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브랜드 전문가

끌리는 이름을 지어주고, 키우는 전문가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애플의 창립자 故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일상 속 선택의 순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다. 브랜드는 그 선택의 순간을 도와준다.”
브랜드의 가치를 일찍이 인식한 스티브 잡스. 브랜드 가치에 대한 확고한 그의 믿음 아래 애플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브랜드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요즘, 많은 회사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브랜드 전문가’가 있다.
브랜드 전문가가 하는 일

브랜드 전문가는 활동 분야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브랜드 네이미스트’다. 브랜드 네이미스트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데,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성격과 콘셉트의 소개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충분한 시장 조사를 통해 해당 산업을 이해하고 아이디에이션(ideation) 작업을 거친다. 그 후 소비자에게 각인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를 뽑아내고, 그 포인트를 어떻게 브랜드 이름에 녹여낼지 토론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보통 100개에서 500개 정도의 키워드가 나온다. 이 키워드를 요리해서 하나의 브랜드 이름으로 발전시킨다. 보통 4주에서 5주 정도의 작업 기간을 요한다. 또 하나는 ‘브랜드 매니저’다. 브랜드 매니저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에서부터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 전략 구축, 브랜드 평판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즉 브랜드 네이미스트가 만든 브랜드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전문가가 되려면

브랜드 전문가는 브랜드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경영학을 전공하면 마케팅, 홍보, PR에 대한 이해 등 브랜드 관련 지식을 습득하기에 유리하지만 전공이 크게 중요한 편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각 대학의 브랜드전문가과정 등에서 다양한 브랜드 관련 교육을 수료할 수 있다. 인턴십 기회를 통해 현장에서 기획, 제품, 서비스에 대한 업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성적인 시선’이다. 최근의 브랜드 트렌드는 감성이다. 세상을 논리적, 수학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발상을 전환해 감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브랜드 전문가로서 역량을 기를 수 있다.


연봉과 전망

브랜드 네이미스트는 네이밍 전문 회사에 취직하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 대개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입은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네이밍 프로젝트의 비용은 적게는 500만 원에서부터 많으면 5000만 원, 혹은 그 이상이다. 브랜드 매니저는 브랜드 네이미스트와 달리 대부분 회사에 소속돼 일한다. 브랜드 매니저는 그 회사의 브랜드를 종합적으로 ‘키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연봉은 해당 기업의 연봉 테이블에 맞춰 받는다. 브랜드 전문가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요즘 소비자는 ‘가심비’와 무형 가치에 중점을 둔 소비 경향을 보인다. 즉 제품의 스펙이 아닌 브랜드를 보고 소비하는 경향이 대세다. 그런 만큼 소비자의 감성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키우는 브랜드 전문가의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

휘센, 안철수연구소, SK이노베이션… 600여 개의 브랜드 이름을 짓고 가꾼 남자

1990년대 중반, 브랜드의 이름을 지어주는 ‘브랜드 네이미스트’로 활동하던 남자가 있었다. ‘브랜드 마케팅’이란 단어가 안착되지 않았던 당시, 그는 머지않아 브랜드가 마케팅의 핵심 요소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10여 년이 지난 후, 브랜드 전쟁 시대가 되었다. 이 남자는 600개가 넘는 브랜드 이름을 짓고 국내 최고의 브랜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재현(52)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다.


박재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끼가 남달랐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문화 행사의 기획과 MC를 도맡았고, 대학생 때는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자신의 생각을 발표로 실현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즐기던 그에게 방송국 생활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박 대표는 방송국 활동 당시 만난 동료들의 영향을 받아 광고 기획자(AE)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광고 기획자로서 브랜드를 키우던 그는 브랜드 전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브랜드 네이미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안철수연구소, SK이노베이션, 엔진오일 ZIC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수많은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 그중 소비자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브랜드 이름은 LG전자의 에어컨 ‘휘센’이다.

