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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계의 경이로운 소문 《천 개의 파랑》 작가 천선란

하나의 파랑이 되어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파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3원색 중 하나인 색채의 파랑, 바람에 의해 수면에서 일어나는 풍랑.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전자의 파랑이란 숱한 후자들이 너울져 이뤄진 것임을 깨닫는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온통 파란 행성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생의 파랑이 일렁인다.
인간이 세상 중심이라 믿는 옹졸한 1인칭 시야는 동물의 시점, 휴머노이드의 언어, 탈지구적 서사를 만나 확장되고 수정된다.
SF(Science Fiction) 소설의 미덕은 자기 앞의 생밖에 보지 못하는 인간 종의 한계를 깨뜨린다는 데 있다.
“과거는 멀어서, 미래는 몰라서 알 수 없는 공백을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요”

한국 문학계에 SF는 이제 ‘떠오르는 장르’가 아니라 엄연한 줄기다. 그 줄기에 맺힌 제철 열매가 천선란이다. 그가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을 당시 심사를 맡은 김창규 작가는 “더 이상 좋은 한국 SF의 가능성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만큼 SF를 충분히 소화하고 빚은 작품이 가능성을 넘어 다양한 길을 정해 완성하고 있다”고 했다.

천선란 작가는 학창 시절 사회와 과학을 좋아했지만, 영어와 수학은 잘하지 못했다. 아주 먼 과거의 고고학이나 아주 먼 우주의 천문학이 그의 관심 분야였다. 사회과학을 다룰 수 있는 분야로 가려면 국·영·수 과목의 성취가 우수해야 했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못하는 걸 괴롭게 해야 하다니, 망했다” 싶었다. 학과과정을 바꿀 수 없다면 학교를 바꾸자고 생각했다. “예고를 가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낸 뒤였다.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편입시험의 주제는 ‘내가 무언가가 된다면’이었고, 합격자는 단 두 명. 그중 한 명이 천선란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합격 후 소식을 알렸다.

“한 명은 상상력이 좋아서, 다른 한 명은 문장력이 좋아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문장력 쪽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청소년 필독도서를 독파한 문학소녀는 아니었다. 만화광에 가까웠다. 방대한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설명하는 만화의 화법은, 훗날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에 대한 공통된 평가에는 “경이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의 끝까지 도달하는 힘이 돋보인다”는 것. 동시대에 쏟아지는 SF 소설 중 많은 작품이 인상적인 문제의식과 기발한 발상을 가졌으나 결말이 아쉽다는 지적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그건 그가 완성된 그림을 갖고 글쓰기에 돌입해서다. 《천 개의 파랑》 역시 ‘휴머노이드 로봇이 바닥에 낙마한 채로 바라보는 맑은 하늘’이라는 마지막 이미지가 먼저 있었다. 나머지는 그 장면을 향해 달려 나갔을 따름이다. 글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글을 쓰며 지구에서의 삶을 견딘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이야기로는 할 수 있잖아요. 지금보다 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알 게 될 일 중 현재는 알 수 없는 일도 있고요. 과거는 과거라서, 미래는 미래라서 알 수 없는 공백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채워나가는 일이 저는 재미있어요.”

글을 쓰는 시간은 즐겁다. 쓰지 않는 시간이 괴롭다. 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그는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지난해부터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회사 생활을 했다. 출근 전 두 시간, 퇴근 후 두 시간은 꼬박 글을 썼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하던 날들이었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 소식을 회사 비상계단에서 들었어요. 그동안 신춘문예 등에 꾸준히 응모했는데 계속 안 돼서 ‘여기가 안 되면 그냥 혼자서 글을 쓰자’고 생각했거든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어서 ‘아 이제 정말 됐구나. 그만 떨어져도 되겠구나’ 싶어서 후련했어요.”


“작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하루에 여덟 시간씩 원 없이 글을 쓴다. 살면 살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본에 잠식된 기술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배제하고 편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래도 쓴다. 그의 소설은 궤도에서 이탈한 이들을 그러모아 주인공의 배지를 달아준다. 성실했으나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엄마,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하고 자신은 구하지 못한 소방관, 안락사가 확정된 경주마,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등이 그렇다.

“예고에서 배운 건 1인칭으로 글쓰기, 3인칭으로 글쓰기, 전지적 작가로서 글쓰기 등의 훈련이었어요. 60매 원고를 쓰면 열 번을 퇴고해야 했죠. 제가 글쓰기 과외를 할 때도 가르친 건 하나예요.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이 소설을 책임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요.”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 콜리의 시점, 소방관의 딸 연재의 시점, 다리가 불편한 은혜의 시점을 교차하며 구성돼 있다. 천선란 작가는 ‘전지적인 시점’으로 이들을 통제하는 대신, 이들과 거리를 두고 그저 지켜본다.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받아 적는다.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 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 《천 개의 파랑》 97쪽


대신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은 작가가 진다. 설령 그 결말이 “자신을 싣고 달리는 말을 지키기 위해 휴머노이드 스스로 자신을 낙마시키는 것”이라 해도. 휴머노이드는 죽지는 않지만 부서진다. 그렇게 부서지면, 금세 다른 휴머노이드로 대체된다. 인간의 자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인간은, 인공지능도 그렇게 대한다. 버리고 유기하는 일은 상대만 달라질 뿐 반복된다.

