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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산 이야기 2

황량한 저긴 또 어떤 곳일까? 산꾼의 호기심이 살아난다, 다음에는 저기다

히말라야 구르자히말–다울라기리 트레킹 (下)

협찬 : 유라시아트렉
해발 5360m 높이 고갯마루인 프렌치패스에 올라선 일행(왼쪽부터 김창호, 석상명, 필자, 서기석). ‘빛나는 산’, ‘하얀 산’을 뜻하는 이름을 지닌 세계 7위 고봉 다울라기리 1봉이 우뚝 솟아 있다.
다울라 콜라 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아르체의 새벽, 어제 아침을 맞은 구르자카니에 비해 햇살이 늦게 스며든다. 포터들은 어제의 고행으로 몸이 무거울 텐데 어둑한 시간에 일어나 참바(볶은 보릿가루)를 물에 개어 가볍게 식사를 하고 오전 7시경 다시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짐을 덜어주기 위해 구르자카니에서 충원한 포터 2명을 제외하곤 모두 몸놀림이 가볍다. 구르자카니 주민들은 하루 15달러 임금에 혹해 짐꾼으로 나섰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창호 대장은 “구르자카니 포터들에게 많은 짐을 준 것 같다”며 치링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래로 내려설수록 기온이 올라가고 열대우림지대로 변해간다.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가 하면, 오렌지 나무도 보인다. 흙먼지 이는 누런 빛깔의 윗마을보다는 파릇한 기운 도는 아랫마을이 더 풍요롭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산길에서 마주치는 주민 대부분이 소를 몰고 위로 올라온다. 소들은 이렇게 풀밭을 찾아 고도를 점차 올려 해발 3000m대 초원에서 여름을 보내고 풀이 말라붙는 가을철로 접어들면 다시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절벽 허리길을 따르다가 물가로 내려서서 이른 점심을 먹고 산허리를 넘는 지름길을 따라 다울라기리 서킷으로 향한다. 둘째 날 루가차우르 패스 이후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던 구르자히말은 다울라 콜라 협곡 뒤편에서 설봉을 반짝이며 배웅해주고, 산허리를 넘어서자 미야그디 콜라(Myagdi Khola) 끄트머리에서 지르방봉(Jirbang·6062m)이 봉우리를 곧추세운 채 반겨준다.

“형! 한잔하고 가죠?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울라기리 서킷 트레일에 접어들어 첫 번째 움막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수수로 만든 증류주 럭시 냄새였다. 석상명, 서기석 두 사람은 벌써 한 잔씩 마신 뒤였고 뒤이어 내려온 필자는 물론 치링도 마다치 않고 마신다. 분위기는 당연히 부드러워졌다.

이날은 이른 시간 나우라(Naura·1570m) 에서 트레킹을 끝낸다. 한낮의 따스한 햇볕 아래서 모처럼 샤워하고 로지 앞마당 풀밭에 누워 맥주를 마시니 더 바랄 게 없다. 저녁때는 특별 메뉴로 닭백숙에 닭다리 튀김이 나온다. 이제 입까지 즐겁다. 어둠이 골짜기를 덮치자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인다. 무공해 히말라야의 밤이다.


야크 똥밭에서 따뜻한 하룻밤 보내

다울라기리 1봉 베이스캠프 입성 전날 스위스 캠프 부근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일행과 현지인들.
트레킹 5일째,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서로 묻는다. 일행 모두 시간개념 없는 히말라야 산사람이 됐다. 나우라를 출발해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골 양옆이 거대한 절벽을 이룬 협곡. 산길은 절벽을 가로질러 나 있다. 골짜기 끄트머리에는 차우라봉(Tsaurabong·6395m)이 하얀 정수리를 치켜들고 있다.

“길이 잘 나 있네요. 2009년 봄엔 로프 잡고 아슬아슬하게 건넜던 절벽 길이에요. 등반할 때보다 살이 더 떨렸어요. 앞으로 사흘째 통과할 구간은 정말 위험해요. 미끄러지는 날이면 100m 아래 바닥으로 추락이에요.”

“아니! 그런 얘기를 왜 이제….”

