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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장인 (68) NKSJ리스크매니지먼트 우메야마 고로(梅山吾朗)

일본 공공기관에 위기관리 조언하는 전문 컨설턴트

2010년 3월,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대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심히 비디오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젊은이가 있었다. 한국의 민방위 훈련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을 찾은 우메야마 고로(梅山吾朗)씨.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위기관리 컨설턴트다. 일본의 최대 컨설팅회사 NKSJ리스크매니지먼트 소속인 그는 40세의 젊은 나이지만, 정부 등 공공기관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귀재라 불린다.

“와! 굉장하다. 굉장해!”

감탄사를 연발하며 놀란 토끼눈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카메라 버튼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 민방위대원이 저지하자 서울시가 제공한 특별 완장을 내밀며 훈련 시작 전부터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버튼을 힘주어 누른다.

“그 넓은 거리를 질주하던 자동차들이 일제히 멈추고, 거리에 가득하던 인파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어요. 광화문 사거리가 마치 영화의 세트장이 된 것 같더군요. 이처럼 일사분란한 모습을 일본에서 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일본 총무성의 의뢰로 세계 각국의 방재 시스템을 조사해온 그가 한국의 방재 시스템과 민방위 체계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이었다. 스위스・독일・영국・싱가포르 등 해외 각국을 조사하고, 6개월 전 행정안전부, 서울시, 철도공사, 소방청 등을 방문했다. 보고서를 다 작성해놓고도 직접 실제 훈련 모습을 보고 기록하기 위해 다시 광화문에 나타난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일원화된 전국 규모의 경보 시스템과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훈련체계를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이러한 경보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훈련되었더라면 3・11 쓰나미의 피해도 조금은 줄였을 것입니다.”

그의 보고서는 일본 정부에 전국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했고,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하게 한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일본 정부가 110억엔을 들여 각 지자체에 경보 시스템을 도입하고 전국 규모의 체계를 갖추는 데 탄력제가 되었다는 평가다. 그런데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통일된 경보 시스템 정비나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그런 훈련을 실시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피해에 대한 보상 요구, 일반인의 비협조에 대한 우려, 훈련으로 인한 혼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3・11 동일본대지진에 대해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 대응을 검증하는 민간인 위기관리 전문가 35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에다노 당시 관방장관을 비롯해 총리관저 등 정부의 요인들을 만나며 쓰나미와 원전사고 발생 후 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정밀 조사하고 있다. 로손 등의 기업 출자로 재단(일본재건이니셔티브재단)을 만들어 검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행정 당국이 제대로 판단하고 대응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일본이 가진 역량이라면 좀더 좋은 판단이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적 의사결정과 연계성 부족,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당사자의 의식결여가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서울시처럼 십수 년간 민방위훈련과 방재를 주관해온 위기관리 전문위원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오는 3월, 영어와 일본어로 발간될 예정이다. 한국을 모니터링해온 그에게 한국의 인상을 물었다.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해보자는 의식이 부족하고, 과거를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혼란을 겁내지 않고 전면적인 개혁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가 2010년 12월 서울에 다시 나타났다. 1996년 9월에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란다. 세계 곳곳의 위기관리에 대해 조사해온 그가 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관심을 가졌을까.

“세계적으로 한국은 특수한 위기상황이 많이 발생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은 일본과 가장 인접한 나라로서 위기상황 대응 등 배울 만한 사례가 많습니다. 또한 한국 음식이 저에게 잘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컨설턴트가 된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파견된 연구기관에서 만난 한 선생님의 충고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막연히 남의 고민이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즈음 3학년까지 학점을 모두 이수한 학생에게 4학년 1년 동안 외부 연구기관에서 졸업논문을 준비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200명 중 2명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도전을 결심했다. 그가 4학년 때 파견 나간 곳은 후생노동성 산하 국립공중위생원(현 국립환경보존원)이었다. 그는 물과 하수 담당이었다. 1년 동안 일반 연구원과 똑같이 출퇴근하며 연구를 도왔다. 월급은 없고 교통비만 나왔다.

도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성격이 온순했다. 어릴 때부터 물리학 등 과학을 좋아했고, 박물관 관람을 즐겼다. 할아버지는 금형공장을 운영했고, 아버지는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조부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DNA의 영향 때문일까. 그의 보고서는 장인이 온 정성을 다해 사포로 다듬은 것처럼 정교하기로 유명하다. 위기관리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자리에서 최선의 판단을 해야 하고, 틀렸다고 판단되면 다시 수정하고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 능력이다. 결과에 대해 책임질 각오를 하고 과감히 결정을 바꿀 용기도 필요하다.

“컨설턴트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직업인데, 발견은 보고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해결은 다릅니다. 최선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 시간을 들여서라도 고객을 설득해야 합니다.”

최선의 해결을 위해 그는 컨설팅 계약기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간 30건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계약기한에 연연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종종 기한 엄수에 대해 지적을 받지만 최선의 컨설팅은 상대를 설득해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고수한다. 국내외를 오가며 위기관리를 컨설팅하는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출장이 많다 보니 가족을 소홀히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가을 위기관리 조사를 위해 도버해협에 갔을 때 둘째 아들의 출산 예정일과 겹쳐서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출발 직전에 태어나 안도했지만요(웃음).”

그는 시간이 나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 있을 때는 대청소를 비롯해 걸레질을 자처하는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위기관리 비법이라고. 취미는 달리기, 합기도, 라이플 사격이다. 라이플 사격은 초단으로 대학 때 전 일본 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다. 한국의 위기관리 조사를 계기로 배우기 시작한 한국어도 실력이 꽤 늘어 일상 회화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이 됐다.

“한국은 본능적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잠재된 능력을 좀더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 과학화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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