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스타 강사 김미경

“지금은 돈에 투자할 때가 아니라, 돈 버는 법에 투자할 때”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뚝딱, 뚝딱. 코로나19가 불러온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구 전체를 대형 리모델링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 낡은 구도시가 허물어지고 거대한 신도시가 들어서는 현장이다. 누군가는 구도시의 폐허에 남아 눈물을 흘리고, 다른 누군가는 첨단 신도시에서 콧바람을 부른다. 이 혼돈의 시대에 누군가는 실직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더 큰 기회를 잡는다. 우리는 지금, 희비쌍곡선이 극명히 엇갈리는 시대의 정중앙을 지나는 중이다.

스타강사 김미경 원장은 단연 후자다. 세상이 내준 숙제를 부여안고 끙끙대며 문제를 풀던 그는 6개월 만에 해답을 찾았다. 바로 ‘리부트(REBOOT)’다. 기존의 판은 뼈대만 남기고 새롭게 다시 짜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미국 다빈치연구소장인 토마스 프레이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한 단어로 제시한 말에서 따왔다.

이후 김 원장은 더 큰 날개를 달았다. 리부트라는 답을 찾고, 자신만의 리부트 공식을 짜고, 그 공식을 책 《김미경의 리부트》로 펴냈다. 부제는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책은 김미경답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 세계정세와 메가트렌드를 논할 때, 그는 불안에 떠는 개인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정신 차려요! 지금 그렇게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라며 다정하지만 매정한 채찍질을 해댄다.

꼭 필요한 만큼 겁을 주고 딱 그만큼의 용기를 북돋우면서 건네는 그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로 세팅된 지금이 공부의 적기이자, 새로운 기회”라는 것. 또 하나는 “지금은 돈에 투자할 때가 아니라, 돈 버는 법에 투자할 때”라는 것. “다들 부동산에, 주식에 빠져 있는 자본주의 샤머니즘의 주술에서 벗어나 세상의 판을 똑똑하게 읽어내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대중은 그의 메시지에 반응했다. 책은 내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출간 한 달 만에 종합 부문 베스트셀러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만큼 그는 더 바빠졌다. 수요가 무한대인 온라인에서 그를 찾는 손길이 더 많아졌고, 기존 20여 명이던 직원은 최근 30명 정도로 늘었다.

오뚝이, 불사신, 용수철. 세상이 붙여준 김미경 원장의 별명이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바닥을 만났을 때마다 그는 두 배, 세 배로 튀어 올랐다. 2010년대 초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그랬고,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침 튀기고 눈 마주치며 강연을 해야 하는 ‘강사’라는 직업은 분명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힘든 직업이다. 하지만 판을 온라인으로 대대적으로 옮겨온 후 그는 더 높이 비상하고 있다.

이제 김미경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대중 강사이자, 10여 권의 책을 쓴 작가, 114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 〈김미경 TV〉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대학 ‘MKYU대학’의 학장. 무엇보다 서른 명의 직원을 둔 〈김미경 TV〉의 CEO. 고꾸라질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바닥을 친 후 튕겨 오르는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품고 김미경 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 우연히 그를 만났다. 앞 일정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걸어가면서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이미 무장 해제돼버렸다. 김미경 원장이 동네 언니로 느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했다.


《김미경의 리부트》에서 “사람들이 잘못 싸우고 있다”고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니까요. 걱정이에요. 원래 세상이 바뀌면 엄청난 폭발음이 나잖아요. 그런데 폭발음 하나 없이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어요. 지금은 돈과 싸울 때가 아니라 미래와 싸워야 할 때인데, 사람들이 잘못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주식과 부동산에 다들 미쳐 있잖아요. 진짜 싸움의 대상은 따로 있어요. ‘10년, 20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디지털 판에서 내 정체성과 브랜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지?’ 이 생각을 집중적으로 해야 해요.”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조류가 아니라,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디지털 시장은 비교의 시장이 아니에요. 자리도 무한대, 돈도 무한대예요. 파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옆 사람이 먼저 벌었다고 내가 못 버는 판이 아니죠. 많이들 ‘유튜브 지금 하면 늦어요?’ 하고 묻는데, 아니에요. 지금이 가장 빠를 때예요. 디지털 시장은 밤하늘 별과 같아요. 별은 1, 2, 3등이 따로 없잖아요. 자리 잡고 빛나면 그게 별이에요. 누가 내 앞에 있다고 가려서 안 보이는 게 아니에요. 무한대의 우주처럼 너무 넓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자리 잡고 그때부터 반짝거리면 되는 거예요.”


