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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 / 유어마인드 / 피노키오

사람사는 동네 책방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눈발이 난분분 날리는 겨울날 동네 책방을 찾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 그다지 많지 않은 책, 그다지 싸지 않은 책값… 등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 비하면 좋지 않은 점 투성이다.
하지만 문을 열면 경쾌한 종소리가 나서 좋았고, 낯설지 않은 풍경과 익숙한 책내음이 좋았다. 좋아할 만한 책을 단번에 추천해주는 주인 아저씨의 센스가 기분 좋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친구와의 담소가 좋았다. 동네 책방은 사람과 추억, 그리고 정을 담을 수 있어 좋다. 난 책 한 권을 샀다.
종로구 창성동 가가린(Gagarin)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딴 책방 ‘가가린’은 역사가 복잡하다. 2008년 6월 통의동에서 이른바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작은 공간을 서로 책을 돌려 보는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하다가, 최소한의 유지비를 위해 위탁판매 형식으로 바꾼 것이 현재의 가가린이다. 1년에 2만원 또는 평생 5만원을 내면 누구나 자신의 물품을 위탁 판매할 수 있다. 수수료는 30%다.

가가린은 책방이라기보다 창고 같은 느낌이다. 철제 책장에는 책 외에도 음반, 수공예품 등 갖가지 물품들이 가득하다. 손때 묻은 것도,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새것도 있다.

4년 넘게 책방을 관리하고 있는 차승현 매니저는 차분한 목소리로 가가린을 소개한다. 관광명소로 인기 높은 북촌지역과 효자동에 비해 창성동과 통의동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가가린은 그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그대로 서 있다.

“공동소유라 그런 것도 있지만, 가가린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이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대로 있어요. 굳이 유명해지기 위해 확장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소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책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마포구 서교동 유어마인드(Your Mind)


접근성이 좋은 1층에 위치하는 다른 책방들과 달리, 독립출판물 전문 책방 ‘유어마인드’는 특이하게 5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힘겹게 ‘산행’을 마치고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올라 책을 고르는 건 또 다른 경험이다.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희한한 책을 희한한 공간에서 팔아보자’는. 그런데 신간이 나올 때마다 힘드네요(웃음).”

주인 이로씨는 책을 만들면서 유통방법을 고민하다 직접 책방을 차렸다. 부인 모모미씨와 2009년 온라인 서비스를 먼저 시작하고, 1년 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홍대는 저희의 독특한 시도를 비교적 유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죠. 그동안 쌓인 역사가 있잖아요. 그 힘을 빌리고 싶었어요.”

유어마인드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매년 열리는 북마켓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소규모로 인쇄-제작하는 출판물과 음반을 일정 기간 한 공간에 모아놓으면 그때만큼은 무한한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만든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손수 만든 책과 잡지・음반 등을 전시·판매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저희의 정체성이자 구심점이에요. 여러 독립출판 책방들이 있지만 이런 형태의 마켓을 시작한 건 저희가 처음이었거든요. 독립출판은 기성출판에 비해 불친절하고 폐쇄적이에요. 작가와의 대화나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가 없다보니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죠. 저희는 독자들이 작가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일종의 갈증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교류가 활발했다면 이만한 호응은 기대할 수 없었을 거예요.”


2013년 5회 행사에는 총 104개 팀이 참가했는데, 이틀간 약 5100명이 방문하여 1만1000여 개의 물품이 거래되었다. 첫 회 방문객이 900명이었는데,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저희도 신기해요. 수치로 따지면 몇 개월 동안 올 손님이 이틀 만에 온 거거든요. 어떤 이벤트 하나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래서 제일 어려우면서도 제일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대표적인 독립출판물 전문책방 중 하나로서 유어마인드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저희의 목표는 ‘망하지 않는’ 거예요.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절박하기 때문이에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고 말하면 낙관적으로 들리잖아요. 하지만 제아무리 독립출판과 동네 책방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해도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절박감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매주, 매달, 매년 필요하다는 거죠. 일종의 배수진이에요.”

요즘 잘나가는 독립출판물

잡지 〈AVEC〉 〈DOMINO〉, 단행본 《도시의 숲》


마포구 연남동 피노키오(Pinocchio)


“연남동은 정말 ‘동네’ 같아요.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고, 개중에는 30년 이상 된 집들도 있어요. 골목도 예스럽죠.”

책방 ‘피노키오’는 2013년 6월 연남동에 둥지를 틀었다. 샛노란 벽지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제페토 할아버지의 공방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이곳은 그래픽 노블(그림책) 전문 책방이다. 그래픽 노블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소하다. 많은 이들이 아동문학의 일종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글자가 많지 않을 뿐 전달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 강렬하다.

“저는 그래픽 노블을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른이 읽어야 할 책이죠. 지금도 힘들 때면 저는 숀 탠의 《빨간 나무》를 읽어요.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순수함을 일깨워주거든요.”

주인 이희송씨는 미국·호주·인도 등 세계 각지의 그래픽 노블을 모은다. 번역본에서는 그림체가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되도록이면 원서를 구입한다. 자신이 읽은 것 중 좋았던 책이나 읽지 못했다면 서평을 참고하여 소개하고 싶은 책을 구입한다. 책값은 할인 없는 원서 가격이라 조금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책의 가치를 온당히 지키고 싶은 그의 고집에서 비롯된 결과다.


“동네 책방에는 책방 주인이 있잖아요. 책을 보러 오면 주인과 이야기할 수 있죠. 주민들이 책방에서 뭔가를 함께할 수도 있고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아요.”

그는 손님이 그래픽 노블을 낯설어하면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책이 좋은지 추천해준다. 책을 사면 간식을 손에 쥐여준다. 그렇게 관계를 맺는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그림 강좌와 전시회를 열어 주민들을 만난다. 이 좁은 공간에 스무 명 가까이 들어와 음악공연을 감상한 적도 있다. 그는 지역사회의 한 주체로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 고민한다.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게 모든 걸 바꾸죠. 책방을 차리기 전에 대사관에서 근무했어요.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편하게 생활하다보니 별 생각 없이 살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지 않고. 그러다 우연히 책에서 매일 8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병이나 사고가 아니라 순전히 굶어 죽는 거예요, 그 많은 수의 아이들이. 그때 제 인생이 바뀌었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NGO로 직장을 옮기고 조금이나마 제 힘을 보탰어요. 지금은 오랜 꿈을 위해 책방을 차리고 조용하게 지내지만, 여전히 빈곤・환경・교육 등에 관심이 많아요.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죠.”

내가 추천하는 책

숀 탠, 《빨간 나무(The Red Tree)》 / 《도착(The Arrival)》
크레이크 톰슨, 《담요(Blankets)》 / 《하비비(Habibi)》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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