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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작가

결혼은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임경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의 행복의 이유는 거의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의 이유가 저마다 다양하다는 이야기. 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몇 번지’, 불행한 가정은 ‘몇 호’라고 문패처럼 정해진 게 아니다. 가가호호에 언제 행복이 찾아오고 언제 불행이 문을 두드릴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하게 행복하고 또 복잡하게 불행한 것이 바로 ‘평범한 결혼’이다. 《평범한 결혼생활》을 펴낸 임경선 작가의 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지하철 입구에 무료로 배포되는 신문이 그득히 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메트로》라는 무가지에는 ‘캣우먼’이 연재하던 고민상담 페이지가 있었다. 연애 중인 대학생,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상사와의 갈등을 겪는 직장인까지 복잡다단한 고민들을 그는 명료하게 풀어냈다. “상처받을 것을 지레 겁내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마라” “직장에서 자신이 기대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상사의 단점을 흉보기 전에 그에게 배울 점을 찾아라” 등.

캣우먼의 상담은 상대방의 편을 들어주고 편파적으로 장단을 맞추기보다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얼핏 따끔해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그의 상담은 꽤나 인기가 많았다. 익명의 상담자들이 원하는 것은 섣부른 위로가 아니라, 적확한 해결이었으니까. 칼럼은 무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졌다. 이 캣우먼이 바로 임경선 작가다. 그는 매년 에세이와 소설을 펴내며 직장인 못지않게 성실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결혼 20주년을 맞아 《평범한 결혼생활》이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지혜로운 사람이 강을 건널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미친 사람은 이미 강을 건너 있다

“저는 아마 아프지 않았더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여섯 번 받아서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어 글을 쓰게 됐으니까요. 농담이 아니라 제 원래 꿈은 창가 쪽에 개인 사무실을 가진 대기업 중역이 되는 것이었거든요. 인생은 참 아이러니로 충만하죠.”

그는 대학 졸업 후 12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다. 호텔리어로 시작한 직장 생활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도 해줬고, 그 괴리를 메울 나름의 내공도 갖게 했으며, 무엇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실함을 몸에 배게 해줬다.

《평범한 결혼생활》도 그 성실함의 일환이다. 다만 그로서는 드물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임경선 작가는 2001년 만난 지 3주 만에 결혼을 결심한 사람과 세 달 만에 부부가 돼서 20년간 살아오고 있다. 이 책은 “한 남자와 20년간 결혼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그에 대해 한두 마디쯤은 할 자격이 있다”는 마음으로 쓴 글들의 모음이다. 책은 이들의 20주년 결혼기념일에 출간됐다.

“2020년 12월 한 달간 집 안 제 작업방에서 썼습니다. 당시엔 카페에 나가 작업하는 것이 금지된 시점이었고 고로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 불가피하게 남편이었죠. 물리적으로는 한 달 안에 금방 썼지만 사실은 20년간에 걸쳐 쓴 거라고 생각해요.”

3주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세 달 만에 결혼에 이른 사연은 중간에 삽입된 청첩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네 페이지에 걸친 이들의 교환일기 같은 청첩장은, 처음 만난 날부터 사랑에 빠진 순간까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글을 실은 작가의 ‘현재’ 심정은 다음 페이지에 나온다.

‘우웩.’

몇 번이고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며 청첩의 글을 반복해 읽었다는 작가. 그럼에도 20년 전의 그는 예비신랑의 프러포즈에 “100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라고 감격에 겨워 답했다.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에게 영화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순간이 정지된 영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도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던가.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오직 한 번만 온다”고. 물론 같은 영화 후반부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기로 결정한 순간, 어떤 면에선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지만 사랑이 멈추는 때이기도 하다.”

아무튼 뒤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는 숱한 이들은 ‘결혼’이라는 강을 건넌다. 이 강을 건너려면, 작가의 말처럼 지혜가 아닌 무모함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강을 건널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미친 사람들은 강을 건너 있다. 《평범한 결혼생활》은 그 강을 건넌 뒤의 이야기다.


배우자가 읽을지 안 읽을지를 신경 쓰며 쓸 바에야 작가를 때려치우는 게 낫다

책은 50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은 두 사람이 얼마나 ‘안 맞는가’에 대한 이야기고, 그럼에도 그 안 맞는 ‘다른 점’을 ‘단점’이라고 비난하지 않기 위한 공평한 노력이 담겨 있다. 이는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를 수 있지?’라는 질문이 ‘이토록 맞지 않는 사람과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 수 있지?’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임경선 작가는 그중 50번째 이야기를 가장 마지막에 썼다. 마지막 이야기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질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설사 추억이 다르게 적힐지라도) 인생 추억이 담긴 풍경을 가장 많이 공유한 이들은 한쪽이 떠난 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
여름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평양냉면집에 들를 것이다.
‘이모님, 여기 찬 육수 좀 더 주세요.’
환청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살아생전 그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내가 대신 힘껏 먹으리라.
면발을 이로 천천히 끊어내는 중에
그의 목소리가
또 들릴지도 모른다.”