반짝거리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요.

“육체노동이요. 육체노동과 시간이 디지털의 기본이에요. 하루 종일 편집하고, 고독하게 라면 먹으면서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디지털은 컴퓨터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에요. 디지털 세상은 엄청난 육체노동에 기대어 있어요.”


디지털이 육체노동이라니, 아이러니하군요.

“디지털 편집을 해본 사람은 알아요. 얼마나 고강도의 육체노동인지. 어찌 보면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사기죠.”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면 그 육체노동이 화이트칼라처럼 될까요?

“그게 또 인공지능의 아이러니예요. 어제도 어느 개발자와 대화했는데, 개발자를 없애는 직업이 바로 개발자예요. 개발자가 열심히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놓으면 자기 일이 없어지게 되니까요. 그래서 중요한 게 창작 능력이죠. 세상에 무엇을 줘야 하는지를 알아채는 능력, 판을 읽어내는 능력 말이에요.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이 공부의 적기예요. 기존 판에서 밀려난 많은 분들이 강제 방학을 맞았잖아요. 나에게 스스로 방학특강을 만들어줘야 해요.”


나에게 방학특강이요? 남한테 듣는 게 아니고?

“그럼요. 잘 들어보세요. 나에게 필요한 커리큘럼을 짜는 게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코어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그것들을 쌓아둘 창고도 필요하죠. 고등학교 공부가 실효성이 없었던 이유는 내 관심사와 관계없는 그냥 과목이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이 과목을 실어 나를 코어 콘텐츠, 혹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무엇을 보더라도 단서들이 창고에 쌓이겠죠. 창고에 코어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여야 무르익어서 뭔가로 튀어나올 수 있어요. 지금 코어 콘텐츠가 없다면, 임시로라도 만드세요. 그래야 무엇을 해도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모이게 돼요. 안 그러면 뭘 읽어도, 뭘 들어도 그냥 다 남 얘기예요. 내 꿈이 있어야 내 얘기로 들려요.”


김 원장의 경우엔 코어 콘텐츠가 뭔가요?

“요즘엔 AI에 꽂혀 있어요. 아까 보셨죠? 이 책(《topclass》 8월호 스페셜 이슈 ‘언택트 라이프’) 보자마자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거. 예전에는 AI를 봐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지금은 리부트에 꽂혀 있고, 리부트가 새 판을 짜자는 이야기고, 새 판은 디지털 신도시이다 보니 디지털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여요.”


《김미경의 리부트》가 많은 대중을 움직였어요.
늘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면서 28년 내내 현역이었지요. 지금 이 시대 대중의 욕망과 결핍을 읽어내는 그 예리한 촉수는 어디에서 옵니까?


“저는 제 상황과 남의 상황을 빨리 엮을 줄 아는 것 같아요. 측은지심, 감정이입이 빠르다고 할까요? 28년간 내내 사람들과 현장에서 부딪쳐서 그런 것 같아요. 강연에 성공하려면 5분 이내에 그 사람들 인생 속으로 잽싸게 녹아들어 갈 줄 알아야 해요. 그걸 못 하면 강연을 망치거든요.”


측은지심이 강한 사람들은 에너지 소모가 커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늘 쿨해 보입니다.(웃음)

“음… 공감을 잘하는 동시에 생존에 대한 본능도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전 엄마이면서 아빠인 거예요. ‘얼마나 힘드니’ 하고 위로해줄 수 있으면서 ‘잊어버리고 뛰어’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엄마 같으면서 아빠 같은 양단의 능력은 타고난 걸까요?

“엄마 같은 능력은 타고나지 않았을까요? 아빠 같은 능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마흔 살 이후에 얻은 것 같아요. 콘텐츠 회사는 부침이 많아요. 경기가 어려우면 회사에서 가장 먼저 강연을 줄여요. 그럴 때마다 직원을 한 명도 안 줄이고 끌어왔어요. 그래서 26년 된 직원도 있고, 15년 된 직원도 세 명이나 있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끌어간다는 건 힘든 시간이에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돼요. 이번 코로나 사태 때도 아빠 같은 능력이 나왔겠죠. 임원 세 명이 자진해서 월급 30%를 깎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이나 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의 다 찾았어’.”


불안하진 않았어요?

