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7

세상을 바꾸는 어느 PD

글 : 김보통 

어느 방송국의 PD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7년 전쯤입니다.
당시 PD님은 심야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 없이 놀고 있었습니다.

‘백수 특집’으로 저를 라디오에 섭외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틈틈이 만나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얇고 긴 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사이 저는 작은 회사의 대표가 됐고, PD님은 라디오가 아닌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여전히 시시껍절한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만날수록 확신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바꾸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PD님을 인터뷰해 PD님의 1인칭 시점으로 적어봤습니다.

좀 겉돌면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불화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많은 것들에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을 뿐입니다. 졸업 후 방송 쪽으로 진로를 잡은 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동기 중 여럿이 이쪽으로 일자리를 잡았고, 또 저도 흥미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마찰이 있었습니다. 대개의 것들은 ‘당연한 것이 왜 당연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방송이란 생각보다 전통과 관행을 따라갑니다. 그렇다 보니 출연자부터 스태프까지 지금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내심 느끼면서도 ‘이거 좀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합니다. 그 탓에 한정된 돈으로 짧은 시간 동안 적당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혹사하는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저는 그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단 제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방송국의 구조와 선후배 간의 위계,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제작 방식까지. 그간 좋게 좋게 넘어왔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마다 저는 멈춰서서 ‘이건 좀 아닌데’ 하며 말해버렸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저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입사 때부터 아껴주던 선배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듣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라면 그쯤에서 ‘알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모두가 ‘좋게 좋게’ 될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속 시끄러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길가에 낙엽이 쌓여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면 누군가는 낙엽을 치워야 하는 겁니다. 모두가 “원래부터 이랬으니까”라며 구시렁거리면서도 먼 길을 돌아가고만 있으면 낙엽은 계속해서 쌓이기만 할 뿐입니다. 물론 낙엽을 치우는 방식에 있어 좀 더 세련되거나 획기적인 방법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최선의 방법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과감히 불태우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더 좋은 방법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요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뭐라도 해야 하는 쪽입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까 궁리하는 것에 앞서 효율적이지 않은 제작 방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이 프로그램을 맡았던 스태프들은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좋게 좋게 넘어가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묵묵히 낙엽을 치웠습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낙엽이 사라진 길을 걷는 스태프들은 “이렇게도 될 줄은 몰랐다”며 기뻐합니다. 매일 쫓기듯 회의하고 촬영하던 데서 지금은 돌아가며 휴가를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즐겁게 방송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충분히 휴식하고 생각한 채로 아이디어를 풀어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 봤자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냐 싶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피곤한 몸으로 ‘원래 그랬으니까’라고 일하면서도 저를 보며 ‘쟤는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거니까요. 저는 그저 이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특별히 세상과 불화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제가 가는 길의 낙엽만은 치워버리고 싶을 뿐입니다.
  •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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