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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은 오늘도 맑음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키다리이엔티 

청춘은 혼란스럽다. 어른의 경계에 막 들어선 마음은 표현할 수 없이 복잡하다. 이제 인생을 오롯이 내 몫으로 채워가야 할 때. 자유를 얻었지만 그동안 나를 감싸준 보호막이 점점 얇아짐을 느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무엇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설렘과 불안이 공존한다. 이 오묘한 두근거림은 불편하면서도 기분 좋다. 서툴지만 세상을 향해 질주할 용기가 생긴다.

배우 강하늘이 보여주는 청춘도 그렇다. 그는 어수룩하면서도 풋풋한 배역을 유독 잘 소화한다. 한없이 찬란하지만은 않다. 영화 〈스물〉에서는 철딱서니 없어도 누구보다 뜨거웠고 〈쎄시봉〉에서는 음악과 사랑 앞에 진심이었다. 〈동주〉에서는 시대에 저항하며 시를 쓰고, 〈청년경찰〉에서는 옳은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그 조각조각을 맞춰보면 청춘은 하나의 초상을 이룬다.

아직 더 보여줄 조각이 남아 있을까 싶은데, 그가 또 다른 얼굴로 찾아왔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속 대학 입시에 실패한 삼수생 ‘영호’를 통해서다. 흔한 이름 영호처럼 그가 보여주는 청춘은 참 보편적이다. 강하늘은 자신의 20대를 떠올리며 영호를 그려냈다. ‘이 역할이면 어떻게 행동할까’보다 ‘내가 저때 어땠지? 이럴 때 어떻게 했지?’를 생각하자 과거의 그가 소환됐다.

“준비된 캐릭터에 저를 맞춘 게 아니라 평소 제가 할 법한 행동에서 디테일을 만들었어요. 사실 저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뭐랄까, 칠렐레팔렐레 많이 웃고 허당기도 많고 공부도 못했어요. 꿈을 찾아 방황하고 고민하는 무거운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영호의 해맑은 모습에는 확실히 제가 묻어 있어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잃어가던 청춘, 영호와 소희(천우희)가 우연히 편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희미했던 두 사람의 하루는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오고가는 편지에는 위안과 용기가 동봉돼 있다. 영화는 청춘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출구를 향할 때, 어떠한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흔히 성공이라고 부르는 틀에 그들을 담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가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일상을 보여준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매일을 고민하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청춘의 아이콘부터 ‘촌므파탈’까지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삼수생 ‘영호’역을 맡은 강하늘.
실제 강하늘도 그랬다. 공연 연습이 끝나면 청계천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없이 뜨거웠지만 때로는 막막했다. 그렇게 고교 시절부터 연극·뮤지컬 무대에 서며 연기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2007년 드라마 〈최강! 울엄마〉에서 고독한 반항아 역할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도 무대에서 쌓아온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지금에서는 20대 자신에게 “쉬엄쉬엄 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때였을 거예요. 그때는 하루하루가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실수가 있으면 안 됐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들로 가득했어요. 그렇다고 그런 부담감이 스트레스는 아니었어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죠. 뭐,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예에게 대형 기획사들의 수많은 러브콜은 당연했다. 하지만 무대 공연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의 뜻에 엔터 사업 면모가 강한 기획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이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배우 황정민이다. 뮤지컬 〈쓰릴 미〉를 본 황정민은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고 강하늘을 영입했다. 덕분에 그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뮤지컬·연극 무대를 병행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강하늘이 비중 있는 배역으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한 게.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 샤이니 민호와 라이벌 관계에 놓인 노력형 높이뛰기 선수로 등장하더니 〈상속자들〉에서는 제국고 학생회장이 되어 김은숙 작가의 오글거리는 대사도 담백하게 소화해냈다. 그런가 하면 〈미생〉에서는 완벽한 스펙의 엘리트 신입사원 장백기로 실감 나는 회사 생활을 보여줬다.

강하늘이 절정의 매력을 발산한 작품은 〈동백꽃 필 무렵〉. 옹산의 순정파 황용식으로 변신한 그는 촌스러우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촌므파탈’을 보여줬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돌직구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용식은 온 동네 사람이 다 있는 시장통에서 “동백 씨를 좋아해유”라고 외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치명적인 순박함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제대하고 나서 〈동백꽃 필 무렵〉을 선택했는데, 제가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사실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건 없었어요. 그냥 시나리오가 재밌으면 좋은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한 거죠. ‘제가 나오는 작품을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다’ 이 마음 하나로요.”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며 부드럽게 짓는 눈웃음 속에 고집스러운 면모가 엿보였다. 그는 고민할 시간에 행동으로 옮기고 “원하는 건 하고야 마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 성격은 연기 행보에서도 읽힌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 종영 후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상황에서 연극 〈환상동화〉에 출연했다. 또 역할은 크지 않지만 “대본이 재밌다”는 이유로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온달의 아버지 온협 장군으로 깜짝 등장했다.


미담자판기? 함께한 시간이 즐겁길 바랄 뿐!


강하늘의 또 다른 매력은 타인을 향한 배려다. 그는 미담자판기로도 유명하다. 현장 스태프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가 하면, 집에 에어컨이 없는 스태프에게 에어컨을 선물했다. 부모가 운영하는 칼국수 가게에서 맨발로 서빙한 적도 있으며, 군 복무 당시 후임 조권에게 군부대 사용설명서를 손편지로 남긴 일 등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

이는 황정민이 그를 낙점한 이유기도 하다. 황정민은 과거 인터뷰에서 소속사 영입 기준에 대해 “인성은 기본, 배우는 똑똑하고 겸손하며 자기 역할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담이 회자될 때마다 정작 강하늘은 “저는 저랑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얼굴 찌푸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며 “저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이는 강하늘이 가까운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테니까. 치열한 하루를 끝내고 내일을 향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용기를 얻으면서 말이다.
  •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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