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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

농사도 똑똑하게! 스마트팜 바나나 농부

글·사진 : 서경리 기자

향긋하고 찰진 바나나를 맛봤다면 국내산 바나나일 확률이 높다. 후숙하는 수입 바나나와 달리, 충분히 익은 후에 재배하는 국내산 바나나는 맛이 촘촘하다.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는 스마트팜 기술로 제주도에서 바나나 농사를 짓는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첨단 IT 기술을 농사에 적용하는 그는 지역 농민들에게도 이 기술을 알리며 농촌의 소득 향상을 돕고 있다.
© 제이디테크
농업에도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 농사가 아닌,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을 접목해 품종을 개량하고 정보통신과 환경공학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팜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제이디테크는 원격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유지·관리하는 스마트팜 시스템을 개발해 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지역에 이 기술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돕는 스타트업이다. 1인 창업가이자 농부인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는 스마트팜 운용 기술로 창업 3년 만인 지난해, 연 매출 10억 원 가까이 올렸다.

제이디테크가 개발한 스마트팜 전용 플랫폼은 스마트 센서를 통해 온도와 습도, 조도, 이산화탄소, 토양 자료를 수집해 크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고, 학계나 기관에서 연구한 작물별 생육 자료를 비교·분석한 후 농작물이 자라기 적합한 환경을 농가에 알려준다. 또 이렇게 모은 정보를 토대로 시설물 설비와 환경을 제어하는데, 양액기(수경 재배에 필요한 기기)나 열풍기, 이산화탄소 공급기, 관수 제어기 등 대부분의 설비는 원격 조정이 가능해 편리하게 작물을 관리할 수 있다. 작물의 수확 시기를 예측하거나 조절하는 등 다양한 활용도 가능하다.

“부모 세대의 농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농촌에는 답이 없어요. 기존 방식을 바꿔 인력을 줄이고 부가가치 높은 작물을 키워야 해요. 스마트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농작물의 양이나 맛을 예측할 수 있어요. 지금은 과학적으로 똑똑하게 농사지어야 할 때입니다.”



제주를 떠났다가 다시 제주로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건 몇 해 전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큰일을 하려면 뭍으로 나가야 한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대로 섬을 떠나 도시에 정착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휴대용 전자음악 제작기기를 개발해 해외로 수출하는 등 엔지니어이자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고향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무엇보다 평생 밭에서 양파나 마늘을 재배해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가 홀로 남아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일흔이 훨씬 넘은 어머니가 아직도 밭에서 농사를 지으세요.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덜어드릴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진 사물인터넷 기술을 농업에 연결해보자고 생각했죠. 농업은 낙후한 산업으로 여겨지지만, 엔지니어로서 농업에도 사업적으로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창업이란 결국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시작되거든요.”

김희찬 대표는 2018년 6월 법인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스마트팜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01 식물 재배용 플레이트 LED 보조광 밑에서 자라는 바나나 묘종.
02 스마트팜 교육장 ‘팜랩올레’에 설치된 스마트팜 현황판. 스마트팜 내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03 제주 김녕에 자리한 제이디테크의 스마트팜에서 바나나가 잎을 뻗고 있다. 단년생 식물인 바나나 잎은 최대 1.5m까지 자라며 줄기는 6개월 정도면 2~5m까지 성장한다. 열대과일인 바나나는 20도 이상 기온을 유지해주어야 활발하게 자란다. © 제이디테크
04 제이디테크의 스마트팜에서 열매 맺은 국산 바나나. 바나나는 환경만 잘 갖추면 1년에 두 번 정도 수확 가능한데, 줄기 하나에 100개 넘는 열매가 열린다. © 제이디테크
국내산 바나나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

김희찬 대표가 스마트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변에 알릴 때마다 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농사는 지어봤냐”는 질문이다. 그는 직접 스마트팜을 운영하면서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2019년 여름 어머니의 밭 2000평(6600㎡) 중 1000평(3300㎡)에 스마트팜 농사를 시작했다.

