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원 엘리카메라 대표

연남동 작은 골목, 나만 알고 싶은 곳

글 : 김가원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강혜원 엘리카메라 대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은 골목. 이곳에 들어선 순간 영화 〈나니아 연대기〉가 떠올랐다. ‘여기에 가게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빨간 대문이 눈에 띈다. 옷장 문을 열면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듯 문을 열자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가게를 둘러싼 수백 대의 오래된 카메라가 반긴다. 필름 카메라 열풍의 중심에 있는 엘리카메라 쇼룸이다.

다양한 빈티지 카메라와 유럽 감성을 물씬 풍기는 공간 덕에 쇼룸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엔 비어 있는 시간대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엘리카메라를 검색하면 후기는 많지 않다. 엘리카메라 강혜원 대표는 이를 “‘나만 알고 싶은’ 심리가 아닐까요” 라고 설명한다. 문을 연 지 2년 6개월, 후기는 적어도 입소문은 자자하다.

이곳의 방문객은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젊은 세대만큼 나이 지긋한 방문객도 있는데, 두 세대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어르신들은 향수를, 젊은이들은 신선한 감성을 느낀다.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엘리카메라는 이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남기는 힘들 듯하다.

엘리카메라 쇼룸 벽면에는 1900년대 초·중반 코닥 제품의 광고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2016년 8월에 문을 연 엘리카메라 쇼룸은 1800~1900년대 유럽 빈티지 필름 카메라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쇼룸의 대표이자 필름 카메라 컬렉터인 강혜원 대표의 컬렉션 400여 대가 전시돼 있다. 2개월간의 셀프 인테리어를 거쳐 문을 연 이곳은 강 대표의 취향이 오롯이 반영됐다. 그의 소장품은 쇼룸에 있는 400여 대 이외에도 300여 대가 더 있다고 한다. 쇼룸 공간이 협소해 전시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전시 내용을 바꾸고 있다.

사실 엘리카메라는 쇼룸보다 ‘박물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조금 독특한 박물관이다. 그런 곳에 으레 있을 법한 ‘눈으로만 보세요’란 안내문은 없다. 강 대표는 오히려 이 골동품 같은 카메라들을 턱턱 들어 설명해주고, 심지어 만져보기를 권한다.


12년간 수집한 빈티지 필름 카메라

엘리카메라 쇼룸에서 가장 오래된 카메라인 미국 코닥사의 폴딩 카메라.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
강 대표가 처음 필름 카메라에 끌린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다.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강 대표는 다양한 형태의 카메라를 들여다볼 일이 많았고, 곧 유럽 빈티지 필름 카메라의 독특한 디자인에 매료됐다. 그의 첫 빈티지 필름 카메라는 영국 Ensign사의 ‘Ful-Vue’다. 이 컬렉션을 시작으로 12년간 필름 카메라를 수집하고 있다.

“카메라를 하나하나 알게 되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강 대표의 말이다. 디자인에 매료돼 시작했지만, 필름 카메라의 역사와 특징, 시대 속에 묻힌 브랜드와 카메라 발굴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됐다. 남대문, 충무로의 카메라 숍은 물론,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일부러 유럽으로 코스를 잡아 카메라를 수집해 오기도 했다. 더욱 깊이 빠져든 건 영국 유학 시절이다. 영국은 빈티지 카메라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다른 컬렉터와 만나기에 좋은 곳이었다.

“영국에선 시간만 나면 영국과 독일의 카메라 숍과 빈티지 카메라 페어를 방문했어요. 엘리카메라 쇼룸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소개하는 1800년대 카메라 역시 6년 전 영국의 한 페어에서 발견한 거예요.”


중고나라에서 연남동 쇼룸까지

강혜원 대표가 직접 꾸민 엘리카메라 쇼룸.
엘리카메라의 시작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컬렉션 일부를 처분하기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강 대표는 원래 해외시장 전자 상거래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대학원에서 e비즈니스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 수집은 취미활동 수준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 그동안 모은 카메라를 정리해보니 400대가 넘었어요. 일부를 처분하려고 중고나라 판매를 시작했죠. 카메라 마니아분들의 사랑을 받았고, 단골손님들도 생겼습니다.”