김 대장이 기억을 더듬으며 베이스캠프로 이어지는 길에 관해 설명하자 일행은 불안해한다. 퇴임 기념 힐링 트레킹이라고 꼬드기더니 실상은 아니었다. 수십 길 벼랑을 가로지른 산길은 지릉 3개를 가로지른 다음에야 편안한 길로 바뀌고 보가라(Boghara·2080m) 마을이 눈에 든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 화사하게 느껴지는 마을이다.

한 어린아이가 커다란 소 등에 올라타 말 타듯 소 엉덩이를 후려친다. 이에 소가 귀찮다는 눈빛을 보이며 몸을 흔들어대자 어린아이는 땅바닥에 뚝 떨어진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다른 소로 다가가 또 올라탈 시늉을 한다. 소 타기가 어린이들 놀이인가 보다.

동네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땟국물 흐르는 코흘리개 어린이들이지만 해맑다. 우리도 1960년대엔 비슷했다. 서울시민도 동네 어귀 공동 수도에서 들통에 물 담아 지게로 날라 식수로 사용했고, 겨울이면 손이 틀 정도로 제대로 씻지 못하며 지내다가 명절 전날에나 목욕탕에 갔으니까.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가며 산 아래로 내려서자 젤퉁(Jeltung·1880m). 로지가 몇 채 있는 마을이다. 취사팀은 점심을 준비하고, 디디들은 그 옆에서 공기놀이하다가 남자들이 실수할 때면 좋다고 깔깔댄다. 작은 즐거움, 작은 행복이다. 우리는 작은 즐거움을 아예 잊고 산다. 매사에 너무 무덤덤하다. 이제라도 일희일비하며 지내야겠다 싶어진다.

다울라기리 서킷 둘째 날은 립사바(Lipsaba·1970m) 카르카 야크 똥밭에 텐트 치고 자고, 셋째 날은 대나무 숲과 원시림을 거슬러 살라가리(Sallaghari·3100m) 로지 앞마당에 텐트를 친다. 김창호 대장 말대로 립사바 캠프지는 바닥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잠자기 좋았다. 야크 똥이 발효하면서 열이 나기 때문이다. 립사바보다 1100m 이상 높은 살라가리에서는 빙하의 찬바람이 불어댄다. 그럼에도 일행은 빙하수 흐르는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잔다.

살라가리를 지나면서 대나무와 원시림이 점점 사라진다. 고도가 제법 높아졌다는 얘기다. 차우라완 레이크(Chaurawan Lake) 안내판을 지나자 덮칠 듯 위압적으로 솟구친 다울라기리 서벽이 바라보인다. 김 대장은 서벽에는 루트가 3개 있지만 그 오른쪽의 사우스웨스트 스퍼는 프랑스 팀이 도전했다가 6200m 지점에서 포기했을 만큼 험난한 능선이라 알려준다.

“카자흐스탄 팀은 서벽 등반할 때 어땠는지 아세요? 베이스캠프에서 대장한테 경례하고 대장이 건네준 보드카 한 잔씩 입에 털어넣고 정상 공격에 나섰대요. 엄청 센 클라이머들이었어요. 성공했어요.”

다울라기리 1봉 서킷 둘째 날 마을에서 만난 어린아이들. 깜찍하고 천진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거친 퇴석지대가 나타나면서 널찍한 캠프 사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이탈리안 베이스캠프(3530m)다. 김 대장은 “1962년 가을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대인 경희대 다울라기리 원정대(대장 박철암)가 베이스캠프 삼았던 곳”이라며 “9년 전에는 대나무 집 한 채에 캠프사이트도 몇 곳 안 됐다”고 알려준다. 이제는 큰 로지에 텐트 30동은 족히 들어설 만큼 널찍한 계단식 캠프장이 조성돼 있다.

캠프장에 올라서자 다울라기리 서벽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반짝이고, 차우라봉에서 다울라기리 5봉(7618m)으로 이어지는 설릉 또한 만만찮은 기세로 솟아 있다. 설산 숲속에 있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켜보며 또 올라갈 생각에 가득 차 있다.

