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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펜트하우스〉 이지아, 김소연, 유진

막장과 명작 사이 욕망의 삼각형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SBS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작가는 이 세계에서 조물주나 다름없다. 조물주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이야기는 세계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담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산으로 가다가 안드로메다까지 떠내려가기도 한다. 전자가 감동을 준다면 후자는 쾌감을 준다. 김순옥 작가의 세계는 후자다. 작가가 보는 이들의 멘탈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각오하고 TV를 켜야 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통속극이라 불릴 만한 ‘막장의 요소’들은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피터(제우스)는 시쳇말로 난봉꾼, 웬만한 신화의 영웅들은 모두 ‘제우스의 아들’이다. 그의 아내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피운 여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역을 맡는다. 이 불륜 통속극이 신화가 되는 이유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세계관을 제공해주어서다.

신화를 읽으며 인류 보편의 욕망과 진실을 본다.

신은 인간의 대리전을 한다. 오만에 빠진 인물은 반드시 추락한다.


펜트하우스, 욕망의 대리전

2021년 가장 뜨거운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신화의 가장 독한 부분만 모은 단편 같다. 도통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일들이 이들이 사는 펜트하우스 헤라클래스에서는 매일 매시간 매분 일어난다. 이 비극의 중심에는 주피터, 즉 주단태(엄기준)가 있다. 그는 펜트하우스 최고의 재력가이자 실력가이고 권력가다. 재력, 실력, 권력을 가지고 그가 벌이는 일은 살인, 불륜, 폭력이다. 실세인 그를 둘러싸고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현재 부인인 심수련(이지아), 불륜의 대상인 천서진(김소연) 그리고 그를 딛고 상류층에 입성하려는 오윤희(유진). 이 삼각형은 저마다 결핍을 갖고 있다.

심수련은 실력, 재력, 권력을 지닌 펜트하우스의 퀸이지만 1회부터 자신의 친딸을 잃는 슬픔을 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천서진은 실력 없는 재력과 권력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드라마 초반에는 천서진의 악행이 〈펜트하우스〉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견인차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오윤희는 실력은 있지만 재력과 권력이 없는 비운의 인물이다. 이 살벌한 세계의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선인 심수련의 영역과 악인 천서진의 영역을 넘나들며 반전의 묘를 연출한다. 극단적인 분노와 슬픔의 감정연기는 기본, 목청을 드높이는 말싸움에 생사를 오가는 몸싸움까지 벌이며 하드캐리 중인 세 인물의 킬링 포인트를 모았다.


이지아의 인생작, 드디어 만나다


배우 이지아는 그동안 연기보다 다른 일들로 화제가 됐다. 이슈가 그의 필모를 덮었고 그것이 배우 이지아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고, 〈펜트하우스〉는 여러모로 그의 인생을 뒤바꾼 작품이 됐다. 이제 그에게도 대표작이 생겼다. 장서희에게 〈아내의 유혹〉 구은재가, 이유리에게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 있다면, 이지아에게는 〈펜트하우스〉의 심수련이 있다. 〈펜트하우스〉는 한마디로 심수련의 복수극이다. 이지아 스스로도 “이렇게 호평받은 작품은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신비주의로 알려진 그가 활발하게 예능 나들이를 시작한 것도 〈펜트하우스〉로 얻은 호평이 용기를 준 덕분이다.

심수련은 그동안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에 등장해온 복수의 주인공이자 권선징악의 실행자다. 이지아의 심수련은 좀 더 발전했다. 그는 불우한 가정사 대신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인물이고 인성에 영민함까지 갖췄다. 때문에 자신의 딸을 잃고 분노의 질주를 하는 동안에도 심수련은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펜트하우스〉의 반전 중 대부분은 피해자인 줄 알았던 심수련이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이지아는 드라마 속에서 전혀 모르는 듯 상대를 완전히 믿는 순수함부터, 사실은 다 알고 있었는데 기회를 준 것이라는 반전까지 매끄럽게 보여준다. 이지아 특유의 신비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지아는 인터뷰에서 “심수련은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고요하게 한 방을 날리는 범접 불가의 포스를 풍긴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모두를 배려하지만 그렇다고 당하기만 하는 캐릭터는 아니라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래서 비극의 주인공이 된 심수련이 어떻게 ‘우아하게 복수를 해내는지’가 시즌 1의 스토리였다. 그런데 마지막 회에서 그는 뜻밖에 죽음을 당한다. 시즌 2에서 이지아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펜트하우스 찐팬들은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김순옥 월드를 여행해본 이들은 안다. 부검할 때까지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이지아가 부디 점 하나로 다른 인물이 되지 않길, 심수란이나 심수령 같은 쌍둥이가 등장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소연이 악역을 연기하면 일어나는 일


