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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괴물〉 여진구

스물다섯, 잘 자란 아역의 정석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제이너스 이엔티 

괴물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가족이자, 친구이자, 동료의 가면을 쓴 채. 모든 사건이 진실을 되찾고, 피해자 가족은 활짝 웃어 보였다. 이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시사했다. 반면 가해자 가족은 촉촉해진 눈으로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죄책감과 동료를 향한 고마움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범죄를 겪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괴물〉은 이렇게 끝맺음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길 자처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 주인공 한주원, 여진구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용두사미’가 아닌 ‘용두용미’란 호평을 받은 JTBC 드라마 〈괴물〉은 연출·대본·연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추적 스릴러 장르답게 ‘누가 범인인가’도 중요했지만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남겨진 피해자 가족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 진실을 마주한 가해자 가족이 겪는 혼란 등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다각적으로 면밀하게 다뤘다.

드라마는 괴물을 둘러싼 안개를 걷어가는 과정을 진득하면서도 깊은 호흡으로 펼쳐냈다. 빠르고 자극적인 구성으로 시청자들을 흡입하는 기존 장르물과 다른 선택이었다. 느리지만 위험한 초대는 오히려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만양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 형사 이동식(신하균)과 한주원(여진구)은 스스로 괴물이 되기로 한다. 한주원은 파트너 이동식이 사건과 관련 있을 거란 의심이 들면서도 피해자 주변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상황에 연민을 반복해서 느낀다. 〈괴물〉은 이 과정을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하는데, 극의 변곡점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는 인물은 한주원이다.

초반부 한주원은 연쇄살인 진범을 잡기 위해 자신이 범한 과오를 바로잡아 나간다. 하지만 범인을 잡고 싶은 집념이 무리한 함정수사로 이어지며 희생자가 나온다. 한주원은 처음부터 이동식을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고 가지만, 후반부는 진실을 알고 싶은 한주원이 만양을 다시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진구는 초반 한주원이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의 발버둥이 컸다”면 후반 한주원은 “이동식과 의기투합해서 어떤 진실이든 마주할 준비를 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쁜 짓은 하지 말자”

〈괴물〉 속 한주원은 원칙주의자다. 그 원칙을 지탱하는 축은 법과 정의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결여된 면도 있다. 싸가지. 한참 선배인 이동식을 “이동식 씨”라고 부르며 고함치는가 하면 철벽을 치고 주변에 곁을 내주지도 않는다.

“제가 보기에 주원이는 성격이 이상했어요. 누군가 다가올 수 없게 벽을 치고 융화되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이런 애는 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면에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어요. 저는 만나는 사람이 궁금하고, 또 상대가 원하면 저에 대해 알려주고 싶거든요. 반면 법과 정의를 원칙으로 생각하는 면은 저도 주원이와 비슷해요. 특히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배우기에 그것만큼은 깨면 안 되지 않나 싶어요.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나쁜 짓은 하지 말자’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여진구는 촬영장에서 매너남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신경 썼고, 그 노력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인정한다. 현장에 있는 대다수가 본인보다 연장자인 상황에서 예의 갖추는 당연한 풍경이 당연해지지 않는 사례가 늘어가는 것도 그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에서도 “감사하다”란 말이 은연중 흘러나온 것만 10여 차례. 몸에 밴 마음가짐이었다.



물음표가 마침표가 되는 순간

여진구는 여덟 살에 영화 〈새드 무비〉로 데뷔했다. 부모 손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장을 향하던 소년은 벌써 16년 차 배우가 됐다. 김수현, 장혁, 이준기, 차인표 등의 아역배우를 맡으며 주목받아온 그는 2013년 개봉한 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면의 괴물을 인정하고 괴물이 되어버린 소년 화이. 이 영화로 여진구는 그해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진로를 고민하는 여느 10대들보다 일찍 좋아하는 일은 찾았지만 급격한 관심과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촬영장은 더 이상 마냥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잘 표현하고 싶고, 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저 스스로를 가두게 되더라고요. 그동안은 감독님이나 배우 선배님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연기했는데 그게 답답하고 어려워진 거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면서 현장에 가기가 점점 두려웠어요.”

그때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찾아왔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드라마 버전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1인 2역인지라 놓칠 수 없었다. 배우 이병헌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지자 다시 부담이 그를 에워쌌다.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의외의 디렉팅을 받았다.

“진구 씨,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감독은 그의 연기에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여진구는 촬영장에 그냥 던져졌다. 오롯이 배우 여진구를 꺼내야 하는 순간.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은 채 연기한다는 건 치열한 고민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자 다시 연기가 즐거워졌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병헌의 광해군을 완전히 지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이 된 남자〉는 ‘이렇게 연기해도 되나?’라는 물음표를 갖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작품이 〈호텔 델루나〉고요. 이제 ‘이렇게 연기해도 되겠다’라는 마침표가 필요할 때 찾아온 작품이 바로 〈괴물〉이에요. 나만의 연기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단 막연한 바람이 있었는데 〈괴물〉을 통해 연기의 감을 찾은 것 같아요.”

배우 여진구를 스스로 찾아낸 과정이었다.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또래 배우들에 비해 진득한 연기는 치열한 고민의 시간이 있어 가능했다.

여진구는 요즘 채우는 시간을 갖고 있다. 허브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그는 “바람이 불면 흔들흔들하는 허브가 귀엽다”고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힐링이 되는 기분이란다. 언젠가는 마당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로망이 있다.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채워가는 방법을 터득한 여진구. 누군가를 대신하는 아역배우에서 스스로를 표현할 줄 아는 배우로 잘 자란 그의 모습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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