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

시골 할머니들의 손맛 맛보려 전국에서 찾아옵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시골 할머니들의 손맛으로 이름난 농가 레스토랑.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비비정마을에 있는 농가 레스토랑을 찾아간 것은 우연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곡식창고를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에 간 길에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블로거들의 칭찬일색인 이곳을 찾았다. 먼저 전화로 예약하려 했더니, “손님이 너무 많아 기다리셔야 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주 등 가까운 지역뿐 아니라 서울, 강원도에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시골에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줄을 잇다니, ‘얼마나 맛이 있길래?’라는 궁금증이 커졌다.

2시가 다 되어 손님이 빠져나갈 때쯤에야 자리에 앉았다. 1만2000원, 1만5000원, 2만원으로 나뉘어져 있는 정식 중 1만5000원짜리를 시켰다. 무나물・시금치나물・콩나물・두부조림・ 달걀표고버섯장조림・녹두묵・김치・잡채・ 미나리잡채・고등어김치조림・조기찜・청국장・ 돼지편육・홍어무침과 꽃게탕 등이 나왔다. 1만2000원은 꽃게탕 대신 조기탕, 2만원은 갈비찜이 추가된다 했다.


대부분은 우리 밥상에 흔히 오르는 별스럽지 않은 반찬이다. 그렇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맛은 아니었다.

시금치나물은 달큼했고(요즘 마트에서 파는 시금치는 어떻게 요리해도 이런 맛이 안 난다), 들기름에 볶은 것 같은 잡채는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전라도 음식은 짜다는 선입견과 달리 모든 음식이 짜지 않고 간이 딱 맞아 자꾸 젓가락이 움직였다.

요리책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 한다 해서 나올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전식으로 호박죽과 샐러드, 후식으로는 식혜가 나오는데, 호박죽과 식혜 역시 그리 달지 않으면서 맛있었다. 기본에 충실한 것인데, 서울의 한정식집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맛,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 손맛’이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비밀은 식사 후 이 레스토랑의 셰프인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풀렸다.

“노지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재배된 시금치라 그래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하고는 맛이 다르지. 호박죽은 어느 지붕에 있던 호박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져요. 호박죽을 하루에 두 번도 끓이죠. 식혜는 엿기름부터 직접 만듭니다.”

카페 비비낙안에서 바라본 전경.
이 마을에서 재배된 것들을 갓 뽑아서 만들었으니, 신선도는 말할 것도 없다. 마을에서 구하지 못하는 재료는 삼례장에서 사오는데, 국내산만을 사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들기름도, 고춧가루나 된장・고추장도 모두 이 마을에서 직접 만든 것들. 이 마을에서 수확한 들깨를 그때그때 짜서 만들어서인지 들기름 향도 유난히 고소하다. 역시 이 마을에서 많이 나는 녹두로 만든 녹두묵은 상까지 받았다고 자랑한다.

맛의 비밀이 더 있는지 묻자 수석 셰프이자 이 마을의 부녀회장인 정도순씨(64)가 “조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 우리만의 비법이 있어”라고 털어놓는다. 멸치・무・다시마・파뿌리・양파껍질・마른 새우・ 버섯 등 갖가지 재료들을 물에 넣고 끓여서 맛국물을 만들어놓고 찌개・조림・무침에 두루 쓴다는 것.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정직한 맛’에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 앞에 걸어놓은 메주들.
60~70대인 이 할머니들은 어떻게 셰프가 되셨을까? 여기에는 외지 청년의 노력이 있었다. 만경강 옆 자투리땅에 자리 잡은 비비정마을. 농사지을 땅이 변변치 않은데다 30가구 남짓 사는, 작고 가난한 이 마을이 2009년 농림부 시범사업인 신문화공간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양수장과 정수탑이 있다는 이유가 컸다. 삼례와 익산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양수장과 정수탑은 1985년 가동이 중단되면서 주변이 폐허처럼 되어갔다. 완주군은 역사적 유산을 활용해 이 지역을 되살리기로 했다. 한 집 두 집 빈집이 늘어가고 거의 노인들만 남게 된 마을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전주 한옥마을 동문거리와 남부시장 등에서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 사업을 했던 소영식씨가 그 사명을 띠고 마을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삼례의 특산물인 딸기를 활용해 딸기레스토랑을 열까 했는데, 할머니들한테 와 닿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마을 주민들과 유리된 사업을 강행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 할머니들 음식 솜씨가 좋으신 거예요.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하실 때 제가 한 할머니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다음날 다른 할머니가 ‘이것도 먹어봐’하면서 비장의 음식을 해오셨죠. 사람들이 떠나가는 마을에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뭔가 해보겠다는 게 좋아 보이셨나봐요.”