“처음엔 너무 불안했죠. 우리 회사는 제 강의가 50%만 줄어도 전체 경영에 문제가 생겨요. 그런데 하나도 없게 됐으니 처음엔 길을 못 찾겠더라고요. 시간이 남으니까 책도 읽고 코로나 관련 자료도 찾으면서 공부했어요. 제가 믿는 신조 중 하나는, 돈이란 옮겨가는 것이지 땅으로 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 눈앞이 불황이라는 건 다른 데서는 호황이라는 얘기예요. 그 단서를 찾으려 애를 썼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딱 드러났죠. ‘판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 길게는 5년, 짧게는 2년 안에 새 판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다. 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고요. 이제까지 하루 1000명을 만났다면, 앞으로는 온라인에서 1만 명을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죠.”


가시적인 효과는요.

“MKYU유튜브대학을 키웠는데 6000명이던 회원이 6개월 만에 2만 5000명이 됐어요. 네 배 넘게 늘어난 거죠. 온라인에서 신도시를 세우고 있어요.”


디지털 세계에서 신도시란.

“급부상하는 목 좋은 동네예요. 인스타그램이 가장 핫하고, 유튜브도 신도시예요. 블로그는 약간 변방이고요. 인스타그램은 팔로워 5000명만 있으면 뭘 해도 먹고살 수 있어요. 글을 써서도, 광고로도요. 온라인에서 중요한 건 기버(Giver) 정신이에요.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걸 계속 주는 거죠. 그 사람들을 위해 수고를 덜어주면 나에게 모이게 돼 있어요. 디지털 가게가 되는 거죠. 처음엔 취미였지만 얼마든지 새로운 직업이 될 수도 있어요. 미용실 하나를 운영하더라도 인스타그램은 필요해요. 헤어 손질은 반드시 직접 와야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분점 같은 가게가 있어야 여기를 거쳐서 오는 거죠.”


요즘 디지털 신도시로 이주하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동안 전국을 누비면서 한 강연들이 큰 결실을 맺는구나 싶어요. 몸으로 부딪치면서 사람들과 쌓아온 신뢰가 그만큼 큰 거예요. 가난하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저를 보면서 사람들은 ‘저 여자 자빠지기도 하면서 참 잘도 일어난다. 저기 따라가면 굶어죽진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유튜브도 진작 하고 있었고, 다룰 줄 아는 온라인 툴이 많지요. 블로그, 네이버 카페, 인스타그램 마케팅, 페이스북 광고 관리, 홈페이지 제작, 앱 개발까지. 57세인 올해는 컴퓨터 언어 파이썬을 배우기 시작했다고요.

“알고 준비한 건 아니지만, 저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어서 뒤처지진 않았어요. 제 콘텐츠가 제조업인지 늘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제조업이라니요.
디지털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인데.


“그럼요. 제조업이고말고요. 콘텐츠를 가진 모든 사람이 제조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게 유튜브라고 생각해요. 이게 없었다면 방송국에 찾아가서 저 좀 내보내달라고 졸라야 했을 거예요. 또 몸 아프면 한 푼도 못 벌고요. 그런데 유튜브는 콘텐츠를 올려놓기만 하면 제가 없는 동안에도 영상 콘텐츠가 알아서 돈을 버는 구조이니 제조업인 셈이죠.”


차곡차곡 해온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시너지를 이루고 있군요. 뿌듯할 것 같습니다.

“신났어요. 아주 그냥.(웃음)”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더 큰 도약을 하곤 했지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 느낌 알아요? 저는 저를 엄청 믿고 존중해요. 사람 한 명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믿거든요. 힘든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저 자신을 마주했는데, 제 안의 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어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수백만 가지고, 저는 그중 한 가지를 빌려다 쓴 것이니, 이게 막히면 다른 방법을 가져다 쓰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믿는 건 힘든 일인데요.

“저는 낙천적인 힘이 엄청 강해요.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저를 연구하는 걸 즐기고요. 무엇을 하든 몰입하고, 몰입하는 과정의 희열을 즐겨요. 어떤 세상이 와도 세 끼 밥과 김미경만 있으면 살 수 있어요.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제가 안 창피해요.”



