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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아빠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필살기 5

필자는 만 52세의 가장이다.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큰아들은 대학 3학년, 작은아들은 고2이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는 성북구 정릉동 산골짜기에서 자랐다. 큰아이가 다닌 정릉초등학교는 아마도 서울시내 600여 초등학교 가운데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학교일 것이다. 어느 날인가 아들은 방과 후에 콘크리트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 발이 엉켜 공중 부양, 입을 아래 계단에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앞니 절반이 부러졌을 뿐이니 하늘이 도우셨음에 틀림없다.

당시만 해도 아빠라는 사람이 ‘세상 물정’을 몰라, 초등 2학년까지 바둑과 피아노 학원을 제외하고 학과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밤을 새우는 야근을 하고 뒤늦은 오후에 일어난 아빠는 아들이 3동짜리 작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혼자 구름다리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서야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가슴 아픈’ 장면에 충격을 받아 아빠는 정릉 생활 10년 만에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다닌 성복초등학교는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으나, 큰아들은 다르게 느꼈던 모양이다.

당시 용인시 수지구가 평준화 지역이 아니라는 기초적 사실조차 몰랐던 부모는 중3 담임으로부터 “수지 내 중간 이하 수준의 고교 진학이 가능할 뿐”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고, 결단력 강한 아이들 엄마는 단 3일 만에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전세방을 구했다.

‘강남의 강북’이라는 별칭을 가진 일원동 소재 중동중학교로 전학을 한 큰아이는 본격적인 ‘반항기’로 접어들었다.

연기자가 꿈이라며 연극영화과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고지식한 아빠는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절대 불가라 맞섰고, 부자간의 불화는 고교 3년 내내 이어졌다. 다행히 하느님이 한 번 더 보우하사, 4년제 대학에 들어가긴 했다.

장황하게 아들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아들과 길고 긴 갈등의 시간을 보냈기에 어느 아버지 못지않게 ‘엇나가는’ 아들과 화해하는 법에 대해 논할 자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런 경험들을 통해 19~22세 청년들에게 ‘꼰대 아빠를 다루는 법’을 전해줄 능력과 의사 또한 충분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다. ‘공자님 말씀’ 같은 건 아예 관심 밖이니 안심하고 들어보기 바란다.

우선, “아빠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모든 갈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며, 따라서 갈등의 해소도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일찍이 “성격이 운명”이라고 갈파했듯, 한 사람의 기본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 더군다나 50년 넘게 살아온 아빠라는 사람들은 절대 ‘기본 가라꾸’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버지와 갈등 관계에 있는 여러분들은 아빠라는 사람이 바뀌기를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아빠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신의 성정에 반(反)하는 내용까지 어떻게든 소화하려는 ‘훌륭한’ 아빠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빠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되, 그것을 관철시키려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대화, 아니 논쟁 도중 도저히 못 참겠거든 아예 자리를 피하는 게 낫다.

둘째,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은 진짜 그렇다. 청소년 시기에 제일 듣기 짜증나는 말이 아마도 “공부해라”라면, 그에 못지않게 화나는 말은 “모두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전두엽이 덜 발달한 청소년기에는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면서, 내가 행복해하는 걸 방해하면서 무슨 나를 위해서 그런다는 건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진짜이며 더구나 아빠엄마의 조언은 현실적으로 거의 100% 옳다.

한국은 학벌 사회다, 대학 레벨에 따라 네 인생의 레벨이 바뀐다, 인이 박히기 전에 담배 끊어라, 공부는 다 때가 있다, 여자 친구는 학업에 방해만 될 뿐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민 같은 건 대학 가서 해도 된다, 게임이 밥 먹여 주냐, 친구 좀 가려서 사귀어라….

필자의 큰아이는 아빠의 결사반대 덕분에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3학년인 지금은 “그때 아빠 말 안 듣고 고집 부렸으면, 아직까지도 연영과 들어가려 3수, 4수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발,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서 왜 나에게 그걸 강요하는 거야?’라는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공부에 한이 맺힌 아빠가 아들에게 좋은 성적을 요구한다. 본인이 못해서 현실 사회에서 고통을 받은 아빠가, ‘내 새끼는 제발 내 꼴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의 등을 떠미는 것이다.

셋째, 아빠를 설득하려면 말이라도 제발 ‘예쁘게’ 하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말 한마디 잘못하다간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아주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언어다. 존대법도 지나치게 발달해서 매우 피곤한 언어이기도 하다.

아빠가 반대하는 걸 관철하려는 여러분은 그러므로 더더욱 신중하게 말을 가려서, 최대한 예쁜 말투로 아빠에게 접근해야 한다. 직장 상사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다 피곤에 전 몸으로 귀가한 아빠에게 밑도 끝도 없이 “용돈 좀 주세요”라고 목청을 높인다면 연봉 1억이 넘는 고소득 아빠라도 1000원 한 장 주기 싫어진다.

아빠의 어깨를 주무르기 민망하다면 만면에 미소라도 지으며 접근하라. 자기 아들에게 주는 돈이다. 없어 못 주지, 있는데 안 주는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하물며, “고등학교 안 다니고 검정고시 보겠다”라든가 “대안학교로 전학 가겠다”, “미국 유학 보내달라” 같은 ‘엄청난’ 발언을 하려면 아빠에게 온갖 교태를 다 부릴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하라.

넷째, 아빠는 아들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 아들들은 특히 이 점을 잘 모르는 듯하다. 아들 앞에서 잘난 척하고, 강한 척하지만 아빠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아들 데리고 목욕탕 가는 게 꿈이었던 젊은 아빠들은 아이가 20세 언저리가 될 무렵이면 머리가 빠지고 허벅지도 가늘어지는 중년의 반(半) 늙은이 신세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아들들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듯, 아빠들은 아들의 위로 한마디에 목말라 한다. “아빠, 힘들지?”, “아빠, 우리 맛있는 거 같이 먹으러 가자” 이렇게 말하는 아들을 마다할 아빠는 한국에 없다. 맨날 제 친구들과 어울릴 궁리만 하지 말고, 아빠 집에 있는 시간엔 어떻게든 집밖으로 돌 머리만 쓰지 말고, 아빠에게 “함께 산에 오르자”고 말해 보라. 장담하건대 아빠 얼굴이 환해지고, 갑자기 방문 열고 들어와 “엄마한텐 말하지 말라”며 두둑한 용돈을 건넬 것이다.

그렇다. ‘꼰대 아빠’는 그런 사람들이다. 부디, 너무 늦게 깨닫지 말지어다. 아빠의 본질을 명확히 알면, 뒤엉킨 부자관계를 풀 실마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여러분도 언젠가는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때쯤이면 아마도 지금 여러분의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아빠와 화해하려 들면 이미 여러분의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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