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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도보 여행기 펴낸 하동군청 공무원 조문환

500리 물길 따라 걸으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섬진강의 사계(四季)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경남 하동군청 직원인 조문환 계장은 하동 토박이다. 하동에서 태어나 쉰을 넘긴 지금까지 줄곧 고향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남의 구례·광양과 이웃한 곳.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들어내는 수려한 풍광에, 봄이면 벚꽃·매화가 흐드러져 이맘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꼽힌다. 그가 살고 있는 악양면 평사리는 ‘국제 슬로시티’이자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섬진강을 놀이터 삼아 자란 덕분에 그는 섬진강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스스로를 ‘섬진강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다. 자신을 키운 섬진강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어서’ 2012년에는 매 주말, 섬진강 물길을 따라 걸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임실・순창・남원・곡성・구례・순천・하동・광양 등 지리산 자락을 따라 남해로 흘러간다. 총 212km, 500리 남짓한 구간을 걷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여행과 기록을 병행한 그는 지난 연말 그 글과 사진을 모아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는 책을 펴냈다. ‘두 발과 가슴으로 써내려간 섬진강 에세이’라는 부제처럼, 여행에서 만난 섬진강변 사람들과 철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따뜻하게 그렸다.

“섬진강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이왕이면 천천히 걸으면서, 꼭꼭 가슴에 담고 싶어 도보여행을 계획했어요. 평일에는 일을 해야 하니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지요. 1월에 시작한 여행이 그해 겨울에 들어설 무렵 끝났습니다. 덕분에 섬진강의 사계를 모두 볼 수 있었죠.”


하루 8~10km 정도 걷는 여유로운 일정이라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여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여행 전 ‘주변에 아무리 멋진 볼거리가 있어도 섬진강과 붙어 있지 않다면 들르지 않고 강만 보며 걸을 것’ ‘섬진강을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지 말 것’ ‘넓은 길, 편안한 길이 유혹하더라도 강을 따라 흐르는 길이 아니라면 걷지 말 것’이라는 나름의 원칙을 세운 탓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도로와 강물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면 평탄한 길을 버리고 물길을 택했어요. 길이 없으면 만들어 걷느라 가시덤불에 찔리기도 했고, 개울을 건너다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도 했지요. 아예 길이 끊긴 막다른 곳에 이르러 한참을 되돌아온 적도 있어요. 힘은 들었지만 그 덕분에 섬진강과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웃음).”

어느 곳이 가장 좋았는지 묻자 “여행의 진짜 볼거리는 풍경보다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섬진강변에 있는 수백 개의 마을을 지나며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마을마다 사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어디든 고향마을 같은 따뜻함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낯선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주고, 선뜻 집안으로 들여 마을의 역사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밥과 국을 한 사발씩 떠주며 식사를 권하던 어르신들이 여행을 이어가게 한 힘이었어요. 자연과 사람은 닮는다고 하잖아요. 섬진강처럼, 다들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2000명에게 매주 이메일로 ‘하동편지’ 발송


그가 책을 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작품은 2012년에 발간한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였다. 2011년 1월부터 한 해 동안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그해, 하동은 근 100년 만에 몰아닥친 한파와 구제역으로 지역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산과 들에 지천이었던 차나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었고, 가축들은 속절없이 땅에 묻혔다. 구제역 현장을 돌던 공무원이 과로로 순직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농촌 사람들이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이 처절한 싸움을 도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편지쓰기’를 시작했다. 도움보다는, 농민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듣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지방 공무원으로서 느끼는 애환, 농민들의 팍팍한 삶 외에도 그림처럼 예쁜 섬진강변 풍경과 꽃 소식을 부지런히 전했다.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었지만 예상외로 반향이 컸다. 가슴 한켠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묻고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하동의 강바람, 들바람이 느껴지는’ 그의 글은 마치 고향집에서 날아온 편지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기업인・예술가・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그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왔고, 사진 한 장에 마음이 움직여 섬진강을 여행하는 사람도 많았다. 남다른 문화적 감성으로 시작한 일이 하동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해 공무원으로서, 작가로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책도 내게 되었어요. 글 쓰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확장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무엇보다 독자가 많아지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무척 넓어졌어요. 삶이 훨씬 풍요로워졌고,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답답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향에 남은 걸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그는 아시아경제신문에 매주 금요일 ‘조문환의 평사리 일기’를 연재한다. 1주일에 한 번씩 보내는 ‘하동편지’도 계속 쓴다.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독자가 늘어 지금 그의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은 2000명이 넘는다. 한 편의 시화(詩畵) 같은 그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기에 그는 앞으로도 이 행복한 글쓰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시대, 그가 아직은 순박한 모습을 간직한 하동에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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