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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으로 작품 만드는 숲속예술학교 부부작가 이정인·이재은

나무는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장은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내에서 산속으로 이어지는 외딴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가을볕이 쏟아지는 고즈넉한 시골길을 20여 분 따라 올라가니 ‘숲속예술학교’라는 팻말이 보인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여 양지(陽地)에 자리 잡은 단층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작가부부 이정인·이재은씨가 작품을 전시하고 차도 내면서 사람들을 맞는 갤러리 카페다. 카페에 놓여 있는 의자와 탁자, 싱크대 모두 이정인씨의 작품. 벽에는 이정인씨가 나무로 만든 산천어가 걸려 있다. 강의 최상류 맑은 물에서 사는 산천어는 매년 1월에 열리는 ‘산천어축제’로 화천의 상징처럼 된 물고기. 이정인씨는 전국의 바닷가에서 구한 폐목으로 산천어를 만든다. 한때는 배의 일부분 혹은 집이나 가구의 일부분이었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강을 거쳐 바다까지 떠밀려온 폐목들. 모서리가 부서져 나가고, 커다란 못이 박혀 있거나 숭숭 벌레에 파 먹히고, 햇볕에 허옇게 바랜 나뭇조각들. 그는 나뭇조각의 형태는 그대로 둔 채 눈을 그리거나 붙이고, 색칠하고, 금빛 비늘을 그려 넣어 산천어를 만든다. 버려진 나뭇조각으로 만든 산천어들은 펄떡펄떡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갖가지 형태의 물고기들이 제각각 개성을 드러낸다. 파도가 치듯 푸른색 페인트를 끼얹기도 하고, 먹과 아크릴물감을 칠해 물고기로서 새 생명을 부여한 나뭇조각은 땅에 뿌리내린 채 나무로 살았던 세월, 베어진 후 배나 가구의 일부분이었던 세월, 그리고 폐목이 되어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던 세월을 모두 함축한 채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햇빛에 바래고 구멍이 뚫리고 못이 박혀 있어 더욱 그렇다.

“금방 베어낸 나무보다 이 나무가 사실은 훨씬 더 강해요. 좋은 재목을 만들려면 바닷물에 담가놓고 또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자연스레 그런 세월을 지났으니까요.”


나무로 작업하며 희귀병 완치


이정인씨는 왜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버려진 나뭇조각을 찾아 이 바다 저 바다를 헤매 다니게 되었을까? 왜 그런 폐목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할까? 폐목이 그렇듯 그에게도 아픔 그리고 인내의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정인씨와 서양화를 공부한 이재은씨는 미술학교 교사로 함께 일하면서 만났고 결혼했다. 그런데 이정인씨가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쳤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하다 찾아낸 병명은 크론병. 뚜렷한 원인도 치료방법도 알려져 있지 않은 난치병이었다. 2004년 이들은 깨끗한 공기와 먹을거리를 좇아 오대산 밑으로 들어갔고, 다시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으로 옮겼다. 두 사람 모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때였다. 내촌에서 우연히 목공소 일을 도우면서 이정인씨는 운명처럼 나무를 만났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던 남편을 찾아갔다 남편이 만든 가구를 보고 ‘이 사람은 나무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아내 이재은씨는 말한다. 건강 때문에 장시간 작업하기 어려웠던 남편이 하루 종일 나무를 만지고, 쉬어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나무를 껴안고 있었다. 실제로 나무작업을 하면서 병세도 점점 나아졌다. 조용히 작업할 곳을 찾던 두 사람이 2010년 말, 15년간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던 화천의 폐교에 자리 잡고 ‘숲속예술학교’를 만든 것도 나무 때문이었다.

“학교 뒤에 서 있는 300년 넘은 물푸레나무를 보고 단번에 반했어요. V자 모양을 그리며 뻗어나간 가지가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던지.”


북쪽으로 4km만 더 올라가면 민통선이라 사람 발길이 뜸해 한적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산천어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화천에 들어오면서였다.

