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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13

1일1짱 먹기

글 : 강이슬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00시 00분.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리셋 버튼을 상상한다. 리셋 버튼을 누르면 1년 동안 온갖 일에 찌들었던 영혼이 깨끗하게 세탁되고 묵은 스트레스가 허공으로 훌훌 증발해 뒤통수와 어깨가 새털구름처럼 가벼워지리라. 지체 없이 리셋 버튼을 찾아 3초간 꾹 누르고 싶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건 내 몸에 존재하지 않는다. 1년에 딱 한 번, 내가 다마고치가 아님이 한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어쩔 수 없이 해묵은 몸으로 새로운 한 해를 살아야 한다.

매년 1월에 찾아오는 연례의식.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 정하기’를 올해도 한다. 새해 목표 설정 경력이 30년이나 되다 보니 어느덧 나에겐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야심 차게 세운 새해 목표를 반도 이루지 못할 미래가 눈에 너무 선하다. 흠, 어차피 못 이룰 목표인데 팔 아프고 종이 아깝게 꾸역꾸역 다 쓸 필요가 있나 싶다. 일기장에 세세한 새해 목표를 적다 말고 뒷장에 아주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1일 1짱 먹기.’


비록 성적표는 下지만, ‘해내기’보다 ‘해봤다’

작년 이맘때, 나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그림을 배워 웹툰을 그릴 것. 두 번째, 스페인 친구들과 스페인어로 영상통화를 할 것. 세 번째, 코바늘로 옷을 만들 것. 그래서 연초에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했다. 애인의 동생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친한 언니한테 코바늘뜨기를 배웠다.

그때는 스페인 사람이 코바늘뜨기를 하는 내용의 웹툰을 그리고도 남을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의 갭이 너무 컸다.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하면서 한 달에 두 번씩 매체에 글을 연재해야 했고, 마감해야 할 책이 두 권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을 우선순위인 일에 먼저 할당하고 보니 별 수 없이 개인적 성취가 뒤로 밀렸다.

숨 가쁘게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니 어느덧 11월 말. 스페인어로 자기소개나 더듬더듬 할 줄 알았고 그림은 처음 배울 때보다 약간 더 봐줄 만한 정도였으며, 코바늘뜨기로 어설픈 컵받침이나 간신히 만들 정도였다. 연초에 다짐했던 목표와 비교하자면 세 가지 다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과거의 잔악했던 나는 철두철미하게도 목표 옆에 성취를 표시할 수 있는 칸까지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착잡한 얼굴로 괄호 안에 아래 하(下)를 적어야 했다. 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연말 평가 성적표가 상·중·하 중 ‘하’라니…! 분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말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건 또 아니었다. 그나마 시도라도 했으니 스페인어로 내 이름을 소개할 수 있고, 어디 가서 그림 좀 배워봤다고 말할 수 있으며 코바늘뜨기로 걸레짝이라도 만들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해내기’보다 ‘해봤다’에 방점을 찍으니 마음이 좋았다. 그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다 이루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다마고치지!


인간의 삶은 다마고치보다 복잡다단하기에

다마고치의 삶은 (리셋 기능을 제외하고) 전혀 부럽지 않다. 정해진 삶이라서 그렇다. 걔네에게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삶이란 곧 죽음이다. 그래서 똥을 안 치워줘도, 밥을 안 줘도 픽픽 죽어버린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웬만해서는 이루기 힘든 목표를 이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과정에서 삶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전에 이루지 못하고 좌절된 목표들이 아무리 쌓여봐야 다마고치 세계에 쌓인 똥만큼 치명적이지는 않다.

올해 나의 목표는 1일 1짱을 먹는 것이다. 짱인지 안 짱인지를 평가하는 건 나 자신이므로 웬만해서는 ‘짱 잘했어요’라는 평가를 내릴 예정이다. 하고 싶은 일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나는 나를 짱이라고 치켜세우겠다. 그러면 시작한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좌절할 이유가 없다. 일단 해봤지 않나. ‘시작이 반’이라는 이 세상에서 일단 시작한 사람이 좌절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됐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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