마치 할리우드 주인공 같아요.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국 고비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하하하. 영화도 그렇잖아요. 어떤 주인공으로 살든 다 사는 거잖아요. 슬프게든, 기쁘게든, 아프게든, 돈이 많든…. 저는 저를 차별하지 않아요. 어떤 형태로 살든 제 삶 자체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해요. 제 특징 중 하나가 경쟁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거예요. 대학 시절 너무 가난했지만, 그때도 좋았어요. 지금은 없는 그림 한 폭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있는 김미경도 너무 괜찮았고요. 인생의 고비를 맞은 김미경도 괜찮았어요. 너무 아프고 슬프고 힘들었지만, 자퇴 후 방황하던 아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김미경이 됐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저를 가여워하면서 마음을 줬어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죠.”


김미경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어요.
어떤 브랜드이길 바라나요?


“사람을 살리는 브랜드로 가져가고 싶어요. 어떤 위기가 닥치든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면 좋겠어요.”


독한 언니 콘셉트를 버리면서 콘텐츠의 결이 달라졌어요.
의도한 건가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2013년 tvN 〈김미경 쇼〉를 할 때가 제 한계였어요. 저는 꿈과 목표가 있으면 잠을 줄여가면서 육체노동을 효과적으로 하는 사람이고, 이 세상 무슨 직업으로도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그건 똑똑해서가 아니라, 될 때까지 해서죠. 백 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서 무조건 뛰라고 채찍질해대던, 그런 콘텐츠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귀를 막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만 대답하면서 강의를 해온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 뛰라고 했으면 스스로 자빠졌을 거예요. 다행히도 한 번 그 (논문 표절 의혹) 사건으로 인해 계곡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스스로를 돌보게 됐어요.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뛰라고 하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죠. 나를 위로하듯 사람들을 위로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 결정적으로 콘텐츠가 달라졌어요. ‘뛰어’의 강제 방학이 제게 변곡점을 만든 거죠. 나같이 강한 사람도 위로가 필요한데, 처지가 힘들고 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은 위로가 필요했을까, 싶었어요. 그들을 돌보지 못하고 외면했던 시간들이 미안했어요. 내 마음이 변하니까 그런 분들을 위로하게 됐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꿈이란 뭡니까?


“(0.1초 안에)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 남편 꿈도, 아이 꿈도 아닌 나의 꿈. 꿈을 갖는 순간 너무 행복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자존감이 올라가고, 꿈을 향해 달리면서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인지 확인하게 되죠. 꿈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는 공장이에요.”


김 원장의 꿈은요?

“우선 MKYU를 잘 키워서 회사다운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직원들이 김미경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미디어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요. 또 하나는 제 세컨드 라이프와 관련된 꿈이에요.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강연하고 싶어요. 외국에서는 영어로 강연을 해야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팬들을 만나 재밌게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쉰다섯 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 한 20년간 그렇게 살면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모든 답변이 ‘자기를 믿는 힘’
‘공부력’으로 모아지는군요.


“존경하는 비구니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1이 백이고 백이 1이다’. 하나를 놓치지 않으면 그 하나를 통해 100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죠.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나를 잘 지키면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1의 시기가 있고 100의 시기가 있어요. 다 안 풀리고 이것 하나만 할 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1이 나머지 100을 끌어당겨요. 반대로 100을 하고 있으면 정신없고 성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게 나중에 1로 모아져요. 제겐 그 1이 공부예요. 평생 공부를 해왔어요. 대학 때까지는 데모하고 미팅하느라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읽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들어서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 알았어요. 공부는 즉시 성과가 나는 돈 안 드는 도구예요. 또 그 성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전에 없던 세상을 보는 촉수가 생겨나요.”


문득 성공의 경험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해집니다.

“과정만 돌보고, 결과를 돌보지 않은 채 막 던진 결과들이 알아서 쌓이는 게 성공이에요. 우리는 결과가 부끄러울까 봐 과정을 잘 시작하지 않잖아요. 이게 될까?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이런 걱정들을 너무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과정에 엄청 몰입해요. 물론 저도 실패한 책과 강연이 많아요. 이렇게 매일 던지는데,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겠어요? 하지만 결과를 들여다보고 분석을 많이 하면 비참해서 못 살아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거든요. 막 던져놓은 결과들이 지가 알아서 자란 게 지금의 김미경인 거예요.”


지금 성공했다고 생각하세요?

“네.”


성공이 뭔가요?

“원했던 방향으로 사는 것. 이게 바로 제가 원했던 삶이에요. 다시 살아도 똑같이 복사해서 살 거예요.”


고꾸라지는 고비들이 있었는데요.

“그 고비도 있어야 해요. 그거 없으면 지금 이렇게 살아지지 않아요. 그것까지가 다 저인 거예요.”
  •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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