“휘센은 바람 소리 ‘휘’, 세다의 ‘센’을 합친 한글이에요. 영어 이름 같지만 아니죠. 북유럽권 느낌이 강한 이름이었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성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에어컨이니까 ‘wind(바람)’란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반면 아쉬웠던 이름도 있다. 삼보컴퓨터의 루온(LLOUN)이 대표적이다.

“루온은 그 당시에 편리하고 혁신적인 PC였습니다. ‘루온’이란 이름도 언어적인 신비감을 주고 제품 자체에도 혁신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PC가 너무 빠르게 진화했죠. 또 그때 중국의 저가 PC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삼보컴퓨터가 여기에 대응하느라 루온 제품을 키우지 못했어요. 의미 연관성이 없는 직관적인 브랜드 명은 고가 제품에 어울리는데, 루온이란 브랜드에 이 방법을 시도해서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브랜드 인사이터(insighter)의 삶

박재현 대표(왼쪽)와 직원들이 시장 조사를 통해 수집한 수백 가지 키워드를 두고 브랜드 이름을 연구하고 있다.
박재현 대표는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글자 그대로였던 브랜드 ‘이름’을 철저한 관리를 통해 하나의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것. 단순해 보이는 이 철학이 20년 넘게 브랜드를 연구한 그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브랜딩은 새싹을 키우는 것과 같아요. 새싹을 키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바람이 불어 쓰러지면 부목을 세워서 다시 일으키기도 해야죠. 이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새싹은 잘 자라지 못해요.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리를 잘하면 좋은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쁜 브랜드가 되는 거죠.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러브마크가 없어지는 겁니다. 지속적인 관리로 러브마크를 꾸준히 키워나가야 합니다.”

브랜드 네이미스트로 브랜드 전문가의 길을 시작한 박재현 대표. 브랜드의 탄생과 끝을 책임지는 그는 브랜드를 총괄하고 감독하는 ‘브랜드 디렉터’이자, 브랜드 전체를 통찰하고 설계하는 ‘브랜드 인사이터(insighter)’다. 아울러 그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02년부터 그는 연세대학교 브랜드전문가과정 책임강사로 활동 중이다.

“교육과 강의를 통해 누군가에게 브랜드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이 즐거워요. 무언가를 창조하고 가꾸고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저의 정체성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은 ‘휘센’이나 ‘망고링고’ 등의 브랜드 이름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죠.”


‘제품’이 아니라 ‘성품’을 팔아야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필두로 한 기술의 발달로 많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박재현 대표는 한자 ‘溫(따뜻할 온)’을 강조하며 온라인 세상에서도 브랜드 전문가의 영속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AI는 입력 값만 내면 키워드를 통계적으로 추출할 수 있잖아요. 공식에 따른 브랜드 네이밍을 하는 거죠. 그러나 기계적으로 하면 결과 값은 나와도 소비자가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 논리적인 접근은 불가능해요.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 로직을 세우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과정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죠. 디지털화가 가속화될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브랜드를 원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온라인 시장에서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온’자에서 찾고 싶어요. ‘제품’을 파는 시대가 아니라 브랜드의 ‘성품’을 파는 시대가 오고 있죠. 소비자가 ‘나는 이 브랜드를 만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게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따뜻함을 AI가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감정을 읽어야 그 감정 속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잖아요. 이런 브랜드는 기계가 못합니다.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박재현 대표는 브랜딩을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 20년 이상 브랜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비범한 브랜드를 만든 동시에 자신 또한 비범한 남자가 되었다. 브랜드를 구축하고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잡이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는, 브랜드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From Seeing To Thinking’을 강조했다.

“성품과 온기를 느끼기 위해선 인문학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느끼는 삶의 행복감을 알아야 브랜드를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독서를 게을리하면 안 돼요. 트렌드를 좇는 책이 아니라 고전을 추천합니다. 고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느낄 수 있거든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영화, 독서, 웹툰 등의 문화 콘텐츠는 인간의 감성과 공감대를 이야기하잖아요. 문화 콘텐츠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축적하면 브랜드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소스를 갖출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행도 추천해요. 많이 봐야 생각도 깊어집니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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