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아이돌 ‘잼아저씨’ 김태진 리포터

욕심 이상의 노력!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한 데 모여 스마트폰을 꺼낸다.
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퀴즈 풀기에 열중한다.
한쪽에선 환호성이, 다른 쪽에선 탄식이 터진다.
이 앱은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2018년 2월에 출시한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다.
‘잼심시간’(잼라이브+점심시간)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잼라이브. 그 열풍의 배경엔 이 사람이 있었다.
‘연예가중계 공무원’에서 ‘잼아저씨’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18년 차 베테랑 리포터 김태진이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김태진 리포터는 학창 시절 책 읽기와 발표하기를 좋아했다. 자기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했던 그는 아나운서를 꿈꿨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로를 틀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케이블TV의 태동기, 김태진 리포터는 케이블 TV 속 VJ(Video Jockey)에 빠졌다.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만 사용하는 아나운서와는 달리, 자유롭고 재미있게 방송을 이끌어 가는 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교과서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는 자연스레 VJ의 꿈을 품었다.

“고등학교 때 방황이 심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늘 응원해주시면서도 진로에 관해서는 확고한 철학이 있으셨어요. 어느 날 저를 불러 ‘대학에 입학해 제대로 된 전공 공부를 체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이 말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진로를 분명히 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죠. VJ의 꿈을 위해 꾸준히 준비했습니다. VJ 오디션을 찾아다니고, 혼자 수시로 방송 연습도 했어요. 그러다가 2001년 Mnet에서 VJ 공채 9기를 선발한다는 공고를 봤죠. 보자마자 달려가서 1번으로 접수하고 합격했습니다.”

© 잼라이브 영상 캡처
데뷔만 하면 화려한 스타의 길이 펼쳐질 줄 알았던 21세의 김태진 리포터. 가만히 있으면 방송 섭외가 들어올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또 다른 도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프로필을 작성해두고 오디션 공고가 나올 때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수차례 낙방 끝에 그는 SBS 교양 프로그램 〈잘 먹고 잘 사는 법〉 리포터로 공중파에 입성했다. 그 후에도 오디션 응시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수십 번 낙방해도 낙심하지 않았다.

“〈연예가중계〉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당시 PD님이 저더러 말이 너무 빨라서 아쉽다고 했죠. 그 후 다른 프로그램들에서 리포터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1년 후 저를 불합격시켰던 그 PD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2003년부터 〈연예가중계〉에 합류했습니다. 데뷔 초반에는 제가 찾아다녀야 하는 섭외였죠. 실패해도 그 주위를 맴돌다 보면, 다른 방송에서도 진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연락이 오게 돼 있더라고요.”


〈연예가중계〉 16년 차의 내공이 터지다

© KBS 〈연예가중계〉영상 캡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도 마이크를 통해 들릴까 봐 조마조마했던 2003년 11월의 첫 방송. 이 방송을 시작으로 그는 16년간 〈연예가중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소위 ‘연예가중계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성실함’이다.

“어떤 인터뷰든 상대방에 대한 기사를 최소 10페이지를 보고 갔어요. 심층 인터뷰는 꼭 챙겨 봤고요. 그 사람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해두는 거죠. 행간을 읽는 겁니다. 그래야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지 받아칠 수 있고, 상대를 감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돌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음악방송을 챙겨 보는 등 아이돌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는 최소한 연예가중계 내에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저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연예가중계〉는 제 청춘을 다 바친 프로그램이죠.”

10년 넘게 방송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대중에게 인지도 면에서 한계를 느꼈고,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이 시기에 ‘잼라이브’ 섭외가 들어왔다.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는 이미 중국과 미국에서 흥행한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타 일정 때문에 오디션을 못 봤지만, 간이 세트장을 만들고 모바일 퀴즈쇼를 진행하는 영상을 보내 인정받은 후 합류했다.

그의 예상대로 ‘잼라이브’는 대박을 터뜨렸다. 출시 후 두 달 만에 동시 접속자 수 22만 명을 기록했다. 동시에 김태진 리포터의 잠재력도 터졌다.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18년 차 리포터의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연예가중계〉 첫 방송의 떨림은 마이너리그 무대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잼라이브’ 첫 방송의 떨림은 달랐어요. 메이저리그 10년 차에 투수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다른 팀에 가서 첫 선발투수가 된 느낌이었죠. 자신은 있었지만 실투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죠.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BJ들의 방송을 보며 연구했고 ‘잼아저씨’ 캐릭터 구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소 정장을 잘 안 입지만 잼아저씨라는 캐릭터에 맞게 정장을 사 입고, 초창기에는 SNS에 아재개그를 게시했죠. ‘잼라이브’는 그 어떤 방송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시청자분들은 이용하지 않아요.”


제2의 전성기


잼아저씨로의 변신은 김태진 리포터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길을 걷다 보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젊은 세대와 소통도 늘었다. 〈연예가중계〉를 뒤늦게 본 젊은 시청자가 댓글에 ‘잼아저씨가 공중파에 진출했다!’라고 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피드백에 민감한 프로그램이라 작은 반응에 울고 웃을 때가 많다.

“제 몸이 힘든 건 상관없는데, 방송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너무 속상합니다. 저 자신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고요. 방송의 양과 질을 다 채우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최고점을 찍고 있어도 언젠가는 꺾이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해야죠.”

김태진 리포터는 백발이 돼도 현역 리포터이고 싶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흐름을 이끌어가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선 그는 후배 리포터들에게 뼈 있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노력을 동반하지 않는 후배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리포터를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서요. 무언가를 배우려면 자신의 욕심 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욕심만 있고 노력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보여서 안타까워요. 꼰대같이 보일까 봐 걱정되는데,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웃음)”
  •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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