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8) 빙수

내 맘대로 고른 빙수 맛집 best 4

© 셔터스톡
〈덕후의 취향〉을 연재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 두 가지. 언젠가 얘기했던 것처럼, 대개 취향이란 어릴 적 기억과 맞닿아 있는 무엇이라는 점이다. 어릴 적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이 쌓이고 뭉쳐 취향이라는 걸 만드는 토대가 된다. 그런데 그 기억의 상당수는 부모, 특히 어머니와 얽혀 있다. 어머니가 해준 간식, 어머니와 함께 갔던 장소 같은 것이 기억으로 남아 만들어낸 취향이 많다.

여름이 되면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빙수 역시 그렇다.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운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는 언젠가 ‘제빙기’를 구입했다. 얼음을 넣고 손으로 바퀴를 휘휘 돌리면 얼음가루가 떨어지는 원시적인 형태의 제빙기였는데 하얀색과 하늘색이 고루 섞여 있던 색깔까지 기억이 난다.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아 어머니 손만 바라보며 발을 굴렀고, 그렇게 갈아낸 얼음 위를 장식하는 것은 모두의 몫이었다. 캔 뚜껑을 따서 팥을 얹고 고운 색을 자랑하던 시럽도 뿌리고 화룡점정, 달기만 한 조각 같은 젤리를 얹고 나면 빙수를 먹을 일만 남았다. 얼음이 녹을 정도로 우유를 뿌려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전국에서 가장 덥다는 지역, 가장 덥던 계절이 스르르 잊히듯 시원하기만 했다.

그 기억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 이른 여름휴가를 즐기러 찾아간 5성급 호텔 라운지 카페에서 색색이 아름다운 빙수를 함께 먹고 있던 한 가족을 보면서다. 열 살 남짓 어린 남매를 데리고 피곤한 듯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나에게 빙수란 기껏해야 투명한 얼음을 갈아내 팥과 젤리를 얹어 먹는 것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빙수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다. 토마토를 설탕에 푹 절여 바질소스와 함께 내놓는 토마토바질빙수, 일명 ‘또바’ 빙수 같은 것을 먹은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취향을 갖게 될까.

한국의 미식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 칼럼니스트는 사적인 자리에서 ‘미식’이야말로 가장 우아한 취향의 세계라고 단정 지었다. 음식의 재료, 조리하는 방법, 먹는 방법과 먹는 곳의 분위기, 먹고 나서 즐기는 대화까지, 가장 복합적이고 개인적이며 다양한 취향이 모이는 곳이 바로 미식(美食)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는 미식가로 자라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덕후의 취향〉은 그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포근한 겨울 선물처럼 찾아온 쌍둥이 남매를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 건강하게 세상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다. 빙수를 마지막 만찬으로, 나만의 취향은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



담장옆에국화꽃
떡 명장이 빙수를 만들면?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205 / 02-591-1157

© 네이버블로그 - jjypink81
떡 명장(名匠) 오숙경 대표가 만든 한식 디저트 카페다. 원래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고속버스터미널과 인사동 등에 분점을 내고 영업 중이다. ‘한식 디저트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한식 차와 떡, 한과 등을 함께 판매하며, 여름이면 단연 빙수가 인기다. 대표 메뉴는 대추팥빙수로, 국내산 팥과 대추칩, 졸인 밤, 인절미를 얹어 낸다. 곱게 간 우유얼음과 대추, 밤 등이 어우러진 맛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매우 다양하다. 여름에 한정 판매하는 수박빙수는 수박과 팥, 우유얼음이 어우러져 달고 시원하다. 빙수와 함께 떡이나 한과 같은 한식 디저트도 시켜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인절미구이는 카페형 떡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디저트다. 쫄깃한 떡과 시원한 빙수를 함께 먹는 맛이 색다르다.



정동팥집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빙수의 정석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로 86 / 031-907-3450

© 네이버블로그 - juvely96
빙수를 먹으려고 ‘정동팥집’만 찾아가는 일은 좀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제2자유로를 한참 타고 올라가다 덩그러니 놓인 이곳을 발견하고 나서 든 생각이다. 느긋하게 빙수를 맛보려면 바로 옆에 있는 ‘토이포커스’라는 장난감 가게를 들르는 것도 좋다. 레고나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키덜트족에게 천국 같은 장난감 가게에서 목이 마를 정도로 시간을 보내다가 딱 몇 미터 걸어 정동팥집에서 빙수를 시켜 먹으면 꽤 괜찮은 외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곳 팥빙수는 직접 쑤어 만든 국산 팥을 우유얼음 위에 곱게 얹어 내는 전형적인 팥빙수 모양이다. 2000년대 초반 현대백화점에 입점해 팥빙수를 유행시켰던 ‘밀탑’의 빙수를 닮았다. 가격도, 양도 부담스럽지 않다. 한 그릇만 시켜 나눠 먹어도 좋고, 1인 1빙수도 할 만하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적당한 당도와 질 좋은 팥, 얼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도 많다.



부빙
산더미 같은 얼음 위로 옥수수퓨레가 줄줄!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36 / 02-394-8288

© 네이버블로그 - ines011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넓지도 않은 가게지만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얼음 위로 푸짐하게 재료를 끼얹어 내놓는 빙수를 한번 맛보고 나면 다른 곳의 빙수를 잊어버릴 정도다. 메뉴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데 여름철에는 옥수수빙수가 유명하다. 옥수수빙수는 매우 곱게 간 우유얼음 위에 옥수수퓨레를 줄줄 흐를 정도로 잔뜩 끼얹어 옥수수의 달착지근한 맛과 얼음이 잘 어우러진다. 특이하게도 후추를 곁들여 먹을 것을 권하는데, 옥수수퓨레 위에 후추를 살짝 얹으면 옥수수수프 같은 맛이 난다. 딸기빙수는 곱게 간 얼음 위에 딸기로만 만든 딸기퓨레를 끼얹어준다. 얼음 입자가 고와서 금방 녹기 때문에 종종 빨대로 남은 얼음과 퓨레를 함께 음료 마시듯 먹기도 한다. 캐러멜빙수나 골드파인빙수도 추천한다. 여럿이 와서 다양한 맛의 1인용 빙수를 시켜 나눠 먹는 이들이 많다.



카카오그린
초콜릿을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의 픽!
서울 중구 명동8길 14 / 02-3789-3102

© 네이버블로그 - mochihotel
관광객으로 붐비는 서울 중구 명동에도 한국인, 소위 현지인 맛집이 있기 마련. 카카오그린은 아는 사람은 아는 초콜릿 전문점이다. 가게 생명이 짧은 명동 한복판에서 꽤 오랫동안 분명한 정체성을 지키며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콜릿이 듬뿍 뿌려진 빙수가 유명하다. 트리플초콜렛빙수라는 이름의 이 빙수에는 세 가지 초콜릿 디저트가 들어간다. 브라우니, 파베초콜릿, 초콜릿아이스크림이다. 흔히 ‘생초콜릿’으로 불리는 파베초콜릿은 생크림과 초콜릿을 섞어 굳힌 후 코코아가루를 듬뿍 뿌린 것으로 부드러운 질감과 단맛이 특징이다. 초콜릿아이스크림과 파베초콜릿이 쫄깃한 브라우니, 빙수 가득 뿌려진 호두와 만나 다양한 식감을 느끼게 하는 트리플초콜렛빙수는 시간이 지나도 잊기 어려운 맛이다. 매장이 넓고 영업시간이 길어 언제 가도 부담이 없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아서 메뉴가 다양하다.
  •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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