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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 수의사

병든 동물과 보호자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의사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함께 사는 동물이 이제 친구나 가족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최근엔 애완동물(pet)이라는 말보다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다. 반려동물이란 우리 삶의 동반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고 동물의 생태환경을 고려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수의사의 필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수의학은 18세기 초 유럽 전 지역에서 소 전염병이 발생해 대부분의 소가 폐사되면서 동물의학에 대한 사회적인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시작됐다. 1762년에는 프랑스 리용에 첫 수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대·건국대·경상대·경북대·서울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에 수의과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수의사가 되기 위해선 수의과대학에 입학해 수의예과 2년, 본과 4년, 총 6년의 과정을 수료한 후 수의사 국가고시를 치르고 합격하면 수의사 면허가 발급된다. 반려동물의 건강과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수의사의 인기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의사는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개·고양이·토끼 등 작은 동물에서부터 소·말·돼지와 같은 산업동물 및 야생동물, 조류, 어류, 악어나 뱀과 같은 파충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척추동물, 곤충류 등을 진료 대상으로 한다. 구제역·조류독감 등 악성 가축 전염병의 방역과 축산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검사, 그리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동물, 축산식품의 검역도 수의사가 담당한다. 이외에도 실험동물 관리, 대단위 동물원의 야생동물 진료, 보호, 보전 및 동물의 유전 자원관리 등 수의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보건과 동물복지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물병원은 대학동물병원, 2차 동물병원 외에 작은 규모의 동물병원이 대부분이지만, 엄연히 종합병원으로 구분된다. 외과·산과·내과·이비인후과· 정형외과·임상병리과·치과·심지어 정신과 영역까지 다룬다. 즉, 수의사는 전문의이자 종합의로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많은 경험을 쌓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전문의 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수의사 전문의 제도가 없다. 지역 동물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마냥 대학병원으로 후송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산과 전문의가 되어 산고의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어미와 죽어가는 새끼를 제왕절개술로 살려야 하고, 강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곧바로 응급의학 전문의가 되어 심폐소생술로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스마트 동물병원 최한범 원장


이번 달 〈topclass〉에서는 충남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3년여간 소동물 임상수의사로 수련한 뒤 현재 스마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한범 원장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면서 길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우유를 꼭 챙겨주었던 그는 자연스레 수의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양쪽 팔에 고양이, 강아지 등에 할퀸 자국이 가득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해맑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동.반.자.
병원을 찾는 동물 중에는 병이 늦게 발견되어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깊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제일 안타까운 경우다. 사람과 오랫동안 지내면서 야생성이 퇴화된 반려동물이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자기보호를 위해 병을 숨기는 경우가 있어 주인들이 상황을 늦게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이 주인에게 이상증후에 대해 계속 신호를 보내도 잘 알아차리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매일 사료를 주고 예뻐하지만 진정 반려동물로 그들의 아픔까지 헤아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길.고.양.이.
동반자 역할로 예쁨을 받는 반려동물이 있는 반면, 우리 주변을 서성이며 살아가는 길고양이도 많다. 한 손님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고양이를 안고 온 적이 있는데, 검사해보니 바이러스 질병에 걸린 것이었다. 비슷한 원인으로 죽어가는 길고양이가 많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 밖에 놓인 동물들이 예방접종을 받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 뒤끝이 아파왔다. 동물보호 시설이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로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전국 30여 곳의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모여 결성한 동물병원 생명캠프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안락사 직전의 동물을 한 달에 2~3마리씩 구조한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에게 심장사상충 약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체계적인 관리와 관심, 그리고 수의사들의 사회적 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첫발을 내딛게 되지 않을까.


복.돌.이
여덟 살 슈나우저 복돌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많이 아프다. 당뇨병, 백내장, 만성피부염이 있는 데다 방광결석수술도 세 번이나 했다. 체질적으로 결석이 잘 생기는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반려 동물을 데리고 병원에 내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또 노령성 질병,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안.락.사.
버려지거나 길을 잃은 개·고양이는 일단 동물 보호 구조단에 인계되고, 9일 동안 새로운 보호자나 옛 보호자를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보호자가 있는 경우, 안락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이 따르는 불치병에 걸렸을 때, 교육이나 학술 연구 등 기타 과학적 목적으로 실험이 필요한 경우, 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 등 나름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현실은 다르다. 동물 진료 시 현대의학의 한계와 보호자의 경제적인 부담, 그리고 완쾌 후 후유증 등을 고려하다 보면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긴다. 우리 병원에서도 안락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몇 년간 보살폈지만 전신 경련 등 병세가 깊어 결국 안락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간단히 치료를 받으면 되는 질환임에도 보호자가 안락사를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치료해보지도 않고 안락사를 요구할 땐 병원에 데리고 오게 한다. 안 된다고 하면 다른 곳에 가서 안락사를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한다. 그나마 문의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냥 길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16.시.간.
흔히 육체노동자를 블루컬러, 사무노동자를 화이트 컬러라고 부르는데 수의사는 그레이컬러인 셈이다. 즉, 머리는 머리대로 쓰고 몸은 몸대로 쓰는, 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24시간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진료수의사는 3교대 형태로 근무하며, 나는 매일 16시간 일한다. 치료대상이 동물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도 필요하다. 보통 대형 견종의 몸무게는 40kg 안팎이고 이보다 더 큰 녀석도 있다. 사나운 동물일 경우 진료할 때 신체 상해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동물들을 진료하다 보면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동.물.의. 파.수.꾼.
동물병원에 있으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동물 사이의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와 정을 느낄 수 있다. 천진난만한 강아지를 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반려동물을 치료하다 보면 그들과 함께하는 보호자의 마음까지 보듬어줘야 할 때도 있다. 어려움도 있지만 완치되어 동물도 보호자도 환한 표정으로 병원 문을 나서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진정 반려동물의 파수꾼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병든 동물과 보호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아픔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소중한 아이(소동물)들을 위해 하얀 가운을 입는다.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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