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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떠난 가족 - 중고버스로
유라시아 횡단 중인 ‘빼빼가족’

글·사진 : 최동익 

중고등학생인 삼남매를 1년간 휴학시키고 가족이 함께 유라시아 횡단에 나선다. 집까지 팔아 25인승 중고버스를 장만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 계획을 단행한 가족이 있다. 프리랜서 전시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최동익씨(49)와 그의 아내 박미진씨(45), 그리고 다윤(18)·진영(16)·진우(15) 삼남매다. 가족 모두 빼빼 말라 스스로 ‘빼빼가족’이라고 이름 붙인 이들은 25인승 중고버스를 개조해 지난 6월 3일 울산 간절곶에서 출발,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 이후 다시 버스로 시베리아 고원과 바이칼호수, 우랄산맥을 넘어 현재 유럽대륙을 지나고 있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고, 한 방송에서 이들의 여행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영되면서 유명해진 최동익씨에게 이메일 기고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유라시아대륙 횡단여행 중입니다!

‘아이들의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들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함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아이가 왕따를 당했거나 기존 공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 아닙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가족이 함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가족’이라 하지만 우리는 가족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이들 어깨를 짓누르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볼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만의 가족사,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밤늦도록 노력합니다. 잠깐 가족끼리 대화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공부에 매진하여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기를 온 가족이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버스를 집 삼아 함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계속 함께 생활하려면 부모는 불편합니다. 부모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귀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많든 적든 누구나 조금씩 기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줄을 놓지 않으면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줄을 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길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을 조금씩 줄였습니다. 그것이 무형이든 유형이든. 살던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그것으로 시골에 작은, 아주 작은 집을 마련하고, 중고버스를 구입했습니다. 특별하다고요? 예, 맞습니다. 이 일을 단행하기 전 주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보았다면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빼빼가족의 여행 경로.

50세 이후의 삶은 덤이라 생각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쌓여온 인맥과 기득권을 향유할 나이입니다. 시쳇말로 본전 뽑아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대부분의 어두운 소식은 아버지의 부재와 어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관련한 것들입니다. 군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병・일병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고생합니다. 알 만큼 알게 된 상병쯤 되면 눈치를 봅니다. 뻔히 알면서도 부하에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병장이 눈치를 보며 편한 방법을 찾습니다. 병장이 되면 누워버립니다. 그 어렵고 힘들게 익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기는커녕 조롱합니다. “그것밖에 못 해. 내가 쫄병 때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상병・병장들로 인해 빚어집니다. 저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진 않았더라도 제가 가진 것을 공유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新실크로드 아시아하이웨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륙이라 하면 유럽이나 중국을 떠올리고, 우리는 변방으로 여깁니다. 젊은 분들은 더더욱….

UN산하 국제기구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UNESCAP)에서 협의 끝에 아시아인의 물적–인적–문화적 교류를 위해 新실크로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도로도 속해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활용한 H1, 동해안 국도7호선을 활용한 H6 도로. 도로 위에 ‘아시아하이웨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많은 분이 무심히 보고 지나치셨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유럽까지 이르는 표지판입니다. 우리 가족은 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아 경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기에는 부족하고, ‘빼빼’해서 세상에 별로 도움을 줄 것도 없지만, 이 하이웨이에서 열심히 바퀴를 굴려 유럽까지 간다면 사람들에게 ‘한반도가 대륙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희를 따라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되어 완전히 횡단하게 된다면…. 예, 압니다. 저희 생각이 무모하다는 것, 일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누군가는 시도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팔자 좋아 함께 유랑하는 가족들이 이 정도 책임감은 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시베리아!

1년간 우리 가족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25인승 미니버스를 개조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면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 일이 과연 맞는 일일까?’ ‘아이들을 휴학시키는 게 맞는 짓일까?’ ‘여행 중 아이들이 아프면?’ ‘차가 고장 나면?’ ‘돌아와서는 무엇을 하지?’ 제가 산에서 도를 닦는 도인도 아닌데 왜 미래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떠났습니다. 아이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의 여행 루트는 부산을 출발지로 하는 H6를 타고 속초-블라디보스토크 -바이칼-우랄산맥-모스크바-핀란드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간 다음, 대륙의 서쪽 끝이라는 이유로 세계적 관광지가 되어 있는 포르투갈 로카곶을 터닝 포인트로 할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은 터키 국경을 출발점으로 하는 H1 도로를 이용, 터키-이란-인도-동남아-중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오는 1만여km, 1년여의 여정입니다. 북한을 통과해야 진정한 유라시아 횡단이 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일개 가족이 넘기에는 너무 큰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성-금강산-나선으로 이어지는 북한 쪽 H6은 건너뛰고 속초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에 차를 실었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무서웠습니다.

‘어디서 정박하지?’ ‘안전한가?’ ‘저 신호등은 뭐지?’ ‘주유소에서 기름은 어떻게 넣지?’…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여행사도, 가이드도 없는 여행입니다.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지 않았느냐고요? 준비하다가 말았습니다. 준비할수록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이칼호수까지의 시베리아 길은 무서웠습니다.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카오디오가 모두 고장 날 정도로 길이 험했습니다. 주유소도, 민가도 없는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도로변 휴게소에는 화장실 하나 변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락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우리 가족은 시베리아를 그리워합니다. 시베리아의 길! 영혼(靈魂)의 소리가 들리는 천상(天上)의 길입니다.

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남만 쳐다보고 살다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놓치신 분은 시베리아로 가십시오. 시베리아가 그 기회를 되찾아줄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도 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시베리아로 가십시오. 시베리아가 가족을 보게 할 것입니다.


빼빼가족, 길 위의 집

우리 가족은 버스를 집 삼아 매일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그 앞에 있습니다. 매일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4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생각이 보일 만큼 항상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려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지나치게 지닌 것은 없는지 둘러보아야 합니다. 어렵게 찾은 안락한 장소에서는 하루 더 있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또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삶에 대해 공부하며 하루하루 가족과 함께 이동 중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

우리 가족은 아시아하이웨이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 갈 계획입니다. 그중에는 치안부재라 두렵고 힘들고 비위생적인 길도 있습니다. 인종과 종교 갈등으로 아비규환인 구간도 있습니다. 그걸 다 알면서도 우리 가족은 그 길을 가려 합니다. 우리 가족은 넉넉한 형편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유일한 재산인 집 한 칸을 팔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가진 자’ 쪽일 것입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주변과 사회에 작은, 아주 작은, 미미한 바람이라도 일으켜드리는 것이 그 보답이라 생각했습니다.

- 프랑스 파리에서 빼빼가족 아버지 최동익 씀.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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