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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크리에이터 도티이자 샌드박스 공동 창업자 나희선

초통령을 넘어 유튜브 제왕이 되기까지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우리는 지금 현기증 나는 문명의 속도전 한가운데에 서 있다. 코로나가 앞당긴 디지털 세계로의 전환은 누군가에겐 돈다발을, 다른 누군가에겐 피눈물을 안기고 있다. 불과 1년 전, 그 누가 오늘의 세계를 내다볼 수 있었을까.

이 광속으로 내달리는 속도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성공의 첫 번째 공식은 실행력이다. 이 길 저 길을 먼발치서 따지고 재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몸을 던져 일단 해보는 것.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신중함’은 이 시대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덕목이다. 두드려만 보다가는 실기(失機)하고 만다. 일단 건너다가 무너지면 다시 세우는 편이 차라리 맞다.

그보다 더 필요한 건 ‘전환의 용기’일지 모른다. 플랜A 대신 플랜B로 가다가 그 길이 맞다 싶으면 과감히 기존의 플랜A를 버리고 플랜B를 플랜A로 전환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는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새로운 성공은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크리에이터 도티이자 샌드박스 공동 창업자 나희선에게 유튜브는 플랜B였다. 구독자 1000명을 모으면 꿈꾸는 직업인 PD가 되는 데 근사한 스펙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된. 그렇게 문을 연 유튜브 채널 〈도티TV〉는 한국 게임 채널 최초로 구독자 200만 명을 돌파하며 유튜브 역사를 새로 썼고, 친구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창업한 ‘샌드박스’는 한국의 디지털미디어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샌드박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한 달 평균 조회 수가 23억 뷰에 달한다. 한국 유튜브 트래픽의 무려 15%에 달하는 수치다.

도티는 ‘초통령’으로 불린다.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라 할 만큼 인지도가 높다. 한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이 존경하는 사람 3위에 올랐다. 1위는 김연아, 세종대왕과 유재석이 공동 2위였다. 2021년 2월 중순 현재 〈도티TV〉의 구독자는 244만 명에 달한다.

세상에는 스타 크리에이터도 많고, 크리에이터들의 소속사로 불리는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창업을 시도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도티처럼 크리에이터가 직접 MCN을 창업해 탄탄하게 성공한 경우는 없다. 거대한 문명의 파도에 올라타 승기를 잡은 결단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의 숨은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샌드박스 용산 신사옥에서 도티를 만났다. 2015년 창업 이후 이사만 벌써 네 번째다. 두 사람이 500만 원씩 출자해 시작한 작은 사무실은 1년 만에 확장 이전했고, 이듬해 2개 층을, 그 이듬해에는 삼성동 고층 빌딩 3개 층을 쓰게 됐고, 2020년 12월에는 서울역 맞은편 신사옥으로 옮겼다. 28~30층 전체를 쓰고 있는데, 통창 너머로 한강과 63빌딩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곳이었다. 사옥 곳곳의 분위기는 공동 창업자 이필성 대표가 구글 출신이어서인지 구글 느낌이 강했다. 여기저기 편안한 소파와 알록달록 쿠션이 놓여 있었고, 1인 근무실을 겸할 수 있는 전화방이 군데군데 보였다. 각종 스낵과 젤리, 컵라면과 음료수가 선반과 냉장고에 그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캠핑 테마로 꾸며진 회의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캠핑용 천 의자가 생각보다 낮아 앉는 순간 푹, 하고 주저앉는 바람에 한바탕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신사옥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직원 수는 얼마나 되죠?


“2020년 기준으로 직원이 300여 명, 420여 개의 크리에이터 그룹이 있어요. 직원도, 크리에이터도 계속 늘고 있는 중이고요. 코로나 시국이라서 주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보시다시피 텅텅 비어 있죠.”


책 《도티의 플랜B》를 보니 2015년 6월 창업 이후 매년 두 배 이상씩 쑥쑥 성장해왔어요.
위기는 없었습니까.


“제가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아서 큰 틀에서만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롤 모델이 없는 사업이다 보니 성장통은 있지만 큰 위기는 감사하게도 없었어요. 세상이 끌고 가는 측면도 강하죠. 디지털미디어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수혜도 많았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실행력이 강한 편인가요?

“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요. ‘이거 너무 하고 싶은데?’ 하면 어떻게든 한번 해봐요. 현실주의자이기보다 이상주의자에 가까워서 그래요. 또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고, 창업에 대한 부담이나 짐이 없어서 더 과감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필성이(이필성 대표)는 졸업하자마자 구글에 입사해 회사생활을 일찍부터 경험했으니 고려하는 요소가 많더군요. 창업만 한다고 회사가 굴러가는 게 아니라면서 문화와 인력, 공간 등 현실적 요소를 다 감안하더라고요.”


현실주의자 이필성 대표와 이상주의자 나희선 대표의 궁합이 시너지를 만들었겠군요.

