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미·이재림 ‘재미공작소’ 공동 대표

재미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일어나는 공간

글 : 김가원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재미공작소 

가로 3.7m, 세로 7.3m, 약 8평(27m2)의 하얀색 공간. 간판도 없고, 평소에는 비어 있다. 텅 빈 도화지 같은 이곳이 기억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문학 행사가 벌어지는 곳으로, 또 누군가는 창작 워크숍이 열리는 곳으로 안다.
그런가 하면 인디 뮤지션의 공연장이자 팝업숍으로 아는 이도 있다. 모두 문화예술 공간 ‘재미공작소’를 이르는 말이다.
이재림·이세미 공동 대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재미공작소는 이세미·이재림 두 공동 대표가 직접 기획하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2011년 문을 연 후 음악 공연, 강독회, 작가와의 만남, 전시, 창작 워크숍, 창작자들의 새해 달력을 판매·전시하는 캘린더 갤러리 등 장르를 넘나드는 문화예술 행사를 열고 있다. 공간이 작아 수용 인원은 10~30명 정도다. 2013년부터는 출판사로도 등록해 그림동화 《대륙의 시작》, 뮤지션 심층 인터뷰집 《우리들의 황금시대》 등을 출간했다.

“우리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자는 취지로 연 곳이기 때문에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 정체성이 공존하죠.”(이세미)

이세미·이재림 두 공동 대표는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선후배 사이로, 이세미 대표는 글과 미술 등 다방면의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고 이재림 대표는 영화 시나리오도 쓴다. 기획자이자 아티스트인 두 사람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관심이 많다. 평소 활발하게 콘텐츠를 소비하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재미공작소 공간에 가져와 공유한다. ‘새롭거나 좋은 것, 새로우면서 좋은 것’이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재미다.

“취향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우리에게 재미란, 작품을 접하는 순간 ‘와, 좋다’ 혹은 ‘이렇게 새로울 수 있다니’ 하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에요.”(이세미)

그래서인지 기획하는 행사의 장르가 다양하고 섭외하는 아티스트의 스펙트럼도 넓다. 소설가 김금희·정세랑, 시인 김승일·오은, 뮤지션 아마츄어 증폭기·이랑 등 잘 알려진 아티스트뿐 아니라 뮤지션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여유와 설빈 등 신진 아티스트도 이곳을 거쳤다.


무모해 보여도 하고 싶은 일을

록 그룹 ‘몽구스’의 리더 ‘몬구’ 공연.
두 공동 대표가 뭉친 건 작업 공간의 필요에서였다. 이세미 대표는 프랑스에서 보낸 유학 생활과 여행 경험을 통해 한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에 눈떴다. 귀국 후 이재림 대표를 만나 공동 작업 공간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고, 마음이 맞아 곧바로 2011년 4월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재미공작소를 열었다. 당시 재미공작소는 평일엔 공동 작업실 대여, 주말엔 지금처럼 두 사람이 기획한 재미있는 행사 개최로 운영했다. 부동산을 보러 나간 첫날 바로 공간을 계약할 정도로 시작은 무모했다.

“공동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그곳에서 수익까지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를 만든 거죠. 또 우리가 기획하는 행사들은 대중적이라기보다 소수의 취향에 가까운데, 우리가 원하는 문화예술 공간이 없다면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이재림)

2년간 운영한 상수동 공간은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 지금은 위워크(wework) 등으로 잘 알려진 코워킹 스페이스지만 당시엔 낯선 개념이었다. 네 시간 이용 가격이 5000원이었는데, 문을 연 지 3개월 만에야 첫 손님이 왔다.

유희경 시인 낭독회.
“빚을 내 사업을 시작했는데도 장사가 안 된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어요. ‘자리 잡기까진 당연히 시간이 걸리겠지’란 생각이었죠. 아티스트 섭외도 마찬가지로 접근했어요. 둘 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티스트들이 SNS를 시작하던 때라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죠.”(이세미)

‘하고 싶으면 하자’는 특별한 용기가 아닌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생각이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는 힘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었고, 2013년 월세가 더 저렴한 문래동으로 이전했다. 운영 방식도 바꾸었다. 지금의 재미공작소는 두 사람이 기획하는 문화예술 행사만을 위한 공간이다.

“공간을 운영해보니 쉽지 않더군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면 그전에 재미있는 일을 실컷 해보자 싶었습니다. 늘 공간을 지키는 것보다 자유로운 운영이 우리와 더 잘 맞기도 했고요. 그래서 문래동으로 오면서 공간 대여가 아닌 콘텐츠를 기반으로 삼았습니다.”(이재림)


지금,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벽에 시를 발표한 특별 전시 ‘시공간집’.
재미공작소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만큼 기존의 것을 뒤집는 새로운 경험이 가능하다. 일례로 2018년 특별 전시 ‘시공간집’은 시에 관한 보편적인 경험을 뒤집은 전시다. 보통 시는 지면을 통해 발표되고, 독자들은 시집을 구매해 시를 읽는다. 하지만 ‘시공간집’에서는 지면이 아닌 벽에 시를 전시(발표)했고, 독자들은 시를 직접 필사하거나 녹음해가는 방법으로만 가져갈 수 있었다. 전시된 시를 사진으로 찍는 것은 금지였다.

“전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기에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닌데,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한 기획이었습니다.”(이재림)

시각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를 전시한 것도 기존과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재미공작소라는 시공간에서만 가능한 사적인 경험.

“‘사각사각’하고 시를 필사하는 소리를 들으며 뭉클함을 느꼈어요. 참여한 관객들도 필사하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좋은 시간이었다는 피드백을 주셨죠.”(이세미)

UWproject(Useless Wearable Project).
재미공작소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능성에 공감하며 찾아오는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있어 두 사람은 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공간이 워낙 작아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 교감이 일어나는 과정이 생생하게 보입니다.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행사를 마칠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데,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보람이에요.”(이세미)

8년간 운영하며 안정 궤도에 오른 행사도 많지만, 두 사람은 새로움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한다. 올해 10월엔 ‘시공간집’ 두 번째 전시가 예정돼 있고, 가을에 《씬의 아이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1990년대 인디 뮤직신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씬’과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다룬 인터뷰집이다. 재미공작소는 공간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있다.

“재미공작소를 찾는 관심이 아티스트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활동이 아티스트들을 알리는 콘텐츠로도 활용되길 바랍니다.”(이세미)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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