“화천(華川)이라는 지명에 물이 빛난다는 뜻이 있잖아요? 물을 빛나게 하는 존재가 물고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화천의 상징인 산천어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냥 나무가 아니라 폐목으로 산천어를 만든 것은 가족과 함께 동해안을 찾았다 떠밀려 내려온 나뭇조각을 발견하면서였다. 시련으로 더욱 단단해진 폐목이 인간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설악산 양폭대피소가 0.9km 남았음을 알리는 나무 표지판을 양양 바닷가에서 건지기도 했다.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서 형상을 보고 조각했다고 하듯 그도 폐목을 볼 때 물고기의 형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물고기는 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있어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졌죠. 불교와 기독교 모두 물고기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고, 우리 문화에서는 예부터 다산과 풍요, 부부금슬, 소원성취, 입신양명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버려진 나뭇조각으로 인간을 지켜주는 물고기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화천은 이정인씨가 군복무를 했던 곳. 숲속예술학교는 인근 부대들과 결연을 맺고 장병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캠프를 연다. 이정인씨가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품을 설명하고, 각자 자신만의 물고기를 만들게 한다.

“‘너희를 지켜줄 거야’라며 나무로 물고기를 만들라고 하면 정말 자신과 꼭 닮은 물고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 가슴속 깊이 묻어놓았던 이야기를 하는 장병들이 많아요. 상처받은 나무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장병들도 있더라고요.”

숲속예술학교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율대로 542
물고기뿐 아니라 그가 만든 가구에서도 ‘치유’를 읽을 수 있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책상의 상판, 갈라진 틈을 손으로 쓰다듬자 조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쓰다듬자 불이 꺼진다. 부드러운 나뭇결을 쓰다듬으며 나무의 상처 부위라 할 수 있는 부분을 가만가만 매만지자 환한 불이 들어오는 데서 난데없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는 이것을 “가슴으로 만든 가구”라고 표현한다. 4개 다리 중 하나는 산에서 찾아낸 나무를 끼워 넣어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한 테이블도 있다. 호두나무 테이블의 다리 중 하나에 살구나무를 원래 모습 그대로 끼워 넣는 식인데,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눈으로 즐기고 또 손으로 쓰다듬게 된다. 이정인씨는 “가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런 구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만든 원목의자에 앉으니 나무 같지 않게 편안하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나 등받이 모두 인체 곡선을 감안해 둥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구의 다리는 나무가 원래 서 있던 방향을 맞춰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방향과 반대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도록 다리를 만들면 가구가 뒤틀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재료가 되는 나무 그리고 그것을 쓸 인간을 모두 배려하면서 가구를 만든다.


상판 위에 켜켜이 원목을 붙여서 봉긋한 산 모양을 만들어 자연을 느끼게 하는 테이블도 있다. 복잡한 공정과 오랜 매만짐 끝에 탄생하는 가구다.

작은 나뭇조각들로 만든 갖가지 형태의 물고기를 붙여서 만든 조명등. 이곳을 찾은 장병들에게 “이 중에서 너랑 닮은 물고기를 찾아보라”고 하고, “이렇게 각기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사는 게 우리 모습이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숲속예술학교 벽에는 아내 이재은씨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있는 행복한 가족그림도 있었다. 생태세밀화가로 책도 여러 권 펴낸 이재은씨는 화천에 들어온 후 환경문제에 관심이 커져 버려진 마네킹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실에는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길이 2m80의 긴 장미 원목 위에 이재은씨가 그린 화천 풍경도 있었다. “여기가 우리 학교, 저기 물푸레나무 보이죠? 그 뒤에 빨간 집이 있고. 여기 화천군청, 수력발전소, 파로호, 산소길도 있네요”라며 열심히 설명하는 두 사람에게서 화천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을 그림으로 표현하던 조선시대 화가처럼. 두 사람은 각기 작업해온 작품들로 서울 그리고 강원도에서 계속 전시를 열고 있다.


외지인 보기 어렵던, 노인만 살던 마을도 이들 부부로 인해 활기를 찾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채 으스스하던 학교가 화사하게 탈바꿈하면서 동네 풍경이 달라지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된 것이다.

교육단체나 CEO 등을 대상으로 간간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부는 5명 이상이 신청하면 나무로 산천어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준다. 아니면 숲속예술학교의 갤러리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작품을 둘러보고 작가의 나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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