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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5)

당신의 삶은 ‘인간 실격’ 자체였지만…다자이 오사무께 上

퇴폐와 불안을 집어삼키고

“당신이 삶의 경영에 실패한 것은 나쁜 시대가 빚은 불운에 빠진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야망이 도발한 전쟁과 수시로 울리던 공습 사이렌의 불안, 군수품 생산 탓에 생긴 민간 경제의 파탄 따위가 집어삼켰지요.
당신의 퇴폐와 불행은 격동하는 시대의 불안, 세계적인 불황의 영향, 전범 국가의 오욕에 대한 반동일지 모르지요.”
다섯 번의 자살 미수와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과 폐결핵, 퇴폐와 타락에서 허우적이다 서른아홉 나이에 동거 여성과 도쿄의 강물에 뛰어들어 죽은 당신은 우리 세대에게 청춘의 덧없는 상징 같은 존재였지요. 왜 모든 청춘은 절망을 몇 개씩 거느린 채 가망 없는 희망을 품고 방황하는 걸까요?

오, 불운과 불행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시대를 가로질러 질주한 다자이 오사무(1909~1948)! 메이지 시대의 끝자락인 1909년에 태어난 당신은 유년기 모유 수유의 절대 결핍이 만든 불행, 패전국의 절망 따위를 내면화하며 자기 방기의 삶을 살았지요. 영락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며 스스로를 늘 지는 사람이라고 하던 당신이 삶의 경영에 실패한 것은 나쁜 시대가 빚은 불운에 빠진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시대의 청년들이 그랬듯이 당신의 청춘도 일본 제국주의의 야망이 도발한 전쟁과 수시로 울리던 공습 사이렌의 불안, 군수품 생산 탓에 생긴 민간 경제의 파탄 따위가 집어삼켰지요. 당신의 퇴폐와 불행은 격동하는 시대의 불안, 세계적인 불황의 영향, 전범 국가의 오욕에 대한 반동일지 모르지요.

친구에게 “나는 지금 너무 외로워. 오늘부터 수족관을 만들 계획이야”라고 편지를 썼던 소년의 외로움을 우리는 세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우리 세대는 신구문화사판 ‘세계전후문학전집–일본편’에 실린 《사양(斜陽)》을 읽고 당신의 ‘낭만적 자멸파’ 문학세계에 입문했지요. 당신은 비굴하고, 비루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멸망에 대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은 《사양》은 아름다웠어요. 일본의 데카당스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당신의 고결한 작품과 엄살, 비굴함으로 얼룩진 인격 사이의 비대칭성 때문에 곤혹스러웠습니다. 당신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누추한 삶은 도무지 존경할 수가 없으니까요.

좀처럼 쇠락과 퇴폐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신은 어느 글에선가 “나는 새도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그리고 인간도 아니다”라고 고백했지요. 당신보다 16세나 어린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소년 시절부터 당신 소설을 좋아했지만, 당신의 결함이 많은 삶에 크게 실망한 뒤 “다자이의 성격 결함이라는 것들은, 적어도 그 절반은 냉수마찰이나 기계 체조 같은 규칙적인 생활만 하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일갈했지요.

“부탁이 있습니다. 이건 내달 30일까지 확실하게 돌려드리겠습니다. 20엔, 사장님께 빌릴 수 있을까요. 다음 달 말일이면 고향에서 돈을 부쳐줄 것이니, 이건 틀림없이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약속드립니다. 20엔 정도, 긁어모으면 모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워 다른 수단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연말에 아무래도 벗어날 수 없는 까다로운 지출이 있어 고민 끝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1937년 12월 21일, 당신이 한 지인에게 쓴 편지의 일부입니다. 20엔이 당시 화폐 가치로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큰 액수가 아닌 건 분명하지요. 문맥을 보면 당신이 돈 부탁을 한 게 처음은 아닌 듯하군요. 당신이 쓴 편지들을 보면 여러 지인들에게 구질구질한 부탁을 늘어놓기 일쑤였지요. 당신의 절박한 호소에 선뜻 호의를 베푼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 굴욕과 모욕을 준 사람이 더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당신을 괴롭힌 것은 가난과 고아의식인데, 당신이 처음부터 가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 아버지는 대지주이자 중의원 의원으로 고향에서는 고액 납세자 명단에서 빠진 적 없는 지방 토호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막대한 부를 쌓는 과정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지요. 농민과 소작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빠는 고리대금업으로 만든 것이었으니까요. 어쨌든 당신은 그런 가문의 7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어요. 당신의 형제자매는 모두 열한 명. 그런데 당신이 태어날 무렵 이미 맏형과 둘째 형은 죽고 없었습니다. 대가족과 하인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어린 당신은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지요. 풍족한 환경이지만 아버지는 엄격하고, 어머니는 병약한 탓에 당신은 일찍이 외로움에 눈떠 민감한 소년으로 자라났어요. 유모와 숙모에게 맡겨져 양육된 어린 당신의 내면에 깃든 고아의식은 그런 가족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빚어진 것이겠지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면서 당신은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지요.

그 해방감은 무절제한 향락 생활과 과도한 소비로 치닫게 했습니다. 부모가 보낸 고액의 생활비를 탕진하며 유곽에서 만난 기생과 동거하고, 다른 한편으론 공산당 조직에 가입해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지요. 당신은 기생과의 결혼 문제로 가문에서 파문당한 뒤 하숙집에서 음독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 얼마 뒤 긴자의 카페에서 만난 여급과 바다에 뛰어들어 두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요. 여인만 죽은 그 사건으로 당신은 자살방조죄로 기소되어 유예처분을 받았습니다.

부모가 달마다 보내는 송금이 끊기자 당신은 금세 파탄에 빠졌어요. 당신은 스스로 생계를 꾸릴 만한 능력이 전무했지요. 누구에게나 가난은 가장 약한 무릎관절 같은 것! 당신의 가난은 치명적인 후천성 면역결핍증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지고, 생활은 속수무책으로 누추해졌지요. 당신이 좌익 운동에서 발을 빼고 문학에 투신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거듭되는 실패에 무기력해지고, 실존의 대열에서 떨어져 낙오자가 되었지요. 당신을 연민하는 여인의 품과 약물 중독 그리고 엉망진창인 생활로 막무가내로 도피했지요. 그다음은 나락, 나락, 나락!

당신은 ‘인간 실격’ 그 자체였어요. 앵두가 익는 초여름에 당신은 동반자살로 그 추악한 삶에 마침표를 찍지요. 지인들에게 구걸하듯 빌린 빚을 한 푼도 청산하지 못한 채로. 강물에 투신한 당신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른 건 엿새 뒤. 1948년 6월 19일, 공교롭게도 당신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퇴폐와 허무를 빚어 만든 고결한 문학의 제단에 생을 바친 셈이지요. 당신의 문학은 진부한 불행과 외로움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실존의 전사가 남긴 유언일까요. 후대 독자들은 패자의 유언 같은 당신의 문학에서 한 줄기 미와 숭고의 가능성을 찾겠지요. 해마다 기일이면 당신의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당신의 묘비를 찾아와 묘비 테두리에 파인 홈에 빨간 앵두를 꽂는다지요.

굿바이, 다자이 오사무.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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