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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4)

스물아홉에 세상을 뜬 영원한 청년 풍류가객 배호! 上

정처 없음과 막막함

“배호 형님,
당신은 1960년대 서울 상경자인 청년들이 찾던 바로 그런 가수였지요.
당신의 동굴 속을 울리는 깊은 저음에 실린 선율은 잃어버린 사랑에서 나오는 탄식과 서러움을 머금고 있어요.”
너무 일찍 이 세상에 왔다가 너무 일찍 이 세상을 등진 가객(歌客) 배호(1942~1971)! 당신을 알던 세대는 준 대신 당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세대가 더 많아졌지요. 오늘 당신 노래가 유독 듣고 싶은 건 어떤 까닭일까요? 당신 노래가 환기하는 저 1960년대의 정서, 그 흑백 스냅 사진에 담긴 추억이 그리워집니다.

기억에서 흐릿해진 풍물과 사건들, 즉 선데이서울, 처음 발급된 주민등록증, 흑백 대한늬우스, 프로레슬링, 혼분식 장려운동, 동백림 간첩사건, ‘증산 수출 건설’ 같은 생산 독려 표어들, 여배우 문희와 남정임이 인쇄된 새해 달력들, 엄앵란과 신성일이 주인공인 멜로영화들, 백구두를 신은 박노식과 장동휘가 휘젓던 국내 액션 영화들, 김희갑과 구봉서와 배삼룡 같은 전설적인 희극인들, 국민 소화제 활명수, 국민교육헌장, 재건데이트, 달동네, 새끼줄에 꿰어 낱개로 팔리던 연탄, 봉지쌀 등과 당신 노래는 낙후와 가난이 평등하던 1960년대 한국 사회에서 손꼽히는 시대의 기호들이지요.

당신이 서른 전 병든 몸을 추스르며 ‘마지막 잎새’를 부르고 세상을 뜬 게 1971년이니,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가네요. 당신이 29세로 세상을 뜰 때 나는 사춘기 소년이었지만 오늘은 당신을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젊은 죽음을 요절이라고 합니다. 우리 생이란 게 어둠 속에서 전기 누전으로 불꽃이 튀는 것만큼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찍 죽은 이들에게선 어쩐지 비극의 냄새가 진동하지요. 유독 예술가들에게 요절이라는 슬픈 운명이 따라다니는 것은 왜일까요? 이상 27세, 윤동주 28세, 박인환 30세, 기형도 29세… 일찍 죽은 시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연예인 쪽을 보자면 가수 김성재 23세, 설리 25세, 구하라 28세…. 이들도 20대를 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요. 가수 김광석이나 작가 전혜린은 31세에 세상을 떴는데, 이들에게도 죽음은 너무 일렀어요.

이렇듯 짧은 생은 마치 여름밤 하늘에 빗금을 그으며 사라지는 운석(隕石) 같습니다. 요절한 이들의 행운은 대중의 기억에서 영원한 청춘이라는 점이겠지요. 그들이 청춘의 파릇함과 맑다는 느낌을 간직하는 것은 노회함이나 죄와 타락에 물들기 전, 생을 끝내고 청춘을 영원히 박제해버린 까닭이겠지요.

배호 형님, 당신의 노래에는 늘 비가 구죽구죽 내리고, 비에 젖어 한숨을 토해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외로운 청년들이 서성입니다.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 1966), “막막한 이 한밤을 술에 타서 마시며/ 흘러간 세월 속을 헐벗고 간다”(‘황금의 눈’, 1968), “사나이 가슴속에 비만 내린다”(‘비내리는 명동’, 1970) 같은  가사가 전달하는 정서는 저 반세기 전 서울의 화사함과 풍요를 거머쥔 상류층이 아니라 농촌을 등지고 올라와 향수에 허덕이며 뒷골목을 배회하는 무단 상경자의 정처 없음과 막막함이었지요.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거의 모든 도시 거주자는 매일같이 음성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합창에 참여한다. 거의 낯선 자, 완전히 낯선 자들 사이에서 가끔 아리아를 부를 때도 있겠지만 주로 합창에, 부르고 답하는 노래에 가담하여 사소한 언어적 응대를 주고받는다.”(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어느 시대에나 상처받은 짐승이 제 상처를 핥듯 제 불우함 속에서 외로움을 곱씹는 대중은 제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찾지요.

배호 형님, 당신은 1960년대 서울 상경자인 청년들이 찾던 바로 그런 가수였지요. 당신의 동굴 속을 울리는 깊은 저음에 실린 선율은 잃어버린 사랑에서 나오는 탄식과 서러움을 머금고 있어요. 근대화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개발도상국가의 수도 서울의 흥청망청 소비로 이루어진 화사한 삶 바깥으로 밀린 자들, 서울 변두리를 떠돌며 곤핍한 살림살이와 하찮은 노동에 시달린 시대의 낙오자와 패배자의 쓰라림이었습니다.

당신의 본명은 배만금(裵萬金), 1942년 4월 24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배국민(裵國民)과 김금순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어요. 1952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데, 11세 소년이던 당신에게 남은 유산은 가난과 “인간답게 살아라”는 유언,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부양 의무였지요. 부산의 한 고아원에 의탁한 채 성장하던 당신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아원을 이탈해 외삼촌들인 KBS 방송국 악단장 김광수, 작곡가이자 MBC 악단장 김광빈을 찾아 무작정 상경합니다. 외가 혈통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당신의 첫 직장은 카바레 청소부. 카바레 영업이 끝난 새벽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내고, 텅 빈 카바레에서 드럼을 두드리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당신은 곧 드럼 치는 악사로 신분상승을 하지만 카바레 악사 수입으로는 가족 부양조차 버거웠지요.

당신은 실력을 인정받아 외삼촌이 이끄는 김광빈 악단의 드러머가 되고, 이어서 1964년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을 취입합니다. 하지만 첫 음반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어요. 게다가 악식(惡食)과 거듭된 혹사,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건강은 망가지고, 지병인 신장병은 더 나빠졌지요. 당신의 운명을 무단 점유한 불운과 불행이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가수 데뷔 2년째인 1966년 행운을 잡는데, 그것은 당대 최고의 히트작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입한 것이지요. 당신은 이 노래로 정상에 우뚝 서고, 그해 MBC 10대 가수상에 오릅니다.

하지만 불행은 당신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몸을 바로 세우지 못할 정도로 신장병의 상태가 나빠진 것이지요. 생의 마지막까지 병원과 무대를 오가며 노래를 부른 당신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안개속에 가버린 사랑’을 연달아 내놓습니다. 하지만 가난과 병고로 망가진 몸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삼켜버렸지요. 당신 노래에 열광하는 대중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귓가에서 환청처럼 맴돌다가 멀어져갑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누구를 찾아왔나/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울고만 있을까/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뚜렷이 남은 이 글씨/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 1967년


배호 형님, 오늘 당신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혼자 듣습니다. 가난의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당신, 무대에서 중절모를 쓴 채 중후한 저음으로 노래하던 당신, 한국 대중가요사에 신화를 쓴 당신은 29세로 생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지요. 하지만 당신 노래의 곡조가 팍팍한 살림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며 우리 곁에 남아 떠돌겠지요.

배호 형님, 거기 천국에서도 노래를 부르십니까?
거기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꽃이 피겠지요.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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