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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아재 대표 김로이 박사

사람을 치유하는 인문의학을 꿈꿉니다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하지영 

학아재는 독특한 곳이다. 문을 열면 창 너머로 북한산과 창덕궁이 한눈에 보인다.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주문하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벽에 걸린 미술작품들을 감상한다. 이곳은 예스러운 분위기와 현대적인 감성이 공존한다. 그런데 이 갤러리 겸 카페에서 한 계단 올라가면 피부과 병원이 나온다. 은은한 조명이 안을 비추고 양쪽 벽면엔 오래된 책들이 즐비한 것을 보면 아래층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분명히 병원이다. 카페·갤러리·클리닉이 한데 모인 학아재를 김로이 대표는 “인문의학 공간”이라 불렀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청담동에서 노화방지 클리닉을 개원한, 패기 넘치는 젊은 의사였다. 안티에이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병원은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밝고 안정적인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돌연 경희대 한의대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안국역 근처에 한국행복의학연구소를 열고 강의·명상·다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실험’이 끝나자 그는 청담동 병원을 정리하고, 북쪽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동쪽으로는 종묘가 위치한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의 눈에 한국적인 색채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었다. 의학자인 그의 곁에 심리학자・언어학자・철학자・교육학자・예술가 등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였고, 2013년 학아재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학아재(學我齋)’는 이름 그대로 ‘나를 배우는 곳’이다. 여기서 ‘배움’은 주어지는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드는 것을 일컫지 않는다. 가르침을 스스로 깨닫고 몸에 익히고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까지가 배움이다.


학아재는 내가 살아가는 생명력을 기르는 곳이다. 인문의학의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다.

“의학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탄생한 학문입니다.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일단 살리고 보자는, 절박한 심정에서 발달해왔죠. 탐구 대상은 언제나 질병이었고, 병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의학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의학이 사람을 살리고 삶을 지속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치료의학은 의학의 책무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포용하는, 모든 생명을 위한 의학은 무엇일까?’가 고민이었죠.”

그는 삶의 주체성을 ‘나’ 자신으로 가져오는 것이 해답이라고 보았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내 몸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줄어든다. 내시경을 해야 배탈이 난 줄 알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폐에 문제가 있는 줄 안다.


병이 생겼다는 것은 내 삶의 총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그것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건만, 사람들은 밖에서 의사를 찾고, 그가 자신들의 삶에 개입하여 치료하게 놔둔다. 하지만 한의학은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시선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화를 내면 간이 상한다고 말하며, 《동의보감》은 아침에 눈을 뜨고 어떻게 햇살을 받고 숨을 쉬어야 하는가를 기술한다.

“인간 바깥의 진리를 찾느라 인간이 인간을 소외했던 중세시대를 거쳐 인문주의 부흥운동인 르네상스가 나타났죠. 마찬가지로 바깥에서 건강을 구하던 의학에서도 살아 있는 ‘나’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나간 인문학적 인간상처럼 스스로 몸과 마음의 불균형을 느끼고 치유하는 과정이 중요해진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인문의학입니다.”


학아재에서는 매달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를 열고, 심리학 특강, 미술치료, 누드 크로키, 토우 만들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수시로 기획한다. 동양철학·서양철학·미학·의학 네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는 ‘인문학과 명상’이라는 독서명상 프로그램도 있다. 광범위한 철학적·문화적·예술적 체험은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특히 학아재의 핵심적인 인문의학 프로그램인 다도는 자기성찰에 매우 효과적이다.

카페 맨 안쪽에 자리 잡은 다실에서는 정기적으로 다회가 열린다. ‘인문학과 명상’ 프로그램 참가자 역시 대화를 나누기 전 다도에 참여한다. 다도는 일종의 명상으로서 몸과 마음을 차분히 하고 ‘나’를 가지런히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참고로 그는 한주류다도 유파의 한국 종주다(한주류다도는 재일교포 2세인 요시다 다마코가 일본의 정통 다도에 한국적인 전통 예법과 문화 양식을 녹여내 창류한 다도수양 체계다).


“옛날에는 번개가 치는 것만으로도, 가뭄이 지속되다 내리는 단비만으로도 ‘나’를 초월하는 무언가와 교감을 하고 영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다못해 효를 다해야 할 부모와 우애를 나누는 형제, 이런 관계망 속에서도 스스로 영성을 개발할 수 있었죠. 그런데 오늘날엔 돈과 성공이 삶의 목적이 되면서 영성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죠. ‘나’를 발견하는 데 영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저는 다도가 영성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도는 옆에 누가 없어도 혼자서 정성을 다해 한 동작 한 동작 섬세하게 해내야 합니다.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공손함과 성실함을 다해야 하죠. 잡념을 떨치고 몸의 움직임에 극도로 집중하면서 ‘나’에 대한 의식을 한껏 높일 수 있습니다.”

학아재는 ‘살롱’이다. 매 순간 여러 명의 ‘나’가 이곳에 모여 삶의 지혜와 경험을 나눈다. 소통과 대화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발견한다. ‘나’의 주체성을 가져오는 것도 ‘너’와 ‘우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첫 ‘인문학과 명상 미학’ 강좌가 있던 날 젊은 대학생 친구들이 한 명씩 평론가가 되어 갤러리에 전시 중인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데 미학을 처음 배워본다는 친구들이 제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어휘와 표현을 말하고,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았죠. 충격이었어요.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남들을 가르치고 인도해줘야지’ 하며 거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죠.

학아재는 저의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그 경지에 다다르지도 못했을뿐더러, 그런 모델을 바라지도 않아요. 저는 학아재가 실험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나’를 발견하고, ‘나’의 삶을 연습해볼 수 있는 그런 공간… 진정한 인문의학 공간으로 거듭나는 거죠.”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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