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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낸 황헌 작가

와인이 인생에 거는 말들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음식과 와인의 짝짓기 기본 원칙(와인폴리닷컴,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에서 재인용)

- 와인은 음식보다 산도가 높아야 한다.
- 와인은 음식보다 당도가 강해야 한다.
- 와인은 음식과 같은 맛의 농도를 가져야 한다.
- 레드와인은 강한 맛의 육류와 잘 어울린다.
- 화이트와인은 부드러운 맛의 생선이나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 쓴 와인(레드와인)은 지방과 잘 맞는다.
- 고기 자체보다 소스의 맛에 맞춰 와인을 선택한다.



와인은 시간의 선물이다. 태양과 토양과 바람 속에서 익어간 포도는 시간의 합주에 의해 자신만의 맛과 향을 지닌 와인으로 태어난다. 언제 수확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발효하고, 오크통 숙성과 병입 후 숙성을 얼마나 거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복잡다단한 변수에는 와이너리 저마다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황혼을 넘긴 이가 써 내려간 와인 책은 깊이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34년간 방송사 기자로 활약한 황헌 작가가 쓴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2000년대 초반 와인의 세계에 빠진 후 책을 내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저자는 중년에서 어느덧 초로의 신사가 됐다. 그만큼 와인의 세계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깊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와인은 정복할 수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열었다.

“와이너리도 많이 다니고 책까지 썼지만, 누군가 제게 ‘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묻는다면 15~20%도 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인문학이나 역사는 이론적으로 알아갈 수 있지만 와인은 이론을 넘어서는 영역이에요. 와인을 좀 안다 싶어서 몇 가지 공식에 대입하려 하면 그때마다 공식이 무의미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지인 한 분이 흑해 연안 몰도바산 레드와인 한 병을 가져왔는데, 저렴한 가격에도 놀라운 향과 깊이를 지녔어요. 그걸 어떤 공식으로 설명합니까? 와인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대상이에요.”

그가 와인에 빠지게 된 건 2003년 MBC 파리특파원으로 발령받으면서다. 지적 호기심이 워낙 커서 평소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책을 읽고 쓰는 게 일상이던 그는 프랑스 와인에 대해 배울 준비가 돼 있었다. 그의 인생 첫 와인 스승은 파리의 한식당 ‘우정’의 조성환 대표였다.

“파리의 첫 인연과 마지막 인연이 조성환 대표였습니다. 식당 휴업일에 저를 데리고 가서 제가 태어난 해와 가장 가까운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오더군요. 와인 이름도, 라벨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와인을 맛보고 와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와인의 기본을 배웠어요. 종이와 펜이 없어서 누런 냅킨에 플러스펜으로 조 대표의 와인 특강 내용을 받아 적었는데, 집에 가져와서 옮겨 적다 보니 열두 장이더군요.”

파리에서 첫 와인의 강렬함을 맛본 그는 와인의 세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는 “와이너리를 다니고 와인을 사느라 체재비와 월급을 다 썼다”며 웃어 보였다. 파리특파원으로 보내는 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남아공의 와이너리 투어를 다니면서 심오한 와인의 세계를 알아갔다.


호주 와인은 송중기, 미국 와인은 이병헌

그가 와인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2006년,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다. 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서점을 뒤졌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은 둘 중 하나였다. 너무 현학적이거나 깊이가 없거나. 와인을 둘러싼 재미있는 인문학 스토리를 녹여 쉬운 문체로 써보고 싶었다. 이 무렵 지금의 책을 낸 시공사 편집부를 만나 논의했고, 책의 콘셉트까지 다 정해뒀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숨 가빴다. 기자 출신 앵커로서 직책과 업무가 점점 늘어갔다. 논설실장, 보도국장을 맡으면서 〈100분 토론〉 〈뉴스의 광장〉을 진행했다. “책을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라고 회고했지만, 뒤늦게 나온 책이어서 더 빛났다. 무엇보다 소위 ‘황헌체’를 얻게 됐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다음에 팬카페도 생겼습니다. 그때 소통하면서 나만의 문체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편하고 쉽게 읽힐 수 있는 문체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분명한 지향점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처럼 술술 읽히게 하자는 거였죠.”