이탈리안 캠프 위쪽으로 올라서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1990년 다울라기리 1봉 등반 도중 사망한 리투아니아 산악인과 2010년 5월 13일 다울라기리 1봉 등정 후 하산길에 사고당한 중국 클라이머들의 추모비가 서 있다. 고산 등반은 위험하다. 무섭다. 작은 실수나 예상치 못한 날씨 변화가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머물 프렌치 캠프는 이탈리안 캠프에서 고도가 200~300m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만만치 않다. 수십 길 벼랑길을 따르다가 낙석지대를 따라 100m 이상 내려선 다음 퇴석빙하를 가로지르고 또다시 위험한 사면을 오르고 벼랑길을 가로질러야 한다. 이렇게 험악한 산길에서 디디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곤 함께 셀프 촬영하자고 팔을 잡아끈다. 이제 친근감을 나타낼 만큼 가까워졌다.

평탄한 계곡으로 접어든 이후 적당한 캠프지를 찾는데 다울라기리 1봉 서벽에서 굉음과 동시에 눈사태가 일어난다. 크다. 눈사태는 거대한 눈가루를 날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결국 지나쳤던 테라스 지대가 눈사태 위험이 없는 안전지대라 결론 내리고 캠프를 구축한다. 지형도상 스위스 베이스캠프(3690m)다.

텐트를 친 다음 빙하수로 내려서 얼굴을 씻은 뒤 발을 담그자 얼어붙는 느낌이다. 화들짝 놀라 텐트로 돌아와 침낭 속에 발을 집어넣는다. 포터들은 마른 장작을 잔뜩 주워 와 텐트 옆에 모닥불을 피운다. 석상명 씨도 포터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불을 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제 식량이 많이 줄어들어 짐이 가벼워졌고, 포터들과 일행이 낯이 익다 보니 분위기도 좋아졌다.

서기석 씨와 김창호 대장은 축전용 솔라 패널(태양전지)을 놓을 자리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설치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그늘이 덮친다. 골짜기가 워낙 깊어 오후 2시밖에 안 됐는데 해가 산을 넘어간 것이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안개가 피어오르고, 30분쯤 더 지나자 설봉 설릉은 저녁노을에 벌겋게 물든다. 신비스럽고 영험한 풍광이다. 그 속에서 우리도 히말라야의 전설 속 인물이 돼간다.


강풍 강추위에 아침 거른 채 베이스캠프 탈출

투크체 서봉(6920m) 북동벽. 수직고 약 2000m 높이의 거벽으로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포터들이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르게 모닝티를 내놓는다. 오늘은 드디어 다울라기리 1봉 베이스캠프(4750m)에 입성하는 날이다. 치링은 텐트를 걷으면서 “오늘은 점심 해 먹을 곳이 마땅찮아 간식으로 때우면서 베이스캠프까지 가야 한다”며 은근히 겁을 준다. 포터들은 다른 날에 비해 서두른다. 점심 없이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속도를 내야 하는가 보다.

“다 죽었어, 다 죽었어….”

2시간쯤 올랐을까. 황톳빛 퇴석빙하 위에 텐트 두 동이 보인다. 까마귀 두 마리가 텐트 위에 앉아 있다가 휙 날아가 버린다. 포터들은 텐트 곳곳을 들추며 비스킷 등 먹거리를 챙긴다. 쿡인 차우다리는 텐트 한 동을 찾아내 배낭 위에 얹는다.