그가 첫 농작물로 선택한 것은 바나나다. 그는 이미 잘되고 있는 사업에 뛰어드는 건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작물을 찾았고, 바나나를 만났다. 바나나는 국내 열대과일 소비량 1위 작물로, 대부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주도에 바나나 농가가 더러 있었지만, 우루과이라운드로 수입 제한이 풀린 값싼 외국 바나나가 밀려들어 오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바나나는 딸기나 토마토처럼 단년생 식물이에요. 50cm 풀이 반년 만에 2~5m만큼 자라고 1년 안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요. 제주도에서 흔히 키우는 감귤이나 레드향 같은 만감류는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3년이 걸려요. 신생 스타트업에는 너무 긴 기다림이죠. 13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시장이 있는 사업이 잘된다’는 점이었어요. 국내 바나나 시장 규모가 8000억 원 수준이에요. 대부분이 수입 바나나고, 국내산은 30억 원 정도죠. 국산 바나나는 수입보다 단가가 높아요. 수입 바나나가 한 손 1만 원이면, 국산은 2만 원 수준이죠. 그런 면에서 바나나는 분명 시장성이 있는 상품이에요.”

국내산 바나나는 맛이 일품이다. 해외 농산물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더라도 수입 과정에서 방부 처리하다 보면 맛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열대과일을 하우스에서 농사지어봐야 얼마나 맛있을 수 있겠냐며 반신반의했는데, 지난해 수확한 바나나를 제 아이들이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좋아해요. 유통의 비밀인 거죠. 수입산 바나나는 녹색 상태로 들어와 한국에서 후숙 과정을 거치는데, 국내산 바나나는 현지에서 잘 익은 상태로 따서 바로 배송하니 맛이 좋을 수밖에요.”

김희찬 대표는 바나나의 최적의 생장 조건을 맞추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온도와 습도, 생장에 필요한 이산화탄소 농도와 토양 산도 등 생육 조건을 센서로 체크하고 이를 앱에 연동해 매일 확인하며 최적의 바나나 800그루를 키워냈고, 그 결과 완판으로 이어졌다.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스마트팜 교육장 ‘팜랩올레’. © 제이디테크
맞춤형 스마트팜 기술로 농가 소득을

스마트팜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도 벌써 20년. 하지만 스마트팜으로 성공을 이룬 사례는 흔치 않다. 수백 개의 스마트팜 농장 중 흑자를 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고가의 기기 때문에 일반 농가에서는 접근이 어렵다. 김 대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창한 스마트 기기가 아닌 각 농가 맞춤형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농장의 문제를 ‘가성비’ 있게 해결하는 게 스마트팜의 본질입니다. 첨단 기기만 적용해선 해결되지 않아요. 농가마다 문제가 다 달라요. 이산화탄소 결핍이 문제인 곳도, 습도가 문제인 곳도 있습니다. 처방보다 진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았어도 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다시 검사하고 맞춤형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아요. 현장 모니터링, 자료 수집이 먼저예요. 그 후 개선책을 찾아 처방하고 맞춤형 농법으로 작물을 키워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습도가 문제였던 한 농가에 센서로 한 달 치 습도를 분석해 적정 용량의 제습기를 설치해줌으로써 수천만 원가량의 손실을 막았고, 겨울철 난방비로 시름을 앓는 농가의 문제점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처방해 2000만여 원의 난방비 손실을 막아주기도 했다.

그는 스마트팜 운용 시스템으로 특허 출원도 했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A-벤처스’에 선정됐다. A벤처스는 농업(Agriculture)과 벤처기업(Ventures)을 합친 말로, 농식품 창업을 확산하기 위해 우수한 농식품 업체를 선정하는 사업이다.


‘팜랩올레’에 설치된 식물 재배용 LED 플레이트에서 갖가지 작물이 자라고 있다. © 제이디테크
기술 전파에는 교육이 필수

김희찬 대표는 스마트팜 운용 노하우를 주변 농가에 전하는 데도 열심이다. 농민들에세 스마트팜 교육과 노하우를 제공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스마트팜 전문 메이커스페이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2019년 12월 제주 서귀포에 문을 연 ‘팜랩올레’는 1년 사이 2000여 명이 다녀갔다.

“진보한 농업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입니다. 정부에서 스마트팜 보급을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사용법을 몰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요. 앱 구동을 어렵게 느끼죠. 실질적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앱 설치부터 구동까지 모두 현장에서 봐줘야 해요.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 기술 발전은 무의미합니다.”

김희찬 대표는 올해 직영 농장의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부지를 매입해 바나나 수확을 늘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스마트팜 기술을 보급하려 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맛있는 국산 바나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모를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스마트팜 성공 모델을 만들어 농가나 귀농·귀촌인에게 신기술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농민들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스마트팜을 통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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