시간의 깊이만큼 글의 내용도 깊이를 얻었다. 그 사이 호주, 뉴질랜드 등의 와이너리를 다니면서 경험의 폭을 넓혔다. 역사, 철학 공부를 꾸준히 하며 얻게 된 배경지식 또한 책 집필의 재료가 됐다. 다양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할 만한 안목과 독자적인 맛의 표현력을 갖게 된 건 덤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은 연륜과 경험이 깊고 풍부한 최불암 씨나 김혜자 씨를 닮았어요. 호주 와인은 당도가 높고 선명해 송중기 씨 같은 매력을 지녔죠.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 와인을 좋아하는데, 미국 와인은 프랑스적 요소를 가진 신대륙 와인입니다. 풍부한 경험과 강렬한 매력을 동시에 지닌 이병헌 씨가 떠오릅니다.”

황헌 작가가 와인에 빠진 20년 가까운 시간, 그새 한국의 와인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는 “국내 와인 인구가 5% 정도에서 20~25%까지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와인을 즐기는 연령대가 2030세대로 확 낮아진 것. 그의 책을 구입하는 독자 역시 30대 남성이 가장 많다.


1등급 와인은 1등급 친구를 닮았다

그는 “와인 공부를 하는 건 좋지만, 너무 교조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와인을 따르는 법, 와인잔을 잡는 법, 음식과의 페어링 등을 지나치게 공식화하지 말고 편하게 즐기라는 얘기다.

“와인을 알아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1등급 와인은 1등급 친구를 닮았습니다. 좋은 와인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향기가 나듯, 1등급 친구는 존재 자체로 은은한 향기가 나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다른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차별할 순 없어요. 각자의 취향이니까. 다만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등급 친구가 되려는 자극제를 와인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이죠.”

그는 “와인은 인생”이라고 말했다. 와인이 주는 찰나의 맛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그 무한한 변수의 세계, 단 한순간도 같지 않은 맛의 세계는 인간의 유한성을 닮았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젊은이든, 노인이든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없다. 와인은 인생을 닮았다.


01_오이스터 베이 소비뇽 블랑 © oysterbaywines.com
02_브라운 브라더스 모스카토 로사 © brownbrothers.com
03_안델루나 1300 말벡 © wine.com
04_가이서 픽 캘리포니아 © wine.com
황헌 추천, 이럴 땐 이 와인!

1. 싱싱한 생선회와 함께라면
소비뇽 블랑 포도로 만든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뉴질랜드산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 소비뇽 블랑을 추천해요. 2018년산 기준 3만 원대 초·중반인데, 비교적 신선하고 타닌이 적으며 약간 상큼 달콤한 맛이 매력입니다. 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생선회를 입에 넣어보세요. 왜 이 조합이 최고인지 실감하실 겁니다.

2. 주말 저녁, 장성한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 식사
식전주로 로제와인 한 병을 나눠 드시고, 본 요리와 함께 말벡이나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비교적 바디감이 강한 와인을 선택하면 좋습니다. ‘태양을 절여 만든 와인’으로 표현되는 로제와인은 부드럽게 잘 넘어갑니다. 그중에서도 브라운 브라더스 모스카토 로사(Brown Brother’s Moscato Rosa) 2018을 드셔보세요. 알코올 도수 6~7% 정도로,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무난하게 잘 어울립니다. 말벡은 ‘위대한 옛 여행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정열의 포도입니다. 풍성한 과즙, 비단처럼 부드러운 질감, 짙은 과일향을 가졌고,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높습니다.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나온 안델루나 1300 말벡(Andeluna 1300 Malbec)은 참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3만 원대로 저렴한 편이며, 잘 익힌 육류와 어울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가이서 픽 캘리포니아(Geyser Peak California) 카베르네 소비뇽도 가격 대비 훌륭합니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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