의외로 작가의 책을 거의 읽지 않는 그의 남편은 이 책만큼은 ‘첫 독자’였는데 이 부분에서 ‘울컥’했다고 한다. 내가 떠난 뒤 남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혼자 앉아 먹을 반려자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마음 한구석이 뻐근해진다.

“이번 책은 아마 남편에게 바치는 책이 될 터인데요. 충동적으로 썼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기념하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을 지켜줄 책이라고 여겨져요. 실제로 책이 나오고 나서 사이가 더 좋아진 느낌입니다. 그냥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물론 앞의 마흔아홉 가지의 이야기 중에는 혹자가 “남편분이 봐도 되겠어요?”라고 물을 만한 이야기도 있다. 작가는 “배우자가 읽을지 안 읽을지를 일일이 신경 써가면서 글을 쓸 바에는 아예 작가 따위 때려치우는 게 낫다”고 하고, 그의 배우자는 어떤 검열도 없이 순순히 책을 그대로 출간할 것을 허가해줬다. 다만 자신의 SNS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 글을 썼으면 좋겠다.
아내가 책을 내느라 정신이 없을 때가
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더욱 분주했을 것이다. 일단 《평범한 결혼생활》은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지만 또 연결된다. 임경선 작가가 써온 소설에 빚진 부분이다.

“다행히 소설을 써온 터라 스토리텔링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는 기술이랄지, 이번 이야기 마지막에 티저처럼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방법 같은 것을 즐겁게 응용할 수 있었습니다.”

에세이를 쓰는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는 다르다고 하지만 두 자아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번엔 ‘출판하는 자아’까지 보태졌다.

이번 책은 독립출판 형태로 출간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저술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출판계의 동향을 체득하고 싶었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다른 누군가가 편집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독립출판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 내용은 물론, 판형부터 디자인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이 책은 가볍되 단단하다. 행간은 넓고, 여백도 시원하다.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은 어마어마한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책은 ‘국판’이라 해서 일반 단행본보다 사이즈가 큽니다. ‘어른의 그림책’이라는 콘셉트로 반듯한 하드커버를 표지에 입혔고요.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서 보다 많은 독자들, 평소에 책 읽을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도 가 닿고 싶었어요.”



결혼이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친인 미즈마루의 딸의 결혼식에 축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무려 결혼식에서 이런 현명한 조언을 남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 임경선이 오래 흠모해온 작가다. 그도 비슷한 이야기를 책 말미에 남겼다. 이 책을 내며 그가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적당히 피하면서 사는 것도 인간이 가진 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란 뭘까, 부부란 뭘까, 행복이란 뭘까, 같은 것들을 정색하고 헤아리려고 골몰한다거나 100퍼센트의 진심이나 진실 따위를 지금 당장 서로에게 에누리 없이 부딪쳐서 어떤 결론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개 실패할 것이다. 이런 질문들의 종착지는 결국 ‘그럼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막다른 골목일 뿐인데 그렇다면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무모하게’ 강을 건넌 뒤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실제 하루키 덕후인 그는 2007년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에서, 그리고 이 책의 개정판인 2015년작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취를 좇은 바 있다. 그에게 하루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만드는 북극성 같은 존재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단한 것은 스물아홉 살에 데뷔하고 40년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되는 것도 쉽고 베스트셀러를 하나 내는 것도 어쩌다 보면 운 좋게 가능해요. 하지만 몇 십 년에 걸쳐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 하나만으로도 저에겐 롤모델입니다.”

임경선 작가는 2002년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러브 패러독스》를 시작으로 2021년까지 20년간 20여 권의 책을 냈다. 그의 말을 빌려 작가가 되는 것이나 베스트셀러를 내는 일은 어렵긴 해도 ‘운 좋게’ 가능할 수 있지만, 몇 십 년에 걸쳐 글을 쓴다는 건 운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저는 한 번도 문학소녀였던 적도, 작가지망생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글을 예술이나 자아실현의 차원보다 ‘일을 한다’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왔어요. 그래서 그저 스스로와 주변을 돌볼 수 있는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태도로 꾸준히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는 글을 쓸 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임경선 작가도 다만 꾸준히 글을 쓴다.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며,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우물에 파고들어 이야깃거리를 꺼내 온다. 이들의 글은 더 이상 ‘운’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는 굳건한 생활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독자는 다르다. 이토록 성실하고 바지런한, 동시대의 작가를 만나 그가 기록하는 번뜩이는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 그건 여러모로 운이 좋은 일이다.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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