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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요리경연에서 우승 차지한 한국계 입양아 제니 월든

어릴 적 할머니가 해준 음식,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이 내 요리의 뿌리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정익환 

서바이벌 형식의 요리경연 TV 프로그램인 <마스터셰프>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 버전으로 제작된다. 우리나라도 케이블 방송인 올리브채널이 주관하는 <마스터셰프코리아>가 있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참가자들의 면면과 이들이 매 회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며 실력을 겨루는 과정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열린 <마스터셰프>에서는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는 한국계 여성이 20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되었다. 여섯 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제니 월든(Jennie Wallden)이 그 주인공. 그가 2013년 10월 고려대에서 열린 ‘미래과학콘서트’에 강연자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미래과학콘서트는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과학 영재들과 만나는 자리.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세계 과학계의 큰 행사다. 과학자를 꿈꾸는 고등학생들 앞에서 그는 ‘열정’을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유명한 과학자들이 모여 과학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심포지엄에 초대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며, “청소년들에게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흔쾌히 응했다”고 설명했다.

“강연은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꿈과 열정을 따라가라’는 내용이었어요. 원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 빨리 발전하고, 그 분야에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곧 그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지만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랐던 그는 스웨덴 유명 식품회사에 입사해 마케팅 매니저가 되었다.

대학 시절 전공은 사회학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그는 TV에서 <마스터셰프>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참가자들이 요리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면 벌떡 일어나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그에게 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가슴이 설레었다. 요리사의 꿈은, 잊고 있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용기를 냈다.

“1차만 통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선까지 올라간 거예요. 본선 참가자들은 6주 동안 합숙을 하면서 대회를 준비해요. 이 친구들과 하루 종일 요리 얘기만 하는데도 지겹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한국계인 저를 비롯해 인도·베트남계, 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혼혈 등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어요.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승은 목표가 아니었어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대회를 즐겼죠. 욕심 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요리한 것이 우승 비결인 것 같아요.”

이후 그는 셰프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요즘은 라디오·신문·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칼럼을 기고한다. 요리책도 냈다.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덕분에 거리에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변화 중 하나다. 그는 “무엇보다 취미가 일이 된 것이 가장 멋진 변화”라며 웃었다.


여러 나라를 돌며 다양한 음식문화 체험

고려대에서 열린 미래과학콘서트에서 강연하는 제니 월든.
그는 스웨덴 정통 요리에서부터 이탈리아식・한식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외국 체류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를 다녀온 그는 당시 음식문화가 발달한 베니스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배웠다. 대학 시절에는 영국・미국・프랑스・네덜란드 등지에서 길게는 4년, 짧게는 6개월씩 머물렀다. 공부를 겸한 문화체험이 주목적이었다.

그는 “여행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지역에서 어떤 재료들이 나는지, 이것을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고, 어떻게 나누는지를 통해 그 안에 담긴 독특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것. 그 경험은 마스터셰프대회 기간 중 그가 창의적이고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그는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이탈리아나 스웨덴 요리에 한국 음식을 섞는 ‘퓨전 스타일’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의 전문 분야다.

“요리는 만드는 사람을 반영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광주(光州)예요. 입양되기 전까지 시내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생모를 대신해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저를 키워주셨어요. 할머니가 농사일을 하는 동안 옆에서 뛰어놀던 일, 마을 사람들과 많은 양의 김치를 만들던 풍경, 매운 김치를 물에 씻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다 기억나요. 저는 할머니를 통해 음식에 담긴 따뜻한 사랑을 배웠어요. 제 요리의 뿌리는 바로 할머니예요.”

그는 입양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입양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들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할머니 곁을 떠난 것은 아쉽지만 좋은 양부모님을 만나 잘 자란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는 외모와 피부색이 달라 놀림을 받기도 했어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유전자를 타고난 덕분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이번 요리대회에서 얻은 교훈은,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던 일이라면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었다면 제 삶은 바뀌지 않았겠지요. 마케팅 매니저 일도 즐거웠지만 요리사로 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요.”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 만들고 싶어

그는 한국 음식도 곧잘 만든다.
마스터셰프대회에서 우승한 후 요리책을 펴냈는데, 김치·잡채·나물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소개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한국의 입양기관이 해외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모국 방문 프로그램 때 참가했다가 좀 더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1년간 머문 적이 있다. 김해의 인제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친척들을 만났고, 할머니도 찾았다. 이번에도 사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다만 일정이 짧아 한국 음식을 많이 맛보지 못하고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요리사로서는 막 시작점에 선 셈이라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스웨덴에는 한식당이 별로 없어 스웨덴 사람들이 한식을 맛볼 기회가 드물어요. 아이들이 어려(6세, 4세) 레스토랑을 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식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불고기・잡채・갈비 등 제가 요리한 한식을 먹어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한국인 요리사처럼 완벽한 한식을 만들 수는 없지만, 매운맛을 줄이는 등 스웨덴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해 요리하는 것도 한식을 대중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 201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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