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9

만 원짜리 떡볶이 값을 낸 후

글 : 강이슬 

연봉이 900만 원 언저리였던 방송국 막내작가 시절. 나보다 어린 동기 작가와 늦은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은 날이었다. 우리는 뜨거운 떡볶이 국물이 차갑게 말라붙을 때까지 서로의 가난한 처지를 이야기했다. 일하는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월급, 없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복지, 부당한 처우, 부모님 앞에서의 부끄러움, 밤마다 찾아오는 자괴감.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와 넋두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커다란 다행으로 여겼다. 그날 떡볶이 값으로 만 원 정도가 나왔다. 당시 내 3일 치 점심 값이었다. 같이 내자는 동생을 만류하고 내가 계산했다. 그와 나를 향한 응원과 위로를 담은 무리였다. 떡볶이집에서 나와 조금 걷다가 플리마켓을 발견했다. 우리는 기분 전환 겸 잠깐 구경을 하기로 했다. 동생이 일상한복 부스에서 머뭇거렸다.


가난에도 체급이 있다

“나 진짜 한 벌 갖고 싶었는데.”

직원이 동생에게 한번 입어보라고 권유했다. 동생이 간이탈의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혼자서 눈치를 봤다. 어차피 못 살 텐데 직원이 괜한 수고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고 나온 동생은 아주 멋졌다. 사무실의 트레이닝복 차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던 여유랄지, 근사함이 느껴졌다. 동생은 한참이나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잘 어울린다. 내가 돈 많이 벌면 꼭 한 벌 사줄게.”

내 말에 동생이 웃었다. 거울 앞에서 한복을 꼼꼼히 살피던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동생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 한복 한 벌만 사주면 안 돼? 갖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23만 원. 알겠어. 아빠 카드로 긁는다?”

플리마켓을 나서는 동생 손에 커다란 쇼핑백이 들렸다. 내 월세와 맞먹는 가격의 한복이 들어 있는 그 쇼핑백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부득부득 우겨 떡볶이 값을 낸 조금 전의 나를 부끄러워했던가, 동생한테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던가, 아니면 그냥 걔가 부러웠던가. 버스비를 아끼려고 집까지 걸어가면서 우리가 떡볶이를 먹으며 한목소리로 공감하고 원망했던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동생의 가난과 나의 가난은 뭐랄까, 체급이 좀 달랐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같은 표정으로 가난을 말할 수 있었던 걸까.

‘지옥고’라는 말이 있다.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의 앞 글자를 따 주거빈곤가구의 고충을 표현하려 만든 신조어다. 스무 살에 독립한 나는 서른 살에 ‘지옥고’를 벗어났다. 지금은 하우스 메이트 두 명과 함께 2층 주택의 1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고시원에서 반지하로 가던 날과 반지하에서 옥탑으로 옮기던 날처럼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던 날에도 나는 기뻤다. 오래된 주택인지라 흠이야 있지만 그래도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의 많은 부분이 놀러 온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 수평이 안 맞는 바닥, 곰팡이 슨 벽이 장마철에 부풀어 오르는 모습, 방을 길게 가로지르는 개미떼, 마당을 활보하다가 거실까지 들어온 쥐.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했다. 내 눈으로 볼 땐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에 불과한 일들이 왜 제3자의 눈에는 ‘못 살 일’로 보이는 건지 궁금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요즘의 내 삶이 좋다. 비교 대상이 ‘과거의 나’이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고시원에 살 때는 독립 전의 내가 비교 대상이었고, 연봉 900만 원을 받을 때는 취업 준비생이던 내가 비교 대상이었다.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삶을 피부로 느끼며 안심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처지의 비교 대상이 됐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생활이 빈곤하다고, 어렵다고, 쉽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작은 것에 기뻐하자고, 더 낮은 곳을 보자고, 그런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참 많이 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말을 남들에게 듣는 것이 싫다. 첫 번째는 내가 꼬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가난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만이 그런 말을 편한 얼굴로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난에 대한 멋지고 그럴듯한 말은 가난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더 많이 나온다. 현재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힘에 부쳐 감히 ‘가난’을 평가하거나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남들에게 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가난에서 빠져나와야지만 더 넓은 시야로 가난을 관조하며 그것에 대해 평할 수 있다. 바다에 빠졌을 땐 바다를 묘사할 여유가 없는 것처럼. 뭍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만이 바다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절대 가난’과 ‘절대 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작은 사치에 행복하다고 웃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하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부유한 사람들의 아이러니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가난은 상대적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내 앞에 닥친 가난의 아득함과, 이따금 손에 쥔 돈에서 느껴지는 절대적인 힘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가난에 대해 결론을 내릴 이유도, 의무도 없는 나는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설명하는 법을 택했다. 가난은 상대적이고 부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나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와중에 지금보다 나아질 미래를 꿈꾸고, 종종 찾아오는 좋은 기회와 돈이라는 절대적 부 앞에서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됐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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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유 희윤   ( 2020-09-22 )    수정   삭제 찬성 : 9 반대 : 0
뭔가 애잔하다 그런데 이 분 긍적적 사고는 반드시 성공 할 수 밖에 없다 성공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쨌든 꼭 그렇게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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