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돌이 길윤호

하위 팀 ‘우리 히어로즈’의 슈퍼 히어로

사진제공 : 우리 히어로즈
2008년 서울 목동에 둥지를 튼 ‘우리 히어로즈’. 허약한 재정 때문인지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이 팀에 슈퍼 히어로가 나타났다. 걸출한 슈퍼스타도, 수억 원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해외파 선수도 아니지만, 빨간색 헬멧에 짙은 눈썹, 커다란 눈과 긴 턱. 귀엽다 못해 앙증맞은 캐릭터로 연신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넘나들며 관중과 선수들에게 웃음폭탄을 안기는 우리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턱돌이’ 길윤호가 그 주인공이다.

턱돌이는 ‘우리 히어로즈’ 구단 최고 인기스타. 목동 야구장을 찾는 팬 중에는 “경기보다 턱돌이의 황당 퍼포먼스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온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때로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변신하고, 때로는 동네 아저씨 같은 ‘중국집 배달원’ 턱돌이가 되어 팬과 선수들, 심지어 심판과 중계 방송진에게까지 피자와 자장면을 나눠 주며 웃음을 선사한다. 그는 이제 목동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지난 7월 28일 지하철 3호선 일원역에서 턱돌이 길윤호 씨를 만났다. 그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있는 일원역 사무실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길윤호 씨는 한때 촉망받는 야구 유망주였다. 하지만 2001년 두 번의 부상은 고등학교 2학년 길윤호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연습 중 슬라이딩하며 공을 잡다가 글러브가 빠지면서 손가락이 골절됐어요. 그리고 얼마 후 연습 경기 중 어깨가 완전히 부서졌어요. 야구를 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때까지 길윤호에게 야구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주니치 드레곤스 이병규 선수(당시 LG 트윈스)의 열렬한 팬으로 이병규처럼 되고 싶었던 초등학생 길윤호는 1997년, 부모님을 졸라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사했다.

“이왕 야구를 할 거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로 가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야구를 하면 겉멋만 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이나 팀에 돈을 많이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머리 빡빡 깎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곳을 찾다 야구 명문 군산상고를 떠올렸죠. 그래서 외동아들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시던 부모님을 설득해 군산지역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길씨의 꿈을 위해 가족 전체가 근거지를 옮긴 것이다. 군산남중에 입학해 야구부에 들어간 길씨는 연습 2주 만에 주전선수 자리를 꿰차고 경기에 나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결국 꿈에 그리던 군산상고에 진학했는데, 꿈이 채 영글기도 전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는 부상 후 “가슴속이 뭔가로 꽉 막힌 듯 답답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는 한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부상으로 야구를 중단한 선수들은 보통 야구를 완전히 등진다고 하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야구장이 그리웠다. 서울로 올라온 지 3일 만에 고향 같은 야구장을 찾았다. 다시 찾은 야구장에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 번 바뀐다.

“그곳에서 알고 지내던 선배를 만났습니다. 응원단장을 하고 있더군요. 선배 덕에 응원단 한구석에서 북을 치는 일명 북돌이가 됐어요. 북을 치면서 ‘나도 다른 방식으로 야구에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상으로 접은 야구 선수의 꿈 대신 응원단 마스코트가 됐죠

1년 동안 야구장을 찾아 북을 치던 길씨. 이듬해부터는 응원단의 마스코트가 돼 야구ㆍ축구ㆍ농구 판을 돌아다녔다. 그는 “생각외로 마스코트가 재밌었다”고 했다.

“마스코트를 처음 했을 때 정말 욕을 많이 먹었어요. 경기장 분위기에 얼어서 그라운드와 코트에 나가지도 못하고, 관중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죠. 안되겠다 싶어 비디오카메라를 빌려 축구ㆍ야구ㆍ농구 팀 응원단의 응원 모습을 찍어 밤새 연구했어요. 또 NBA나 메이저리그 응원단과 관중 모습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무조건 남과 다르게 관중을 웃기자’였습니다.”

