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10

가진 게 없던 너와 나, 의외의 성공

글 : 김보통 

저는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손에 꼽을 만했는데, 이제는 간간이 얼굴이라도 보는 친구가 한 명뿐입니다.
그 친구와는 대학 시절에 만났습니다.
친구의 친구였는데 죽이 맞아 둘이 자주 놀았습니다. 서로 군대 면회도 갔을 정도입니다.
우리 둘은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취향이 겹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도 둘이 왜 친한지 모르겠다고 했고요.
우리 서로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각본가(부끄럽지만 최근에 쓴 드라마 각본의 제작이 확정됐습니다),
친구는 광고 감독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일이 겹쳐 만나곤 합니다.
얼마 전에도 한 제작사와 함께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중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친구의 1인칭 시점으로 우리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이상한 일이야.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이렇게 강남에서 회의한답시고 같이 가고 있는데,
자고 일어나면 다시 둘 다 거지가 될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해. “야, 내가 어제 꿈을 꿨어. 너랑 같이 강남 한복판에 회의를 하러 가고 있었어.” 그럼 네가 말하겠지. “미쳤냐? 정신 차려.”
그리고 다시 너희 집 칼국수 가게로 일하러 가는 거야. “참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하면서 말이지.

너는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나는 솔직히 몰랐어.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쥐뿔 아무것도 없이 나는 영상 만드는 회사 차리고, 너는 회사 때려치우고 만화 그리고. 운이 좋았어.
얻어걸린 거지. 된다는 확신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했거든. 제안 넣는 것마다 까이고, 무시당하고.
빚내서 직원들 월급 주고.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이상해. 이렇게 큰 회사에서 나한테 광고를 만들자고
큰돈을 들고 와. 버티고 버티다가 지금이 왔을 뿐인데, 사실 좀 실감이 안 나.

그래서 참 다행이기도 해. 나도 그렇지만, 네가 회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리고 싶었거든.
주변에서 많이 보니까,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회사 튀어나와서 잠깐 뭐 하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잖아.
그런데 네가 큰 문제 없이 자리 잡는 걸 보고 조금 안심했어. 나도 어려운 상황이 많았잖아.
그 과정을 너도 겪을까 봐 걱정이 됐어. 그런데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야.

주변에서는 나를 대단하다고 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친구들도 나를 인정해.
걔네들도 다른 데 가서는 다 인정받는데, 그 사이에서도 나는 인정받는 기분이야. 걔네들은 알거든.
내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다는 걸.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아니까 인정하는 거겠지.

그런데 요즘은 내가 문제야. 재미가 없어. 일이 안 되는 건 아니야. 하는 일마다 결과는 좋아.
우리 회사는 업계에서 계속해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왔어. 이제는 아무도 우리를 무시 못 해.
거기다 내 스스로가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도 알 것 같아.
이렇게 하면 터지겠구나 싶은 건 정말로 반응이 터져. 쉬워졌어. 그런데 재미가 없어. 배가 부른 건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망하는 게 두려운 건 아니야. 그거랑은 좀 달라. 애당초 우리는 없던 것을 만들어왔으니까. 그리고 바닥을 한참을 기어봤기 때문에 무서운 것도 없어. 그냥 재미있는 일이 하고 싶어. 그게 광고가 됐건, 영화가 됐건 뭐가 됐건 상관없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야. 그게 열정이 식은 건지 뭔지는 모르겠어. 일을 하기 싫은 건 아니야. 너무 익숙해졌다는 말이 맞겠지. 어쩌면 너무 안정적이라 불안한 걸지도 몰라. 낯선 감정이니까.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 재미있는 일을 해볼까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제안도 많이 들어와.
대부분은 재미가 없어 보여서 별로 당기지가 않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재미있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야.
그 점도 너랑 나의 차이겠지. 나는 머물고 싶지 않아. 뭔가 새로운 자극이 계속 필요해.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너랑 나 둘뿐인 것 같아. 웃기는 일이지.
주변에서 제일 가진 게 없던 너랑 내가, 가장 미래가 불확실해 보였던 너랑 나만 원하는 길을 가고 있어.
참 많이 고생했다. 이제 바라는 건 하나뿐이야. 네가 이쯤에서 망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이상 다른 소원이 없을 거야.
  •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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