반면, 김창호 대장은 텐트를 둘러보곤 “캠프 주인들이 다 죽은 것 같다”며 텐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김 대장은 이탈리안 캠프 위쪽 추모비의 글을 기억해내며 두 사람은 하산하는 날 사고를 당했고 한 사람은 7450m대 청빙 구간에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추측한다. 트레킹을 마친 뒤 카트만두에서 확인한 결과 2010년 봄 다울라기리 등정 후 사고당한 중국 클라이머의 캠프였다.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눈에 띄는 빈 텐트는 대개 사고자들 것이다. 2010년 쿰부히말과 인접한 롤왈링 트레킹 도중 설사면에 덩그러니 놓인 텐트도 마찬가지였다. 텐트 안에 두툼한 침낭이 있었고, 그 안에는 이미 여러 달 지난 주검이 있었다. 히말라야는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함께 지니고 있지만 무서운 곳이다. 에베레스트의 경우, 한 해(대개 봄 시즌) 300여 명씩 정상에 올라서지만 한 해 평균 대여섯 명이 목숨을 잃곤 한다. 에베레스트가 아니더라도 홀로 등반이나 트레킹에 나섰다가 목격자 한 명 없는 상황에서 사라지는 이가 종종 있다. 등반 중 크레바스 속으로 추락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산길에서 발을 헛디뎌 빙하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된비알이 반복되는 퇴석빙하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디디들마저 필자에게 가엽다는 눈빛을 보낸다. 치링은 내 뒤에 딱 붙어서 온다. 낙오할까 염려되나 보다. 또 급경사 언덕이 앞을 가로막는다. 된비알을 올려치자 타이어가 흙더미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추락한 헬기의 잔해다. 다울라기리 협곡은 워낙 깊고 기류 변화가 심해 헬기가 접근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다.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 짐을 옮길 때 대개 말을 이용한다.

오후 2시 30분경 드디어 다울라기리 1봉 베이스캠프에 닿는다. 바람이 드세고 춥다.

“1962년 박철암 대장님이 이끈 경희대 원정대는 포카라에서 출발해 우리가 따른 계곡으로 접근했어요. 20일 걸렸어요. 대단한 탐험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우리 하산지점인 마르파까지 차로 접근하고 이후 말에 짐을 싣고 사흘 만에 다가섭니다.”

김창호 대장은 박철암 대장이 정찰을 위해 중턱까지 오른 투크체봉을 가리키며 “정말 대단한 탐험이자 원정이었을 것”이라 극찬하곤, 산할아버지처럼 수염이 근사하게 자란 서기석 씨에게 다울라기리 원정기에 실린 박철암 대장의 포즈를 취해달라 요청한다. 그러나 아무리 포즈를 취한들 56년 전 느낌까지 재현할 수 없는 일.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이 해가 떨어지자 더욱 거칠어진다. 취사팀은 저녁식사 후 취사텐트를 해체해 취사도구와 함께 커다란 돌멩이로 눌러놓는다. 텐트 플라이가 펄럭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런데도 모두 코를 골아가며 잘도 잔다. 김창호 대장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다. 고산 등반 잘하려면 잠도 잘 자야 하는가 싶다. 역시 히말라야의 사나이다.

텐트 천이 얼굴을 후려친다. 이러다 텐트가 터져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밖으로 나가 벗겨진 플라이를 잡아당겨 돌멩이로 누르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으나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 바람에 휜 폴이 내 몸을 짓눌러댈 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포터들은 텐트 플라이가 반쯤 벗겨진 채 펄럭이는데도 서로 딱 달라붙어서 잘 자고 있다. 똑같은 강도의 바람이 불어대는데 나만 못 자고 있다. 상황은 같아도 반응은 사람 따라 다르구나 싶다.

엊저녁엔 얼음을 녹여 밥을 해 먹었지만 오늘 새벽은 물이 있더라도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해가 뜨자마자 텐트 걷고 짐을 싸 서둘러 출발한다. 탈출이다.

고개 들기 힘들 만큼 강한 바람을 가르며 퇴석빙하 위로 올라선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치링이 빙하 왼쪽 지계곡에서 빙폭을 발견하고 차 한 잔씩 끓여 마시고 가자고 한다. 빙폭에서 뿜어대는 냉기가 뼛속을 파고드는 듯하다. 그래도 뜨거운 밀크티를 마시자 몸이 풀린다.

먼지 풀풀 날리는 된비알 퇴석사면을 한 시간쯤 오르자 투크체 서봉 빙탑지대와 트레킹 여정 중 가장 높은 프렌치패스(5360m)가 빤히 보인다. 하지만 멀다. 가도 가도 고갯마루는 멀기만 하다. 오후 1시, 드디어 프렌치패스 언덕마루에 올라선다. 뜻밖에 프렌치패스는 밋밋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언덕 뒤편에 숨어 있던 히든밸리(Hidden Valley)가 눈에 들어온다. 어마어마한 분지형 평원이다. 해발 5100m대 높이의 히든밸리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풀이 자라나 산 아랫마을 주민들이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끌고 올라와 방목하고 내려가곤 한다고 한다.

