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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코끼리 주치의로 일하며 《달려라 코끼리》 펴낸
최종욱씨

왜 코끼리는 동물원 탈출을 꿈꿀까?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 사진 : 김선아 

《해삼의 눈》이라는 책이 있다. 쓰루미 요시유키라는 ‘해삼 오타쿠’ 학자가 해삼을 통해 고찰한 일종의 문명교류사다. 이 책을 읽은 후론 시장이라도 지나가다 해삼을 보면 무심결에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본 세상을 다루면서, 비슷한 정도의 여운을 남기는 책을 최근에 만났다. 지난 7월 출간된 《달려라 코끼리》다.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열 마리의 코끼리가 한국에서 보낸 9년을 추적했다. 쉽게 읽히지만 간단치 않은 고민을 담은 책이다. 동물원의 주인공인 동물들, 과연 다들 안녕하신 걸까.
수의사 최종욱씨는 전라도 광주의 우치동물원에서 근무하며 라오스 출신 코끼리들의 한국 생활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봤다. 현재는 잠시 동물원을 떠나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간혹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면서 자신의 업(業)을 글로 풀어내는 이들이 있는데,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책과 신문 칼럼을 통해 꾸준히 동물 이야기를 풀어내왔다.

《달려라 코끼리》 출간에 맞춰 서울에 올라온 최종욱씨를 만난 곳은 서울 동교동의 ‘코끼리 탈출하다’라는 카페. 지난 2005년 책의 주인공인 코끼리들이 어린이대공원에 머물던 시절 동물원을 탈출한 적이 있는데, 이들의 탈출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카페란다.

만나자마자 대뜸 물었다. “코끼리는 무슨 생각으로 탈출한 걸까요?”

“코끼리는 초식동물이잖아요. 초식동물 특유의 민감함이 있어요. 퍼레이드 때문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닥의 음식을 주워 먹는 비둘기떼를 만났는데 그것 때문에 놀라서 우왕좌왕하다 뛰쳐나갔다고 해요. 보통 체격이 클수록 외부 자극이나 고통에 더 민감해요.”

최종욱씨는 광주 우치동물원에서 2003년부터 9년간 라오스 코끼리를 돌봤다.
코끼리는 머리가 좋을까. “동물 중에는 가장 좋은 축에 드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1930년대에 한 학자가 동물의 아이큐를 측정한 적이 있어요. 사람을 100으로 치면, 돌고래는 80, 코끼리는 60, 침팬지는 40 정도라고 결론 내렸지요. 그렇지만 동물의 생존엔 아이큐(IQ)가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인 이큐(EQ)가 중요한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집단 지성’은 동물에겐 보편적이에요. 코끼리의 경우 지식을 서로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2003년 6월 한국으로 이주한 라오스 코끼리의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애초 인천의 송도유원지에서 공연을 하며 지낼 예정이었지만, 누적되는 공연 적자로 2년 만에 서울 어린이대공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일장춘몽으로 끝난 탈출사건으로 유명세도 얻으며 자리를 잡는가 했지만, 3년 후 어린이대공원 쪽의 사정으로 다시 새 집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정착한 곳이 우치동물원이었다. 완전히 정착한 것이 아닌 임대 계약이었지만.


동물도 살기 좋은 동물원 만들어야


최종욱씨는 코끼리와 함께 지내며 문득 코끼리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물원에 가보면 고개를 좌우로 반복적으로 젓는 등 ‘정형 행동’을 하는 동물이 종종 있다.

코끼리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이 정형 행동은 DNA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절망과 무료함을 외면하려는 필사의 몸짓이 아닐까, 그의 추측이다.

10년 동안 동물원 주치의로 일하면서 느낀 점을 묻자 그는 “무력감”이란 말을 꺼냈다.

“처음엔 동물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동물원을 떠날 때는 외려 후련하기까지 했어요. 우리나라 동물원은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에요. 동물들이 그걸 모르겠어요? 동물원의 동물들은 새끼를 잘 낳지 않아요. 호랑이나 사자 같은 경우 새끼를 낳으면 물어 죽이거나 잡아먹기도 해요. 출산 경험 없이 들어오자마자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꽤 많은 편이다. ‘동물을 위한 행동’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전국에 22곳의 동물원이 있다. 소규모 이동 동물원까지 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인구 대비 동물원은 많은데, 동물원을 규제하는 주체가 모호해요. 관할 법이 없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법적으로는 박물관에 해당되거든요. 동물이 유물과 같나요?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의 경우엔 동물원끼리 자체 규율을 정해 엄격히 지켜요. 사실 동물원의 국제적인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물원의 존립 목적 자체가 첫 번째, 종을 보존하고 궁극적으로 야생으로 동물을 되돌려보내는 거예요. 두 번째는 생태 교육이에요.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거죠. 세 번째 목적이 전시 등 엔터테인먼트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엔터테인먼트 기능만 중시해요. 다행히 서울대공원이 그걸 깨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실제로 사설 동물원에서 적자가 쌓이자 동물들에게 사료를 끊은 사례가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한 동물원이었다. 아사 직전의 동물들을 보며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가능한 법적 조치가 없었다. 그는 인도의 코끼리 이야기를 꺼냈다.

“라오스 코끼리가 들어오기 전에 우치동물원에서 코끼리를 수입하려고 한 적이 있어요. 인도에 있는 코끼리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쪽에서 안 팔겠다고 나온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인도 측에서 한국에 있는 인도 유학생을 시켜 우치동물원의 상태를 몰래 점검한 거예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마당이나 좁은 우리 등 문제를 보고받았겠죠. 결국 인도 코끼리는 못 들여왔어요. 아무리 돈을 줘도 그런 환경의 동물원에는 안 판다는 거예요. 그때 많은 걸 느꼈어요.”

동물원을 잠시 떠나 있지만, 그는 지금도 동물원으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

“동물원이라는 곳의 특성을 생각하면, 동물원이 새로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 영업 중인 곳은 잘 운영해야 해요. 이미 들여온 동물들을 어디로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펭귄을 날게 하라》는 책으로 유명한 일본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경우를 보면, 일단 방문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해줘요. 하루에 두 번 산책하는 펭귄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찾지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아야 결국 그 수익이 동물에게 돌아가서, 동물도 살기 좋은 동물원이 되더라고요. 그런 동물원을 만드는 게 저의 꿈이에요. 자연친화적으로 꾸미고 놀이기구도 갖춰놓고, 한켠에는 쉴 수 있는 카페도 있는 동물원이요.”

책의 주인공 라오스 코끼리 열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 최종욱씨와 코끼리들과의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처음에 라오스에서 코끼리를 수입해온 회사, ‘코끼리월드’는 코끼리를 팔 곳을 계속 물색했다. 최종적으로 낙점된 곳은 일본의 후지 사파리파크. 암컷 코끼리 ‘봉이’와 봉이의 새끼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코끼리 모두 일본으로 건너갔다. 2011년의 일이다. 라오스에서 한국,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이주, 신산한 삶이다.

정식으로 우치동물원의 가족이 된 봉이와 우리는 지금도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봉이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동료들과 헤어져 남겨진 슬픔 때문인지 정형 행동이 심해지고 코를 내미는 등 관람객과 교감하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새끼 우리는 발육상태는 좋지만, 지나치게 산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단다. 다시 한 번 동물원 밖으로 달려나갈 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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