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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민 작가

올해 10주년 맞은 10초 완성 10원 초상화

글 : 류동연 대학생 명예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장재민·최윤석
홍대 프리마켓

이태원 ‘계단장’ 구석에 자리를 잡은 그가 책상 위에 여러 물품을 꺼내놓는다. 유성펜 서너 자루와 종이 한 뭉치, 빈 깡통, 자동 스탬프. 그리고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라고 적힌 푯말 하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의 책상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각양각색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 “다 다르게 생겨 그릴 때마다 새롭다”는 그는 작가 장재민이다.


개념 작업

‘예술의 가치는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그는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지만, 값싸고 흔한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2005년 실험적으로 시작한 작업이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다.

“일단 10원은 가장 작은 화폐 단위잖아요. 돈 한 푼 없어도 10원은 누구든 마련할 수 있잖아요. 거기에 제가 그림을 가장 빨리 그릴 수 있는 시간 10초. 그렇게 숫자 ‘10’에 맞춰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그가 그린 초상화는 투박하다. 얄팍한 모조지에 유성펜으로 ‘슥’ 그린 그림은 볼품없다. 화폐 가치도, 시간에 비례한 정성도 낮다. 권위도 없다. 하지만 그림을 받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하나도 안 닮았다며, 너무 잔인하게 그렸다며 투정 부리곤 하지만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난다. 사람들은 그의 멋없는 그림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한다.

그는 “가장 싸게 구입하고 대충 그리더라도 그림을 받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모두 행복하다면 충분히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얼굴을 마주하다


매주 토요일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수백 명의 얼굴을 관찰한다. 순식간에 특징을 잡아내고 이를 그려낸다. 캐리커처 같은 그의 그림에는 피사체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저는 원래 다른 사람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아요. 그래서 잘 못 알아보곤 하는데, 초상화 작업을 하면서부터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제 시선을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편하게 관찰할 수 있죠. 그게 무척 재미있어요.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역시 달라졌죠. 사람들을 만날수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그의 그림에는 격이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와 마주 앉아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할 수 있다. 유명 연예인도, 노숙자도 그에겐 모두 피사체일 뿐이다. 그는 유명 전시회장부터 동네 골목까지 어디서든 그림을 그린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름 속에서 그가 하는 작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10원-10초가 전하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유효하다.


친절한 서비스

매주 토요일 이태원 이슬람 사원 뒤편에서 열리는 ‘계단장’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계단장은 지역문화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마을장터로 그가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마을공동체인 ‘우사단’의 일원으로서 계단장 기획 외에도 마을에 관한 다양한 흔적을 기록하는 아카이빙도 진행한다. 우사단 마을은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어린이는 그의 단골손님이지만 무척 까다롭다. 어른들은 큰 기대가 없기 때문에 그림을 받아 들면 웃음으로 넘기지만 아이들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

“종종 그림을 받고 펑펑 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제가 집중하다 보니 무섭게 쳐다봤을 수도 있지만, 그보단 초상화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나 싶어요. 아이들은 제 초상화를 통해 갑작스럽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잖아요. 거울로는 수없이 봤겠지만, 눈은 사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하죠. 그런데 초상화는 제3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모습을 그린 것이고, 객관화를 넘어선 과장이 들어가다 보니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애들은 ‘친절하게’ 그려주려고 하죠. 눈이 얼굴의 반쯤 될 정도로(웃음).”


열 돌


어느덧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를 해온 지 10년.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평범한 A4 용지는 초상화를 위해 특별 주문제작된 종이로 바뀌었고, 이제는 그를 알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가 등장하면 이내 기다란 줄이 생기고, 길게는 한 시간까지 기다려 그림을 받아간다. 10초 만에 뚝딱 해내던 그는 이제 그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20초에서 많게는 1분까지 그림에 정성을 기울인다. 적막만 흐르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간단한 대화도 오고간다. 가격은 여전히 10원 그대로지만 그에게 이제 이 초상화 작업은 ‘10원’의 가치가 아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의 값이 10원일지언정, 받아가는 사람에겐 그 가치가 10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저를 위해 줄을 서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8월 15일부터 1주일간 열리는 10주년 전시회에는 그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소셜펀딩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했고, 기존의 투박한 그림 대신 캔버스에 정성 들여 그리고 색까지 입힌 그림으로 벽을 장식할 예정이다. 좌판에서 전시장으로. 공간이 확 바뀐 이 전시회는 그에게 새로운 실험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제 작업이 제도와 탈제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비록 제도의 바깥(프리마켓)에서 시작했지만, 이번에 제도의 내부(전시회)로 들어가면서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요.”


43590


올해가 가기 전 그는 유럽 국가의 유명 갤러리 앞에서 초상화를 그릴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그의 메시지가 통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여차하면 현지 경찰에게 붙잡혀갈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어요. 그냥 계속하고 싶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에게 초상화를 선물 받았다. 10초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정성스레 그려준 초상화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의아해하던 사이 종이 하단에 쓰인 ‘43590’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바로 4만3590번째 손님이었다. 한 번 찍을 때마다 자동으로 하나씩 숫자가 올라가는 스탬프. 과연 몇까지 올라갈지 자못 궁금하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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