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10)

롱런의 비결? 낯설게 하기!

글 : 은열 

까칠언니의 한마디
매너리즘이 무슨 말이냐는 듯 오래오래 회사를 다니고 싶다면 부서 이동이든 이직이든 두려워 말 것.
낯선 환경을 스스로 친숙하게 바꿔본 경험이야말로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피와 살’이 될 테니까.
업무가 바뀐 지 한 달쯤 됐다. 짐작 못했던 건 아니지만 몇 년간 익숙해져 있던 일과 사람을 뒤로한 채 낯선 시스템 속으로 뛰어들어보니 과연 녹록지 않다. 제 시각에 출근하지 못해 낭패를 겪는 악몽에 시달리는 건 예사. 질 나쁜 수면 탓에 오후가 되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 모든 고충을 압도하는 건 역시 대인관계. 데면데면 눈인사 나누는 게 고작이었던 이들과 별안간 살갑게 지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 살얼음판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만사가 편안한’ 상태

고백하자면 이번 변화는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그전까지 해오던 일이 싫은 건 절대 아니었다. 개중 잘할 수 있는 업무였고, 해를 거듭하며 나름 노하우도 쌓였다(고 생각했다). 시행착오 횟수가 줄면서 자신감은 그에 반비례해 한껏 부풀었다. 어느 순간부턴 일이, 오래 입어 적당히 늘어난 스웨터마냥 기분 좋게 몸에 착 붙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리 힘들 것 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별로 신나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하루하루는 무료했고 사소한 돌발변수에도 불쑥 짜증이 났다. 동료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필요 이상의 감정을 이입해 툭하면 서운해하거나 원망을 쏟아냈다. 이리저리 널을 뛰는 마음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덜컥 겁이 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떠날 때가 됐구나!’

사실 난 태생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한번 익힌 길, 일단 맛 들인 식당 메뉴는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단 호감을 느낀 이와의 인연은 이변이 없는 한 고집스레 유지한다. 10년쯤은 약과. 사회에서 만나 20년 가까이 연락하고 지내는 이도 제법 있다. 반면, 낯선 이와 안면을 트는 일은 유독 힘들어하는 편이다. 운 좋게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소화 불량이나 두통에 시달렸다. 나름 자부심이 있었고 실력도 꽤 인정받았던 기자 일을 선선히 그만둘 수 있었던 배경엔 예의 그 ‘대인 기피 스트레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일에 관한 한 내 역마살은 역사가 꽤 오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4~5년 주기로 업무가 바뀌었다. 물론 대부분은 ‘외부적 요인’이 계기였다. 슬슬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절묘하게 제안이 왔다. 발단은 타의(他意)였지만 어찌 됐든 최종 결정권은 내게 있었고, 그때마다 난 그 카드를 스스로도 놀랄 만큼 ‘쿨(cool)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기회가 내게 온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 ‘내 쓰임을 나보다 잘 아는 누군가의 판단을 따르는 일도 때론 필요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판단은 단 한 번도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 말라”는 각성에 귀 기울이기

“세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현재에 안주하려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때로는 ‘스텝 바이 스텝’으로 천천히,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갑자기. 고백하건대 결과적으론 그런 크고 작은 각성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드는 나를 발가벗겨 보이는 순간 스스로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결점이 까발려지기도 했다. 미당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까지의 날 키운 건 8할이 변화’였다.”

2006년 4월의 어느 날, 블로그에 끼적여놓은 일기 중 일부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맘때 역시 진폭이 제법 큰 신규 업무 관련 제안을 덜컥 수용한 직후였다. 그리고 2019년. 무려 13년째 난 ‘크고 작은 각성들’에 기꺼이 휘둘리며 살아간다. 자의니 타의니 따지지도 않는다. 조직 내에서 연차가 높아지면 젊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제안’의 빈도가 낮아지는 건 당연지사.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고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런 시도가 거듭되는 과정에서 진짜 맷집과 내공이 생긴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문학 용어 중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란 게 있다. 친숙한 사물이나 개념을 살짝 비틀어 낯설게 느껴지도록 함으로써 미학적 가치를 더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따지고 보면 직장생활에서도 낯설게 하기는 퍽 유용한 전략이다.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부단히 내던지고 최선을 다해 견뎌내는 노력은 그 자체로 막강한 경쟁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년간 쉬지 않고 ‘특정 조직의 일원’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진리를 비교적 일찍 간파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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