“저는 모두에게는 각자 고유한 격자무늬가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에게 주어진 칸막이 같은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칸을 침범해요. 어떤 사람들은 얼굴이 가려지면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에게도 막말을 하잖아요. ‘그렇게 힘든데 어떻게 사니’ 같은 말들이요. 가끔 그런 악플을 읽으면 현실에서 괴물을 만난 기분이죠.”

인류는 점점 더 인류애를 잃어가고, 동족의 인류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도 식물도 심상하게 대한다. 생명에 대한 대수롭지 않은 유기와 죽음, 환경을 향해 쏟아내는 수많은 폐기물과 서로에게 퍼붓는 날선 말들. “뭔가를 해야 하지만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시대”를 사는 93년생 작가는 가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그의 첫 책 《어떤 물질의 사랑》부터 그는 꾸준히 지구 멸망의 징조들을 적어왔고, 가까운 미래에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2029년의 지구는 안개로 뒤덮였고, 2034년에 세계보건기구는 사망 원인 1위로 미세먼지로 인한 체기능부전증을 명명했다. 천천히 망해가는 지구를 응시하는 일이 무슨 도움이 될까 막막해질 때면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네가 할 수 있는 나이에,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또 할 수 있는 게 생길 거라고요. 일단은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다. 첫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에 실린 첫 단편 〈사막으로〉는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떻겠니”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자전적 이야기다. 누군가 막역한 부녀 사이의 비결을 물으면 그는 “떨어져 있으면 된다”고 답한다.

“아버지가 해외에서 오래 일을 하셨어요. 어릴 때는 거의 집을 비우셨죠. 네 달에 한 번 2주간 머무는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대화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해외에 머물던 아버지가 한국에 돌아온 건 어머니의 발병 때문이었다. 어느 날 쓰러진 어머니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해도 수술 중 생명을 잃을 수 있으며 살아 나올 확률은 10% 정도라고 했다. 긴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그 좁은 확률을 뚫고 살아났으나 이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소진했고, 어머니의 뇌는 앞에 앉은 이가 딸인지, 딸의 이름은 무엇인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엄마는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일종의 치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엄마한테 ‘엄마, 내 꿈이 뭐였지?’라고 물으니까, ‘작가’라고 하시더라고요. 나 원 참, 내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 꿈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함께한 과거는 다 잊었는데,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꿈은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그의 나이 스물한 살, 아마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 작가가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살면 살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그의 손가락에는 자그마하게 蘭(란)자가 새겨져 있다. 팔에는 난의 줄기를 타고 나온 듯한 나뭇잎이 수놓여 있다. ‘란’은 엄마의 이름 중 한 글자다. ‘천’은 아빠 이름 중 한 글자, ‘선’은 언니 이름 중 한 글자… 글을 쓰며 만든 이름 천선란은 그렇게 지어졌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생활이 어려운 중에도, 번번이 공모전에 떨어지며 혹독한 20대를 보내는 중에도, 한 번도 ‘헛꿈 꾸지 말고 가계를 도우라’고 독촉한 적 없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

작가가 된 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버린 행성에 태어나 멸망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만 그 파괴의 원인과 멸망의 도래를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 안에 생명들이 내는 소리를 공평하게 받아 적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인간이 주류가 아니라, 동식물이 주류였다면 지구의 수명은 지금보다는 더 길었을 텐데. 부덕한 인류가 너무 오래 지구를 장악한 것을 그는 조그맣게 탄식한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빨대를 쓰지 않고, 되도록 걸어 다니며, 육식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우주를 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저는 꼭 가볼 거예요. 만약 그 우주선이 편도라 다시는 여기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해도요.”

아마 언젠가 우리가 우주에 가 닿는다면, 그가 이미 그의 책 《무너진 다리》에 적은 것처럼 “우주로 가면 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주로 나오니 별은 여전히 우주에 있다”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랴. 거기에 가면 그제야 지구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내가 꼭 붙어 하나인 채로가 아닌 지구와 나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지구가 파랑인 이유는 거기에 점처럼 숱한 파랑이 일렁였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 천 개의 물결 중에는, 탐욕스레 지구를 파멸시킨 인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다른 생명의 존재를 상상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며 기록했던 천선란이라는 파랑이 있었다.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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