1만5천원 밥상.
그는 할머니들 각자가 가장 잘하는 음식, 할머니들이 그린 텃밭 그림, 그리고 옛날 사진들을 가지고 완주문화의집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완주군수와 이장 200명이 그 전시회를 찾았어요. 할머니들이 주인공이 된 것은 일생 중 그때가 처음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자신들의 그림과 사진을 감상하는 이장들의 모습을 할머니들이 감격스레 바라봤죠. 그때부터 할머니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시골 레스토랑이지만 정갈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마을 할머니들은 한국음식관광축제 등 지역축제를 찾아다니면서 밥장사를 시작했다. 그러자니 어떤 손님을 대상으로 어떤 메뉴를 짤지, 원가를 어떻게 계산하고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모든 걸 연구해야 했다. 전국의 식당을 다니면서 벤치마킹도 했다. 마을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지을 때는 일꾼들 밥을 해주는 이른바 함바집을 운영하면서 식당운영도 미리 경험했다. 레스토랑 개업을 앞두고 할머니들은 식당 경영과 서비스, 조리, 푸드스타일을 배우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해 음식을 심심하게 만들자”든가, 식사 전에 전식, 식후에는 후식을 내자는 아이디어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왔다. 맛있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먹음직스럽게 내는 법도 연구했다.

자식들에게 좋은 것만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들되 공간이나 서비스는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하자고 했다.


2012년 말, 등록문화재로 빨간 벽돌건물인 양수장이 마주보이는 곳에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 만경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정수탑 옆에 카페 ‘비비낙안’이 들어섰다. 비비정은 이 마을에 있는 정자 이름. 16세기 무인 최영길이 건립한 정자로, 1998년 복원됐다. 비비낙안(飛飛落雁)은 완산8경 중 하나로, 비비정에서 강가 백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떼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카페 비비낙안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어 탁 트인 전망인데, 발갛게 물든 석양이 강물까지 물들이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처음에는 100석이나 되는 레스토랑을 열면서 ‘후미진 시골마을에 누가 일부러 밥을 먹으러 오겠는가?’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러나 ‘시골 할머니 손맛’으로 차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심 손님만 200명을 넘길 때가 많다고 한다. 점심은 11시 30분에서 오후 2시, 저녁은 오후 5시 30분에서 8시까지 운영하는데, 점심 손님이 밀려 오후 3시까지 손님을 받을 때가 많다. 메뉴는 손님들 반응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왔는데, 정도순씨는 “돼지고기와 깨순이 들어간 김치찌개를 메뉴에 추가할 계획인데, 맛있을 것”이라며 기대하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쌓은 돌계단을 따라 비비정 뒤편 언덕을 올라가면 비비낙안이 나온다. 비슷한 모양의 두 건물은 시골마을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그런데도 장식을 최소화하면서 유리, 철, 콘크리트, 나무 등 건축 재료가 두드러져 보이는 게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비비낙안을 운영하는 류한승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지난해 귀촌했다. 메뉴판을 보니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뽕잎차・민들레차・당조고추잎차・쑥차・ 가시오가피차 등이 눈길을 끈다. 뽕잎차를 마셔보니 향이 짙고 구수한 맛이다. 지난 여름에는 이 마을 어머니들이 만든 효소로 효소차를 냈는데, 인기가 좋아 재료가 떨어졌다고 한다.

“효소를 만드신 어머니들의 이름을 메뉴에 넣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번에는 조금 더 넉넉하게 만드시라고 부탁드렸지요.”

소영식씨.
비비낙안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미나와 교육이 이뤄지고, 올해부터는 매달 카페 옆에서 인디밴드 공연과 아트마켓, 로컬푸드 야시장을 열 계획. ‘비비정’이 할머니들의 손맛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면 ‘비비낙안’은 색다른 문화 프로그램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 같다. 비비정마을에서 수확한 쌀로 가양주를 만드는 ‘작은 양조장’도 마을 빈집에 들어섰다.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는, 풍미가 깊고 뒤끝이 없는 전통 가양주를 되살리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교육도 받았다.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가양주는 레스토랑과 카페 등에서 팔 예정. 레스토랑과 카페는 독립법인으로 운영되는데, 매출의 일정 부분은 마을기금으로 내놓는다.

이렇게 적립한 마을기금은 주민들의 노후복지와 이 마을로 귀촌하는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데 쓴다는 계획이다.

비비정마을에는 최근 하나 둘 귀촌한 청년들이 빈집을 채워나가고 있다. 시골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주민들의 잠재력이 청년들의 아이디어, 열정과 만날 때 어떤 변화와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는지 비비정마을은 보여주고 있다.
  • 2014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