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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빛깔공방 최정인 대표

옛 여인의 바느질을 세계에 소개할 현대적인 작품으로 만듭니다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하지영 

서울 북촌 ‘우리빛깔공방’에 들어서면 옷과 생활소품, 조각보 그리고 베개 같은 침구까지 옛 여인들이 바느질로 만들던 물건들이 현대의 작품이 되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우리빛깔공방을 만든 최정인 작가는 옛 양반집 규수들의 솜씨와 정성이 담긴 규방공예를 현대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세계에 선보이고 있다.
최정인 작가가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세계순회전(2009년 예술의전당)에 내놓은 옷은 스페인의 달리미술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다. 전체적인 라인은 한복에서 가져왔는데, 진을 소재로 하고, 달리의 얼굴과 십자가를 집어넣은 그의 디자인은 달리미술관 큐레이터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스페인대사관은 “당신은 코코 샤넬과 동급”이라는 극찬까지 했다.

“달리의 그림뿐 아니라 자서전, 평론까지 관련 자료를 쌓아놓고 봤습니다. 원래 샤갈 작품을 좋아했는데, 달리의 작품세계는 그리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달리에게 빠져들었고, 대단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만든 옷은 어쩌면 그에게 바치는 헌사인지도 모릅니다.”

원작은 스페인의 달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공방에도 전시해두었다.

“전시를 보지 못한 친구들이 궁금해해서 한 벌 더 만들어뒀어요. 1년에 한 번 정도 내놓고 전시를 하기도 합니다.”


그는 미대를 졸업하지도,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했고, 미국계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14년 동안 근무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발레와 한국무용을 배워 주변에서는 모두 그가 무용을 계속할 줄 알았다 한다. 그런데 모두의 기대와 달리 불문학과에 진학했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프랑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봤어요. 그때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언어가 있지? 내 미래를 걸어도 좋겠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느질에 빠져든 것은 대학 졸업 후 외국항공사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그는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든 외국에 나가든 틈날 때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가 더 잘 보인다고 하잖아요? 일본에 갔을 때 골목골목마다 공방이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공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지요. 우리 역사도 새로 공부하고요.”

바느질을 시작하면서는 ‘내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공부할 때는 밤을 샌 적이 없는데, 바느질을 하면서는 사흘 밤을 새워도 즐겁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그였다. 옛 바느질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화된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게 제가 처음 만든 겉옷이에요. 와인이 놓인 테이블과 생각에 잠긴 듯한 여인이 보이지요? 실은 제 모습을 담은 거예요.”


공방 담장에 있는 달 모양 조명에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내가 춤을 추니” 같은 시를 담았다. 옛 규방공예는 그의 손을 거치면서 무한대로 확장되고 변용된다.

한복처럼 보이는데, 저고리를 벗으니 원피스 모양이고, 그 위에 저고리를 숄처럼 걸칠 수도 있다. 복주머니 모양의 손가방을 앞은 패브릭, 뒤쪽은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 현대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실용성도 높이는 식이다. 여기에 복을 불러온다는 박쥐 장식을 붙이는 등 그의 디자인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다.

그가 북촌으로 온 지는 올해로 13년째다. 강남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북촌으로 이사올 때만 해도 ‘미친 짓’이라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북촌을 산책하면서 행복감을 만끽했다고 한다. 그동안 북촌은 변화를 거듭해 오래된 목욕탕이 갤러리로 바뀌는 등 문화골목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해질 무렵 한옥마당에서 지인들과 와인을 마시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전통적인 규방공예에 대해 어떻게 하면 현대인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지 항상 연구하고 고민했어요. 저희 공방을 찾는 분들에게는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전통을 알리지요.”

그는 옛 부채에 달던 장식인 선추를 책갈피에 다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겉멋을 경계하던 유교사회에 살던 선비들이 어떻게 은근하게 멋을 즐겼는지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그는 우리 전통을 알릴 때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면서 “아이들이 우리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선보인 KCDF 디자인 큐브 작업에서는 옛 여인의 속옷인 속곳을 기발하게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우연히 속옷 패션쇼에 나가잖아요. 비록 넘어져서 실수하지만, 다시 일어나 끝까지 걷는 것을 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그는 속곳에 보석을 달아 우리 여성의 당당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다. 옛 여인들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그는 ‘한국 관광의 해’ 개회식 행사도 맡았다.

“옛 사람들은 소중한 물건을 보자기로 곱게 싸서 선물하고, 그걸 받은 사람은 조심스레 풀잖아요? 보통 중요 행사 때면 테이프 커팅을 하는데, 우리 문화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 관광의 해’ 개회식에서는 테이프 커팅 대신 모란 모양으로 접힌 오방색 보자기를 풀게 했습니다. 그걸 통해 우리만의 문화, 정서를 알리고 싶었어요.”

이 행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개회식이 화제라는 것을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고 알았어요. 알고보니 한류스타 장근석씨가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되었답니다. 한류 스타뿐 아니라 우리 문화, 우리 정서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느질을 매개로 의식주 등 우리 한국문화를 알리고 싶은 게 꿈입니다. 일본인들이 특히 우리 바느질에 관심이 많아요.”

그의 공방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부터 주부, 외국인 관광객까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주부들에게는 조각보를 활용한 컵받침 만들기 등 실용적인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은 권유한다고 한다.

“가까이 두고 자주 접할수록 우리 전통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바느질하는 동안에는 명상하듯 자신과 대화할 수도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바느질 테라피’라고 부르기도 해요.”

우리빛깔공방의 체험 프로그램은 일본방송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금 그의 꿈은 바느질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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