2000년 〈이브의 모든 것〉의 허영미(김소연)는 드라마사에 남을 만한 여성이었다. 이름에 ‘허영’이 들어 있을 정도로 영악하고 욕심이 많으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인물이었다. 라이벌인 진선미(채림)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진선미보다는 항상 뛰어났던 허영미의 실력이었다. 그는 실력이 있었음에도 운이 따르지 않아 매번 고배를 마셨고 그만큼 독기가 깊어졌다. 김소연은 당시 허영미 역을 맡으며 화제가 되고 인정도 받았지만 그만큼 욕도 먹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악역을 맡지 않았다. 〈펜트하우스〉는 그가 무려 20년 만에 다시 악역을 맡은 작품이다. 그만큼의 내공과, 그만큼의 폭파력이 담겨 있다.

김소연의 천서진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고, 자신만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안 되면 모든 것을 총동원해 원하는 걸 손에 넣고야 만다. 천서진의 손에 오윤희(유진)는 꿈과 사랑을 잃었고, 심수련(이지아)은 딸과 남편을 잃었다. 그의 악행의 대상인 심수련이 고도의 지능전을 벌이는 것에 비해 천서진은 매번 자신이 한 행동을 들키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악인의 캐릭터가 평면적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김소연은 자신의 연기력으로 천서진의 부족함을 보완해냈다. 특히 15회에서 아버지가 죽는 것을 방치하고, 재단 위임장을 빼돌린 뒤 비에 젖은 머리와 피 묻은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펜트하우스〉 전체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이 장면 하나로 김소연을 연기대상의 대상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소연은 이지아, 유진과 함께 나란히 최우수상을 받았다.)

예능이나 주변인들을 통해 알려진 김소연의 평소 모습은 순수와 배려 그 자체다. 부부로 출연한 윤종훈도 평소의 김소연은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천사인데 슛이 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증언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보는 이들이 김소연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진, 최우수상에 걸맞은 배우 되다


유진에게 이제 ‘걸그룹 출신’은 흘러간 추억일 뿐이다. 떼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 그는 완성형 배우가 됐다. 〈펜트하우스〉에서 김소연, 이지아와 삼각편대를 형성하면서도 밀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는 〈펜트하우스〉 전 영화 〈종이꽃〉에서 이미 안성기와 하모니를 이루는 명료한 연기로 호평받은 바 있다. 유진의 연기가 날개를 달고 있는 시점에서 만난 게 〈펜트하우스〉다.

유진이 맡은 오윤희는 김순옥 월드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다. 기존 그의 드라마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했다. 이번에는 선은 심수련이, 악은 천서진이 맡았다. 그런데 오윤희는 그 중간지대에 있다. 처음엔 가난과 불운으로 헤라클래스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지만, 나름의 재기로 운명을 박차고 나가는 캔디형 캐릭터로 보였다. 더구나 심수련의 도움으로 헤라클래스에 입성할 때까지는 이 둘의 연대가 공고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를 죽인 범인은 사실 오윤희였다. 오윤희조차도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번뜩 깨닫는다. 작가는 이것을 그가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였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설정해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범인이라는 걸 알고 난 뒤, 오윤희는 흑화하기 시작한다.

유진의 캐릭터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점이다. 심수련의 진영에 있을 줄 알았던 오윤희는 이제 천서진이 해온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주단태를 유혹하고, 주단태를 통해 심수련을 없애고 그 자리에 들어앉으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딸(배로나)을 위한 것이라고 안위한다. 어떤 면에서는 천서진보다 더 시청자를 분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회에서 오윤희는 심수련을 죽인 범인으로 체포된다. 그는 심수련을 죽이지 않았지만 죽였다고 자백한다. 그러고는 다시 죽이지 않았다며 탈옥한다. 이 드라마틱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 드라마는 이제 시즌 1을 마쳤다. 시즌 2에서 오윤희는 어떤 얼굴로 돌아올까. 이미 시즌 1에서 억척맘, 정의의 사도, 흑화한 악녀까지 소화한 유진의 변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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