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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살아 있는 교육과정이다》 펴낸
강원도 고성군 공현진초등학교 김용근 교감

동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시작된 교육 혁신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교정을 둘러싸고 있는 방풍나무들 너머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작은 섬이 내다보이는 동해안의 공현진초등학교를 찾았다. 공현진항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에 있는 이 작은 학교의 교육실험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강원도형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공교육 최초로 발도르프 교육을 도입한 이 학교의 전교생 48명 중 70%가량이 외지에서 온 학생이다. 속초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있고, 이 학교에 다니게 하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이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하며 교육혁신을 꾀해온 이 학교의 김용근 교감은 최근 발도르프 교육을 소개하는 《선생님은 살아 있는 교육과정이다》를 펴냈다. 그에게 전화해 취재를 위해 학교를 찾겠다고 했더니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하는 서커스 시간에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초등학생이 서커스를 배운다고? 궁금했다.


체육관에 들어서니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저마다 기예를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저글링을 하는 등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는 6학년, 숨죽인 채 접시돌리기를 하는 3학년,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걷고 있는 1학년 모두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었다.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는 유치원생도 눈에 띄었다. 저글링이나 접시돌리기나 모두 신체적인 능력뿐 아니라 지구력과 집중력, 리듬감, 조정능력, 자신감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김용근 교감은 “체육수업은 전인교육을 목표로 해야 한다. 공을 던지고 받는 저글링은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 포기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생긴다. 그러나 그게 성공했을 때 아이들은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도 저글링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커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둘러서서 선생님의 인도로 조용히 숨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가며 거리낌 없이 교장, 교감선생님과 손뼉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공현진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만든 집 두 채가 있다. 이 집을 짓기 위해 아이들은 수평・각도・ 기울기・무게 등에 대해 배우고,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는 비율을 익히고, 실제로 벽돌 쌓는 연습도 했다. ‘창문은 꼭 사각형이나 원으로만 만들어야 하는가?’ 등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이때 세계 각국의 집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서로 힘을 모으면서 성실, 책임감, 협동심, 배려 등을 몸으로 배웠다. 수공예교실과 외부 컨테이너에 마련한 목공예교실도 눈에 띄었다. 손과 발을 많이 사용하면서 육체와 정신, 영혼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게 발도르프 교육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학교 뒤는 숲, 앞은 바다인 천혜의 환경도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교육환경으로 보였다.

김용근 교감은 “초등학교 교육은 지적인 것만 주입하는 게 아니라 감성을 살찌우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바깥활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에 그려진 미로를 따라 걷는 아이들. 줄을 어떻게 설 지부터 제각각 목소리를 내던 아이들이 미로를 따라 뛰듯이 걷는데, 한 아이는 선뜻 걸음을 옮기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러나 야단치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묵묵히 뒤에서 함께 걸어주었다. 아이는 뒤에 따라오는 선생님이 고맙고 든든한 듯 점점 발걸음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 역할이 원래 저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용근 교감은 “교사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성장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기질적 특징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하기까지 한 선생님이 담임을 맡아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는 게 좋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상적이기로는 한 선생님이 사춘기를 맞는 중2까지 맡아 아이가 사춘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근 교감.
1, 2학년 교실에는 보통의 교실들에 있는 책-걸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앉은뱅이책상과 방석이 놓여 있었는데, 아이들은 앉은뱅이책상 위에 걸터앉거나 올라서기도 하고, 선생님한테 달려가 매달리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교실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3학년 교실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진지하게 수업에 몰두해 있어 방해가 될까봐 선뜻 교실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활용하는 교육이 거의 없고, 철저히 교사와 학생이 대면하는 교육을 한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지식교육만을 강조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같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공부를 즐길 힘이 생긴 아이들은 일반적인 중-고등학교에 진학해도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발도르프 교육

발도르프 교육은 1919년 루돌프 슈타이너가 독일에 세운 발도르프학교에서 시작된 대안교육으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전인교육’이 특징이다. 인지 영역에만 치우친 교육에 반대하면서 신체와 정신적 성장에 맞춘 의지, 감각, 사고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적 자유를 얻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특징이다.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교육장관회의에서 ‘21세기 교육혁신의 모델’로 선정되었고, 현재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교육 모델 중 하나다. 1989년 춘천교대를 나온 후 강원도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김용근 교감이 발도르프 교육을 처음 접한 것은 1994년, 미국에서 온 발도르프 교사를 만나면서였다.

“이렇게 좋은 교육이 있는데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환경교육을 교육현장에 적용하면서 단행본 《우리들은 환경파수꾼》 《명태선생님의 환경교실》을 내기도 했던 그는 외국에 가서 연수를 받는 등 발도르프 교육을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 접목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아이들의 생각을 틀에 가둔다’는 이유로 교과서를 내려놓았다. 대신 더 깊이, 통합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교과서를 재구성하고 자료를 새로 만들었다. 그는 “수학에서 셈을 가르칠 때도 은연중 ‘나눔’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손뼉치기, 발구르기, 콩주머니 놀이, 공 놀이 등 온몸을 이용한 놀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입체도형의 겉넓이와 부피’를 가르칠 때는 아이들이 가로 1m, 세로 1m, 깊이 30cm로 땅을 파게 하고, 파낸 흙의 무게를 재보거나 구덩이에 물을 부은 후 그 무게를 재게 하면서 몸으로 익히게 한다.

‘나’에서 세상으로 조금씩 나가는 단계인 3학년 때는 우리 동네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사람과 동식물이 살았는지를 알아나가는 ‘동네학’을 시작한다. 5학년 때는 종이죽으로 우리나라의 입체모형지도를 만들게 한다. 아이들 발달단계에 맞게 형태그리기, 수공예(바느질・뜨개질), 목공예, 습식수채화, 자연학, 원예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교 단위가 아니라 개별 교사부터라도 이 교육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가까운 교사들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전파했고, 공교육 교사들을 중심으로 발도르프 교육 공부모임을 만들고, 한국발도르프교육 학교연대를 결성했다. 현재는 매주 1회 공현진초등학교 교사, 매달 1회 전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발도르프 교육 연수를 하고, 방학 때마다 독일의 발도르프 교사를 초청해 연수회를 연다. 교사들과 함께 독일의 교육현장을 찾기도 한다. 그는 “요청이 있으면 학부모 모임에서도 강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효과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계속 맡아 가르친 학생이 대부분이라 교직생활 동안 직접 가르친 제자는 200여 명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거의 다 파악하고 있지요.”

초등학교 때 자유롭게 생활하면 빡빡한 중-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하는 우려와 달리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깨우친 아이들이라 공부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했다”고 말한다. 그의 뒤를 이어 교사가 된 제자가 많고, 연구원, 특급호텔 주방장, 사회복지사 등 각자 꿈을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신체장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두웠던 제자가 제 일을 하면서 밝고 활기차게 사는 모습을 볼 때 교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교사는 돌을 조각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석공과 같다”고 말한다. 어떤 석공을 만나느냐에 따라 평범한 돌덩이로 남을 수도, 귀한 예술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현진 초등학교 교정에는 ‘서울 208km’ ‘시드니 8,304km’ ‘뉴욕 10,843km’ ‘케이프타운 13,890km’ ‘리우데자네이루 18,144km’라는 이정표가 쓰인 팻말이 서 있었다. 한적한 어촌마을,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헌신적이고 따뜻한 선생님들 덕분에 세계로 나가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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