“저는 제 한계를 너무 잘 알아요. 처음부터 경영 영역은 제 일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저는 공동 창업자이지만 크리에이터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창업을 결심하게 된 순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2014년에 필성이와 함께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온라인 동영상 관련 콘퍼런스에 가게 된 이야기부터 들려드릴게요. 당시 저는 게임 유튜버로 성장하고 있었고, 필성이는 구글러였어요. 유튜버로서는 나름 성과가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직업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죠. ‘희선아, 너 요즘 뭐 해?’ 물어서 ‘나 유튜버 해’ 하면 ‘취업 준비는 안 해?’라고들 되묻는 식이었고요. 유튜버를 어엿한 직업으로 인식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필성이를 꼬셔서 미국 콘퍼런스에 무작정 예매를 해서 가게 됐죠. 현장을 보니 과연 대단했어요. 디즈니 같은 초일류 미디어가 MCN사에 관심을 가졌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큰 담론들이 오가는 게 보였죠. 말이 온라인 비즈니스이지 사실상 유튜브 행사 같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필성이와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이필성 대표가 구글을 쉽게 포기하던가요?

“필성이는 또래 중 가장 잘나가는 친구였어요. 졸업하자마자 구글러가 돼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당시 입사 3~4년 차인데 레벨도 꽤 높았어요. 분명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분위기에 이끌려서 공동 창업을 결의했지만, 얼마 후 필성이가 ‘근데, 나 구글을 나오는 건 못 할 것 같아’라고 해요. 그래서 CEO를 맡아줄 분을 찾아다녔어요. 이전의 구글러, 스타트업 신에서 활동하던 분들을 만나서 이 분야가 얼마나 유망한지 설득했죠. 그 과정에서 필성이가 스스로에게 설득당한 것 같아요. ‘이렇게 유망한 분야라면 내가 하겠어’라고요. 그즈음 강남 결의를 했어요.”


강남 결의요?

“강남의 한 맥줏집에서 하게 된 약속인데요, ‘네가 구글을 포기하면 나도 뭔가를 포기할게’ 하면서 제안한 게 있어요. 제 유튜브 수익에서 매달 200만 원만 갖고, 나머지는 다 회사 운영자금으로 내놓겠다고요. 필성이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바로 다음 날 구글을 나왔죠. 고맙게도 필성이가 퇴사하자마자 회사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모았어요. 외제 차 팔아 소형차로 바꾸고, 집에 있는 집기들을 가져오고, 중고가구 사 와서 소박하게 시작했어요.”


창업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군요.
스티브 잡스가 친구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할 당시의 이야기도 떠오르고요.


“저희 역시 그런 비슷한 기분을 느꼈어요(웃음). 창업 초창기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크루들과 함께 네트워크의 매체력으로 비즈니스를 할 마음에 설레었죠.”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인데요,
취업을 위해 스펙용으로 시작한 크리에이터라는 플랜B를 플랜A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순간의 그 결단력은 대체 어떻게 피어났나요.


“제 플랜B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된 꿈이에요. 용기와 결단력으로 선택했다기보다 플랜B가 현실적으로 업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 거죠.”


플랜B의 가능성만 보고 플랜A를 포기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롤 모델도 없었잖아요.


“롤 모델이 없어서 결단이 오히려 쉬웠어요. 만약 있었다면 ‘저 사람 대단한데? 나와 달란트 차이가 너무 큰데’ 하면서 좌절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1세대이다 보니 롤 모델이 없었고, 최고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어요. 비교를 안 한 게 오히려 장점이 된 거죠.”


플랜A였던 PD를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기획PD, 편성PD, 심지어 출연자도 되고, 마인크래프트 게임 장르에서는 스튜디오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다 할 수 있거든요.”


그는 소위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다. 그가 쓴 《도티의 플랜B》에 고백한 내용을 보면,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 없이 자랐고, 환경이 여의치 않아 서울 군자역에서 인천 송도역까지 편도 2시간 30분, 왕복 다섯 시간 거리의 중학교를 다녔다.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덕후 기질이 강했는데, 피겨선수 김연아 덕후가 되면서 동영상 편집을 배우게 됐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 한 사람으로 김연아 선수를 꼽는다.

크리에이터가 되기 전까지 그는 ‘남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삶’을 추구해왔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수시를 통해 연세대 인문학부에 합격했으며, 국문과에서 법학과로 전과했다. 꿈 역시 또래 집단에서 선망하는 직업인 PD나 메이저 언론사 입사였다.

그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들어 플랜B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그 카드는 운 좋게도 조커와 같았다. 크리에이터는 공평한 세계다. 학벌이나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오직 좋은 콘텐츠 하나로 승부를 보는. 공정하다는 착각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적어도 크리에이터 세계만큼은 공정하다.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세상의 선택지를 버리고 자신만의 선택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아 보입니다.