손님들은 강 대표에게 전문 사이트 설립을 건의했고, 강 대표는 쇼핑몰을 먼저 시작했다. 쇼핑몰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금방 유명해졌지만 강 대표는 다른 꿈을 갖게 됐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필름 카메라 소개와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것. 오래된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다.

강 대표는 필름 카메라의 디자인에 매료돼 컬렉터가 됐고, 카메라가 가진 역사와 이야기에 빠졌기 때문에 카메라의 브랜드나 가격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 또 카메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도 얽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2016년 문을 연 엘리카메라 쇼룸은 철저하게 전시와 체험, 교육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쇼룸에서는 상업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에요. 사지 않고도 누구나 카메라를 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열장 No! 체험 Yes!


지금은 필름 카메라가 레트로 열풍을 타고 주목받지만, 탄생 당시에는 경쟁에 밀려 금방 사라진 것들도 많다. 쇼룸을 운영하는 목적 중 하나는 그렇게 잊힌 카메라들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강 대표의 이런 설명을 들으며 울컥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1, 2년만 판매되고 사라진 카메라를 소개할 때는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느낌이 들어요. 나만의 사명감이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카메라 중에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많다는 것을 계속 알리고 싶어요.”

이곳에는 강 대표의 취향뿐 아니라 컬렉터로서 겪은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마음도 함께 녹아들어 있다. 그 역시 손님으로서 카메라를 마음껏 구경하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많다. 그 때문에 엘리카메라는 ‘카메라를 절대 진열장에 넣지 말고, 방문하는 모든 손님이 만져볼 수 있게 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카메라는 만져도 보고 소리(셔터음)도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카메라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화면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 볼 수 있게 해드립니다.”

러시아 GOMZ사의 스테레오 카메라 ‘Sputnik’. 두 개의 렌즈가 달린 스테레오 카메라는 시점이 다른 두 장의 사진을 동시에 찍을 수 있다. 사람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 시야가 다른 것과 같은 원리다.
엘리카메라 쇼룸은 단순히 카메라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손님들은 강 대표가 직접 도슨트가 되어 2시간 정도 진행하는 카메라의 특징과 역사 설명을 들을 수도 있고,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 인근으로 출사를 나갈 수도 있다.

강 대표는 장기적으로 카메라 판매보다 필름 문화활동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8주 과정 정규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체험 프로그램을 좀 더 심화할 계획이다.


필름사진집 도서관 ‘엘리브러리’

미국 Argus사의 35mm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C3’.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콜린 크리비가 들고 다닌 카메라다. 탈·부착이 가능한 플래시 전구는 일회용이라서 한 번만 터뜨릴 수 있다.
얼마 전 한 손님이 강 대표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적은 편지를 건네줬다고 한다. 이곳은 이제 강 대표만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됐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나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물어물어 쇼룸을 찾아와 미놀타 카메라 두 점을 기증하신 90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강 대표는 “나누는 데에서 가치를 느낀다”고 답했다.

그는 필름 카메라를 주제로 외연을 더욱 확장하는 중이다. 3월에 연희동에서 오픈 예정인 ‘엘리브러리’는 그가 모은 400여 권의 옛 필름사진집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이다. 이곳의 사진은 한때는 묻혀 있던 엘리카메라의 카메라처럼, 유명 작가들이 아닌 아마추어 작가의 사진집이 대부분이다. 공간 역시 강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했다. 그런가 하면 필름 카메라 전문 매거진 발행도 준비 중이고, 필름이 단종돼 사진을 찍지 못하는 카메라들을 개조해 ‘심장을 새롭게 넣어주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강 대표는 ‘공간이 가진 힘’을 언급했다.

“필름 카메라 유행은 어느 순간 시들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엘리카메라만이 가진 공간의 힘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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