“한 시간이면 캠프지에 도착할 거예요.”

히든밸리가 빤히 한눈에 들어와 치링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앞서가는 포터들이 히든밸리 캠프 쪽으로 내려서지 않고 둔덕을 넘어 급사면으로 올라붙는다. 치링은 앞서간 차우다리와 무전 교신을 하더니 “히든밸리 캠프 부근의 냇물이 말라붙어 타파 반장(5244m·담푸스패스) 너머 담푸스 캠프(5000m)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든데 다시 된비알을 올려쳐 타파 반장을 넘어야 한다니.

오후 4시 40분 타파 반장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해가 넘어가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쿵쾅댄다. 바람에 펄럭이는 오색 깃발 뒤로 안나푸르나 산군이 눈앞에 펼쳐졌다. 닐기리 북봉(7061m)에서 안나푸르나 1봉(8091m)-안나푸르나 남봉(7219m) 그리고 물고기 꼬리를 연상케 하는 마차푸레(6997m)에 이르기까지 안나푸르나 산군의 명봉들이 감동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사진 촬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마중 온 포터와 함께 가파른 사면을 30분쯤 내려서자 캠프가 보인다. 한참 먼저 간 것 같은데 막 취사용 텐트만 세워지고 다른 텐트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 표정이 딱딱하다. 어젯밤 강풍에 시달린 데다 아침나절 찐 보리에 밀크티 한 잔으로 온종일 걷다 보니 지칠 수밖에.

하지만 텐트 안에 들어서자 언제 힘들었냐는 듯 또 깔깔대고 떠들어댄다. 포터들은 젊은 사람이 짐을 많이 짊어지고 나이 든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메는 걸 당연시한다. 또 캠프장에 도착하면 뒤처진 사람을 돕기 위해 되돌아가곤 한다. 우리에 비해 훨씬 인간적인 모습이다. 만약 우리처럼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 받고 얼굴 찌푸린다면 이곳 사람들은 1년 365일 내내 딱딱한 얼굴로 살 수밖에 없으리라 싶어지면서 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황량한 저곳은 또 어떨까? 다음에는 저기다’

트레킹 마지막 날, 투크체 서봉을 등진 채 마르파 마을로 향하는 서기석 씨와 포터들. 이번 트레킹의 대미를 장식하는 명풍경이다.
“뭐가 이리 먼 거야! 가도 가도 끝이 없잖아!”

트레킹 마지막 날은 좀 순탄하려나 기대했는데 길고 긴 허리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진을 짜낸다. 그래도 투크체봉 남동벽은 거대한 장벽을 이루며 웅장함을 과시하고 산 아래로 내일 우리가 따를 찻길이 바라보이자 마음이 놓인다.

“여기서 푹 쉬다 내려가죠.”

능선 어깻죽지에 이르자 김창호 대장이 “여기서 조망을 맘껏 즐기다 하산하자”고 한다. 이제 트레킹을 마무리할 마을인 마르파(Marpha·2670m)와 비행장이 있는 좀솜 일원이 빤히 눈에 들어온다. 오늘 저녁은 마르파에서 포터들을 위해 감사 파티를 열고 내일은 로컬버스로 타토바니로 이동해 온천욕을 즐기고 그 이튿날은 지프로 포카라로 이동한다. 이제 마르파까지 서너 시간 걸으면 도보 트레킹은 끝난다.

가파른 사면을 지그재그 길 따라 하산, 널찍한 테라스로 내려서자 취사팀은 얼어붙은 실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포터들은 모두 물줄기 아래 모여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날은 마지막 날인가 보다.

이제야 퇴임 기념 힐링 트레킹이다 싶다. 양말 벗고 맨발로 히말라야의 바람을 쐰다. 지도를 펼친 다음 눈앞에 바라보이는 산봉들을 대조해본다. 눈길을 붙잡는 곳은 설봉 반짝이는 안나푸르나 산군이 아니다. 그 왼쪽, 누런빛 산봉산릉이 첩첩을 이룬 무스탕과 돌포다. 황량한 저긴 또 어떤 곳일까? 산꾼의 호기심이 살아난다. 다음에는 저기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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