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8

만화가가 꿈인 만화가

글 : 김보통 

요즘 제일 화제가 되는 직업은 아마 유튜버일 겁니다. 몇 년 전까진 만화가가 그랬습니다.
어떤 만화가의 소득이 몇 억을 넘었다는 얘기가 자주 매스컴에 나오고,
만화가가 되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학원이 생기는 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지금이라고 그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만큼의 화제성은 꽤나 떨어진 느낌입니다.

사람들도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만화가들이 데뷔하고,
또 얼마나 많은 만화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은퇴하는지를.
개중에 운 좋게 상을 받고, 만화가 영상화가 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라도
몇 해 지나면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새카맣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말이죠.

얼마 전 한 만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직 잊힐 정도로 빛을 발하지도 못한 채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만화가를 인터뷰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몇 해 전에 데뷔했습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데뷔였습니다. 몇 작품은 완결도 했습니다만,
그 역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마무리였습니다. 같이 데뷔한 대다수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회사원이 되거나, 강사가 되거나, 프리랜서가 됐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서로의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한 작품을 완성하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작품이라 불러도 좋을까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누군가 분명히 보고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나 저나 무엇을 위해 보고, 무엇을 위해 그리는지 알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겠지,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알아보겠지, 라는 마음으로 한 화, 한 화 그려나가고 있지만 쌓이지 않고 녹아버리는 눈사람을 만드는 기분입니다.

그 사이 누군가는 별이 됐습니다. 한 달에 버는 돈이 제 1년 치 수입을 가뿐히 뛰어넘고, 그 돈으로 산 차는
제가 월세로 살고 있는 집을 두 채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이제는 어시스턴트들이 많아져
본인이 직접 그리는 부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하니,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겠지요.
이제는 그 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 질투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긴 시간을 만화만 붙잡고 살아왔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내내 만화가만을 꿈꿨습니다. 만화를 그리며 살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를 했을 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버는 돈이 늘지 않는 것보다 연재를 할수록 몸과 마음이 꺾이는 것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바라던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이제 그만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차츰차츰 자라납니다.
그럼에도 다시 연재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 먼 길을 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길로 들어설 엄두가 나질 않으니 별수 없이 계속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할수록 우울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그런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지금이 되레 마음 편합니다.

제 꿈은 사인회를 하는 것입니다. 조촐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몇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느 서점 한편, 작은 테이블에 앉아 펜을 들고 저를 찾아온 독자를 기다리는 상상을 합니다.
분명 그 자리에 온 분은 이런 저를 그동안 쭉 지켜봐온 분이겠지요. 저는 그분과 마주 앉아
오늘 이날이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당신의 덕이었음을 몇 번이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이제 와 갑자기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만화를 그리는 것뿐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갈래에서 선택한 이 길에서 또렷하게 떠올리고 있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만 삶의 한 막을 완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만화를 그릴 수도,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겠죠. 무엇이 됐건 살아가는 내내 되뇔 수 있는 저만의 명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말해놓고 보니 누구나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비슷하게 헤매지 않을까 싶습니다.
뜻한 대로 이루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어쩌면 다들 작은 추억들로 채워진 마음속 앨범을 뒤적이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보통의 삶이겠지요.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이겠지요.
  • 2020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