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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선모형자동차대회 한국인 최초 입상 이정덕씨

자동차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우리나라 대학생이 최근 태국에서 열린 ‘2014 국제무선모형자동차대회(2014 Thailand International R/C Touring Car Championship, 이하 TITC)’에서 3위를 차지했다. TITC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무선모형자동차(Radio Controlled Car, 이하 RC)대회로, 해마다 30여 개국에서 400명 이상의 선수가 참가한다.

‘한국인 최초 입상’이라는 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계명대 기계자동차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정덕 씨. 5개 종목으로 나눠 열린 이번 대회에서 그는 2개 부문에 참가해 종합 성적 3위를 기록했다.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며 연습하느라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였다”는 그는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웃었다.

RC 대회는 규정된 부품을 사용해 직접 만든 자동차의 성능 및 주행 능력에 따른 속도와 랩 타임(Lap Time, 구간 기록)을 겨루는 경기다. 시속 60km 이상의 속도와 폭발적인 출력으로 실제 자동차 못지않은 속도감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 시속 100km 이상도 가능한 ‘속도 무제한’의 최상위 종목은 경기장을 도는 차량을 미처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크기는 작지만, 형형색색의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모습은 ‘F1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대회 때마다 경기 관람을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이유다.


“RC 선수들도 실제 경주용 자동차를 타면서 연습하는 과정이 있어요. 코너링할 때의 쏠림이라든지, 변속 등을 감각으로 익히게 하는 것이죠. 자동차 레이싱은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지만 이건 무선 조종이라 눈과 감각에만 의존해야 하거든요. 저는 RC만큼 자동차 경주도 좋아해요. RC 선수 중에는 두 가지를 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동차 경주를 하다 RC 쪽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RC에서 자동차 쪽으로 가기도 하고요. 저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자동차는 돈이 훨씬 많이 들어서 대학생인 제가 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경기 방식이나 자동차 제작 원리 등 RC와 자동차는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우리나라에는 드물지만, 아마추어에서 프로 선수로 전향하면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이익도 자동차 레이서와 다르지 않다. 프로 선수가 되면 후원사가 생기고, 몸값도 ‘억대’로 뛰어오른다. 경기 때 차량에 붙이는 회사 이름 스티커 한장 한장이 모두 광고료와 연결돼 있어 입상할 경우 각 업체에서 받는 성과보수도 상당하다.

그는 3년 전부터 국내 RC 전자부품 업체인 ‘머치 모어(Much More)’사의 후원을 받고 있다. 회사가 자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어 연습하기가 수월해졌고, 부품을 무상으로 공급받아 경제적인 부담도 덜었다. 그가 이번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요인 중 하나다.


인터넷으로 자료 모으며 독학으로 실력 쌓아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RC에 관심을 가졌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TV 프로그램에서 고교생 RC 선수를 본 것이 계기였다. 자동차를 좋아했지만 실제로 운전할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던 소년에게 RC는 ‘신세계’였다.

고향인 경북 영주에는 RC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모아 독학했다. 모르는 부분은 RC 동호회 운영진이나 전문 선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했다. 그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지만, 선배들은 어린 학생의 열정을 모른 체하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 RC계의 일인자로 꼽히는 김응찬 선수는 선뜻 그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그는 김 선수를 ‘스승님’이라 부른다.

이처럼 RC에 대한 열정과 주변의 도움으로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자동차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품었다. 계명대 기계자동차공학과 입학으로 그는 날개를 달았다. 대학생이 된 후 실물 자동차에 대한 공부와 RC 연구를 병행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2학년 때인 2009년 한국선수권아마추어클래스에서 3위를 차지했고, 2011년에는 한국선수권프로클래스 정상에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국제대회 입상으로 그는 국내 RC계의 유망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그는 선수보다 자동차 제작 쪽에 더 관심이 많다. 실제로 그의 RC 제작 능력을 알아본 홍콩의 한 업체는 이번 대회 직후 ‘신차 개발을 함께하자’고 제안해 이미 작업을 마쳤다. 지금은 국내 업체와 새로운 제품 개발을 논의 중이다. 그는 “RC 제작도 실제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비슷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며, “학교에서 배우는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 전문가’라는 한 가지 꿈을 안고 달려온 그는 3학년 때 현대자동차 연구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목표 달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당시 면접관들은 그의 이력에 무척 흥미를 보였고, RC를 화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지금은 방학 때마다 현대차에서 진행하는 강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 지난 방학 때는 현대차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설계 프로그램을 배운 덕분에 RC 제작이 훨씬 쉬워졌다. 졸업 후에는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일할 예정이다. 대학생인 올해까지는 선수 생활을 열심히 할 계획이지만 직장인이 되고 난 후의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 다만 현대자동차는 남양연구소 인근에 RC 경기장이 있을 정도로 사내에 동호인이 많아 업무와 함께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꿈의 직장’인 셈이다.

좋아하는 일에 매진해 일찌감치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취업 걱정까지 말끔히 덜어낸 이정덕씨. 학창 시절, 입시에 매달려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떠밀리듯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 청소년에게 그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감사함’을 알기에, 그는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나눌 생각이다.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흔쾌히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듯, 이제는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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