그 후 그는 KIA 마스코트 호돌이, 한화의 마스코트 위니를 거쳐 올해 새내기 팀 우리 히어로즈의 턱돌이로 변신했고, 히어로즈 최고의 영웅이 된다. 그가 턱돌이가 된 후 목동 야구장은 항상 즐거움이 넘친다. 선수들이 홈런을 치면 세상에서 유일한 턱돌이표 웃음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위해 턱돌이는 마치 칸영화제의 주인공들이 붉은색 카펫을 밟으며 시상식장에 들어서듯 선수들을 위해 빨간색 카펫을 홈플레이트에서 더그아웃까지 깔아 놓고, 자신은 3루 쪽에서 선수를 기다린다. 3루에 온 선수는 턱돌이의 긴 턱을 후려치는 세러모니를 펼친다. 턱돌이의 커다란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펀치를 맞고도 그는 즐거워하며 홈런을 친 선수와 함께 홈으로 향하며 홈런 친 선수를 그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턱돌이’라는 이름은 이 세러모니를 본 관중들이 지어 준 이름이다.

그는 때로 슈퍼맨이나 배트맨 복장으로 턱돌이 슈퍼맨, 턱돌이 배트맨이 되어 관중을 웃기기도 한다. 우리 히어로즈의 경기가 풀리지 않는 날이면 심판 복을 입고 나와 심판을 밀쳐 내고 자신이 심판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감독과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감독 대신 그라운드로 달려가 직접 선수들에게 작전을 내리는 코믹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특히 야간 경기가 벌어지는 날 5회나 6회쯤 출출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중국집이나 피자집 배달원 모습으로 나타나 그날 가장 열광적으로 응원한 팬 세 명에게 철가방 속에 넣어 온 탕수육과 피자를 선물하며 코믹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때 관중석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그는 야구장을 개그 프로그램 녹화장을 능가하는 폭소의 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각 구단의 마스코트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친한 마스코트들 몇 명이 그러더군요. 구단에서 절 찍은 비디오를 보여 주며 ‘넌 왜 이렇게 못하냐’며 스트레스를 준다는 겁니다.”(웃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캐릭터 덕분에 그는 KBO로부터 올해 올스타전 공식 캐릭터 요청을 받았다. 또 베이징 올림픽 야구팀의 공식 마스코트가 되는 영광도 얻었다. 턱돌이가 베이징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야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가지만 모든 종목의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비밀이지만 야구경기가 열릴 때라도 레슬링 선수가 중요한 경기를 하거나, 메달을 따면 레슬링 복장을 한 턱돌이가 나타나 애국가도 부르고, 관중석도 뛰어다닐 겁니다. 물론 탁구나 역도, 유도 등 모든 종목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수영에서 메달을 따면 턱돌이의 멋진 몸매를 보실 수도….”(웃음)


하지만 그는 “턱돌이가 베이징에 가는 더 중요한 이유는 마스코트 한류열풍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턱돌이가 중국인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며 일하는 모습을 중국인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는 턱돌이의 한류열풍을 위해 현재 각 지역 아파트 단지를 돌며 헌 옷 수거함 속 헌 옷들을 모으고 있다.

“헌 옷을 깨끗이 세탁해 중국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줄 예정입니다.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쓰촨성 사람들을 위해 옷가지와 웃음을 줄 턱돌이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쓰촨성까지 갈 수 있으면 그곳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고, 쓰레기도 치우고, 무너진 건물 복구도 도울 생각입니다. 이런 활동으로 중국에서 턱돌이 한류열풍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코믹한 몸짓과 다양한 퍼포먼스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 때문인지 주변에선 개그맨이나 연예인이 될 것을 권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길씨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 그는 “야구장에 찾아온 사람들이 턱돌이를 보고 배가 아파 쓰러지게 만들어 입원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나이가 더 든 후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한국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야구 선수로 그라운드의 주인공을 꿈꾸던 길윤호. 그는 부상으로 인한 좌절과 방황을 딛고 최고의 마스코트가 되어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턱돌이 길윤호는 오늘도 야구장 어디에선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있다.
  • 200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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