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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홍진호

만년 2위 게이머, 인기 방송인으로 돌아오다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지난해 여름 tvN의 게임쇼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쥔 그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폭풍저그’라 불리며 e스포츠의 황금기를 함께했지만 그는 정규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매번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숫자 2는 마치 운명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존경의 대상이자 조롱의 대상이었다. ‘콩은 까야 제맛’ ‘콩까지마’, 대중은 양 극단을 오갔고 그는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 그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그가 돌아와 건재함을 알렸을 때 코끝이 찡했다. 최근 <더 지니어스 2:룰 브레이커>에서 탈락하며 2회 연속 우승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다시금 그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10년 전 그의 흑역사가 들춰지는 일이 마냥 기쁘다. 자랑스럽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은퇴하고나서 평범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요즘 <지니어스>가 이슈화되면서 많은 분이 알아보시니까… 반가워요. 여성 팬이 많이 늘어서 좋고(웃음).


그를 이야기하는 데 <지니어스>를 빼놓을 순 없다. 시즌 1 우승자인 그가 올해 초 시즌 2에 다시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과 뛰어난 두뇌 플레이는 여전했지만 출발선에서 앞선 그가 전방위로 견제를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연예인 대 비연예인의 대립구도가 형성되면서 프로그램은 파벌논란에 휩싸였다. 그 후 절도 논란으로 프로그램 폐지 서명운동이 일기도 했고,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윤리성과 품위유지 위반으로 권고 조치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혼란 속에서 그는 게임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다수의 연합이 아닌 독단적인 플레이로 해법을 찾아 게임을 풀어나갔고, 그런 ‘천재’적인 모습에 시청자들은 크게 열광했다. 그가 상대방과의 신의를 중시하는 진정한 ‘지니어스’였기 때문이다.


시즌 중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상황보다는 제가 문제였지 않았나 싶어요. 우승자 출신이니까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견제를 받을 것을 알았고 슬기롭게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적으로 반응했거든요. 좀 더 제 자신을 컨트롤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프로그램을 두고 논란이 많았죠.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참가자들이 극단적으로 선과 악으로 나뉘다보니 부담스러워요. 저 역시 모순도 있고 약점도 빈틈도 많은데, 그런 점은 다 가려진 채 절대 선으로만 포장되거든요. 본의 아니게 저 때문에 다른 분들이 욕먹는 경우가 많아서 죄송스럽고.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숨만 쉬어도 ‘까이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이해가 가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 <지니어스> 출연은 신의 한 수였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시작한 방송에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현재 tvN <김지윤의 달콤한 19>와 SBS 파워FM <케이윌의 영스트리트>에 고정출연하고 있으며, 그 외에 MBC <나 혼자 산다>와 tvN의 <현장토크쇼 택시> 등 다양한 곳에서 프로방송인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은퇴 후 프로게이머들이 대부분 게임단 코치나 감독, 해설자, 게임개발자로 전향하는 것과 달리 그는 “뿌듯”하게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방송활동에 대해 전-현직 프로게이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좋아해주는 분이 많죠. 여전히 게이머를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어서 게이머 출신이 잘되어야 다른 게이머들이 자신감 있게 활동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하거든요.


팬들은요?

긍정적으로 봐주세요. 응원해주시고 피드백도 바로바로 해주세요.제 팬들이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살만 좀 쪄도 바로 욕하고 그래요(웃음).


<달콤한 19> 출연은 예상외였어요.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는, 연애 상담 프로그램이잖아요.

재미있어 보였어요. 연애를 많이 해본 편은 아니라 미숙하지만 일단 할 수 있다고 말해놓고, 첫 녹화 날 사실 배우러 온 거라고 솔직히 털어놨어요(웃음). 연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이 프로를 보겠어요? 잘 모르는 보통 남자들이 제게 감정이입하면서 보겠죠.

거기서 두 여성에게 많이 당하고 놀림받는데, 그게 제 진짜 모습이에요. 솔직담백하고 ‘허당끼’ 있는. <지니어스> 때 이미지는 부담스러웠죠.


그는 열아홉 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10년 넘게 게임을 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다. 큰 기대는 없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순간이 ‘맵’이다.



방송은 적성에 맞나요?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게임 쪽에서는 제가 대선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방송에서는 신입생이잖아요. 모든 게 다 처음이에요. 게다가 원래 TV를 안 봐요. 유명한 프로그램조차 잘 모르는데, 이제 안 볼 수 없잖아요. 챙겨 볼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뭐든지 그 분야에 직접 뛰어들지 않는 이상 쉽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거의 없어요. 뭐든지 열린 마음으로 해보고 싶거든요. 굳이 따지면 5% 정도 닫힌 마음인데… 춤, 이런 거 말이에요(웃음).


그는 여전히 ‘방송인’ 보다 ‘프로게이머’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멋있고, 그 모습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과 부스 안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 해설진이 각 선수의 전력을 분석하고 감독은 벤치에서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본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팬들의 응원구호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다. 그곳에서 그는 청춘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서나 팬의 인생에서나 e스포츠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하나의 상징으로 e스포츠에 남아주길 바란다.


방송과 게임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과 나를 필요로 하는 일 중 어느 곳에 비중을 두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더 생각해보겠지만 e스포츠와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가야죠. 한때 작더라도 이 분야를 함께 만들어갔던 사람 중 한 명이고, 그래서 자부심을 느껴요. 앞으로도 같이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죠.


그는 지난 2월 초 <스타 파이널 포> 대회를 직접 기획·개최했다. 스타크래프트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팬들을 위해 ‘몽상가’ 강민, ‘영웅토스’ 박정석, ‘들쿠달스’ 이병민이 모였고, 그 외에 ‘쌈장’ 이기석 등 수많은 전-현직 프로게이머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최종 우승은 ‘이벤트전의 제왕’답게 그의 몫이었지만, 승패를 떠나 선수·관계자·팬이 한데 모여 오랜만에 옛 분위기를 내며 그때를 추억했다. 다 같이 ‘콩댄스’를 추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고,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이 이벤트가 시발점이 되어 스타1 리그가 부활하길 모두가 바랐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꼭 지키고 싶은 게 있나요?

사회가 <지니어스>처럼 어느 정도의 반칙과 편법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권장하잖아요. ‘그렇게 해야만 잘살 수 있다’고.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요. 약간 ‘오글거릴’ 수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같이 가고 싶은 사람과 같이 가고 싶어요. 게이머 시절에도 ‘홍진호는 독기가 없어서 진다’는 말이 많았지만, 제 스타일대로 하려고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척 감사해요. 새롭게 응원해주시는 분도 많지만, 기존 팬들은 제가 은퇴하면서 함께 ‘잠수 탔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거든요. 아직 저를 기억해주시니까 기쁘죠. 힘도 생기고, 책임감과 부담감 모든 게 좋은 에너지가 돼요. 어떤 모습으로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테니까 예쁘게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내가 홍진호 팬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는 글을 볼 때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를 빨리 찾아서 올인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가 앞으로 어떤 ‘폭풍’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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