 그에게서 담다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도하가〉는 변한 이상은을 처음 만나게 해준 앨범이라 내게 더욱 오래 남아 있다.

오래전에 읽은 ‘공무도하가’ 평에서 기자가 실험적인 음악을 극찬하면서도 이상은의 가창력이 늘 아쉽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지도, 음역대가 넓은 것도 아니고, 꺽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튀지 않고 여러 악기 중 하나가 되는 그의 음악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그래서 목소리 자체보다 가사에 집중해 곱씹어 듣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끝없이 여러 질문도 던지게 된다.

앨버트로스가 된 이상은의 노래를 이야기하는 나의 글에 유난히 물음표가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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