“제가 크리에이터를 28세에 시작했는데요, 그전까지 많이 방황하고 힘들었어요. 집안 환경이 안 좋아서 휴학이 잦았고, 법학과로 전과했더니 로스쿨법이 통과되면서 사법시험 정원이 감축됐고요. 이런 절박함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다가 몰입한 게 크리에이터예요.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라 이 길이 아니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제 길을 돌아보면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라기보다 환경이 만든 측면이 강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고자 하는 일에서는 다 성취를 해왔어요.
공부든, 크리에이터든, 사업이든.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장점은 뭔가요?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요. 일단 의미 부여를 잘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조회 수 100회, 200회가 나올 때도 ‘20분짜리 내 영상을 100명이나 봤어? 나는 누군가의 2000분을 책임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일의 가치를 알아갔고, 사명감도 가지게 됐죠. 둘째는 우선순위를 잘 정해요. 이건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발현된 부분이에요. 게임을 하더라도 다른 걸 다 해놓은 후에 했어요. 뭔가 할 일이 남은 상태에서 게임을 하면 불안해서 재미가 없더라고요(웃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의 장점 다섯 가지만 꼽는다면.

“일단 정년이 없어요. 내 에너지만 무한하다면요. 둘째, 눈치를 덜 봐요. 기본적으로 방송 심의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서 표현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되는 세상이죠. 셋째,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계획할 수 있어요. 예약 업로드도 가능하고, 편성 또한 내 스케줄이나 바이오리듬에 맞게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넷째, 내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다섯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내가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나쁜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면 내 취향과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이 분명히 있어요.”


와~ 즉흥적인 질문에 막힘이 없군요.
원래 말을 잘했어요?


“나서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발표나 낭송 같은 것. 그런데 유튜브 하면서 개발된 측면이 커요. 제 처음 영상을 보면 말도 잘 못하고, 거슬리는 말버릇도 많고, 톤앤매너도 왔다갔다해요. 내 목소리를 내가 계속 들으면서 피드백하는 게 가장 빨리 늘 수 있는 방법이에요.”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해요?

“공감 능력이요. 콘텐츠를 만든 후 그저 던져놓는 채널은 오래가지 못해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어떤 면을 좋아하는 건지, 구독자가 원하는 방향은 뭔지, 꾸준히 공감하면서 소통해야 해요.”


기존의 셀럽 문화와는 뭐가 다른가요?

“크리에이터는 하늘의 별 같은 존재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것같이 친근한 존재예요. 옆집 누나 같고 형 같고 오빠 같은? 그런 느낌을 잘 살리는 분들이 크리에이터로 오래가요.”


《도티의 플랜B》에서 크리에이터로 성공하려면 재능보다 성실성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요.
왜 그렇죠?


“나에게 대체 불가의 압도적 재능이 있다면 다른 게 다 필요 없을 수 있어요. 내가 뭘 하든 너무 재밌으니까. 그런데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결국 유튜브라는 세상에서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통해 익숙함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익숙함이 생기면 그 사람이 좋아져요.”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CJ의 슬로건에 강하게 끌렸다고 했는데, 꿈을 이룬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그렇게 느껴요. 크리에이터들의 영향력이 커졌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대한민국 전체 유튜브 트래픽의 15%나 차지하잖아요. 우리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요.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명감도 가지고 있고요. 제가 PD를 꿈꾸면서 봤던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이뤄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해요. 게다가 그 문화가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영역별로 세분화된 콘텐츠를 이끌고 있잖아요. 라이프스타일, 게임, 스포츠, 요리, 병맛 더빙…. 과거에는 서브 컬처와 메인 컬처로 급을 나눴는데, 이제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고, 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로 세상을 이끄는 느낌이 들어요. 되게 신기하고 좋아요.”


어릴 때 꿈꾸던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직업으로 대표되는 꿈에 대해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꿈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죠. 훌륭한 사람은 시대마다, 상황마다 달라서 딱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잖아요. 지금도 계속 훌륭한 사람이라는 꿈을 좇는 중이에요.”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제 분야에서 본다면, 누군가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요.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그런 말을 많이 해요. ‘너의 시간만큼 남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20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 영상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의 시간을 합산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고, 사회적인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고요.”

한때 나희선은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앓았다. 크리에이터 도티는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을 쉬지 않고 오르고 올라 정상에서 승기를 잡았으나, 자연인 나희선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이유가 크다. 크리에이터 도티이자 샌드박스 창업자 나희선의 성공담은 땀과 눈물, 기쁨과 환희가 뒤엉킨 하나의 드라마였다. 세상의 질서가 바뀌어가는 변곡점을 맞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사회적 사명감을 찾아 치열하게 분투한 한 청년의 펄떡거리는 인생 드라마.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잠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는 그의 걸음걸음을 응원한다.

'초통령 도티 3분 인터뷰'
  •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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