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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장인 (59) 요시다 노부오(吉田誠男) 이바센(伊場仙) 사장

421년, 14대째 계승되는 부채 가문의 부채 장인

2009년 12월 코펜하겐 환경회의에서 각국 수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 일본기업이 있다. 421년 역사의 전통 부채 제조업체 ‘이바센(伊場仙)’. 한여름도 아닌데 환경담당 각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비결의 하나는 자연동력이라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독특한 디자인과 재질이었다. 대나무나 화지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해 우키요에(浮世繪·다색 목판화) 방식으로 만든 부채다. 일본 전통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 촉감이 부드럽고 초정밀 베어링에 참기름을 친 것처럼 접고 펴기가 매끄러웠다.

일본 금융 발상지이자 에도시대 경제의 중심지였던 니혼바시에 자리한 본사를 찾았다. 1층 점포에 들어서니 다채로운 색채와 섬세함, 정교함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부채들이 화사한 느낌의 흥분을 자아낸다. 이 부채는 가장 저렴한 것이 1500엔 정도, 비싼 것은 8만 엔을 넘는다고 한다. 점포를 나와 1층 복도로 나가니 에도시대의 우키요에가 그려진 크고 작은 부채가 전시돼 있다. 육필원화와 판목은 대부분 간토대지진 때 소실되었지만 다행히 몇 점이 남아 있어 전시하고 있다 한다. 에도시대 당시 찍은 ‘이바센판(伊場仙版)’ 우키요에는 현재 일본 국내 미술관은 물론 대영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400여 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이가 바로 14대 당주인 엔지니어 출신 요시다 노부오 사장이다. 연매출액 30억엔, 직원 10명의 작은 기업이지만, 그의 설명에는 421년의 역사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역사는 역사입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며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해온 결과가 400년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통과 역사가 미래를 보장하거나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입니다.”

1590년 창업한 이바센은 카멜레온처럼 수차례의 변신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창업 당시에는 치수공사 등 관급 토목공사를 주로 했다. 에도 막부가 열리면서 이에야스 가와 함께 에도에 입성했고, 당시 상업의 중심지 니혼바시(현 본사 입주지)를 중심으로 에도 건설에 주역을 담당했다. 에도 건설이 일단락되면서 토목공사는 급감했다. 다른 업자나 장인들은 대부분 부동산을 구입해 건축업을 하거나 토지를 팔아 남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바센은 달랐다. 토목공사 등에 사용되었던 목재나 대나무 가공기술과 화지 제조기술을 활용해 세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죽세공품은 원재료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해 매출이 들쭉날쭉했다. 고심 끝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예품 제조업으로 전환해 대나무와 종이로 부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부가가치를 더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우키요에 화가 히로시게 등의 그림을 부채 면에 도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평가가 좋아지자 이 기술을 응용해 우키요에를 종이에 인쇄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모기술로 가지를 쳐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형태였다. 결국 에도시대 최대의 우키요에 판권과 프린팅 기술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었다. 1955년 선풍기의 보급과 1970년대 중반 본격적인 에어컨 보급으로 부채 판매가 급감했다. 수차례의 크고 작은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사업의 다각화와 축소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 9%대에 평균 경상이익률 10% 전후를 유지하며 400년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요시다 노부오 사장의 경영전략과 시대 가치의 변화 덕분이다.

1955년 사장에 취임한 그는 백화점 입점과 함께 부채의 고급화에 힘을 기울였다. 부채의 촉감과 정밀함, 감각적인 디자인을 고집했다. 특히 유행에 좌우되기 쉬운 ‘색상’에 신경을 썼다. 2년 후 유행할 색상과 디자인을 조사·예견하고 에도 특유의 색상과 디자인으로 승화시켜 신제품에 반영했다. 시대의 변화도 한몫했다. 전력 없이도 손쉽게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로서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쿨비즈’ 아이템에 부합했던 것이다. 또한 한여름 불꽃놀이에 욕의 차림으로 등장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부채가 젊은 층의 인기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그는 “자연미를 생활에서 재현하고 즐겼던 선조들의 미의식과 감성의 역사가 부채에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바센은 창업 이후 수십 차례의 화재와 지진으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지진으로 후계자를 잃기도 했다. 간토대지진 때는 회사가 불에 타 모든 것을 잃었다. 이러한 시련과 재건을 거듭하며 얻은 교훈은 첫째 리스크 관리,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세 번째는 혈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모아놓은 재산이 한순간에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내린 리스크 관리 방법은 회사와 집을 분리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건물만이 아니라 공사를 철저히 분리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교훈은 독특한 승계 절차를 낳았다. 요시다 사장도 창업자의 직계가 아니다. 창업자의 먼 친척이었던 할아버지가 양자로 12대 당주가 되면서 경영권이 요시다 가로 넘어온 것이다. 지금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지만, 이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의 문화, 특히 에도의 문화와 전통공예, 그리고 부채사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며느리든 누구든 후계자로 고려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5형제 중 차남이다. 최첨단 카메라를 연구 개발하던 그에게 회사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명이 떨어진 것은 28세 때였다. 입사하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그의 책상에는 인감도장(경영권)과 만년필 두 자루, 그리고 넥타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늘부터 네가 사장이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라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난 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선대 13대 사장인 아버지가 62세, 요시다 사장이 32세 되던 해의 일이었다. 후계자 수업을 해온 것도, 승계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다. 경영지침도 비전도 사업계획도 없었다. 그 후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회사 경영에 대해 아버지와 논의한 적이 없다.

“청천벽력이었지요. 한동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눈앞이 캄캄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위기를 겪으면 더 빨리 성장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랬고요.”

이바센의 목표는 지속가능경영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요시다 사장의 경영철학이자 대대로 내려오는 선대의 가르침이다. 유형의 가훈은 없지만 선대 대대로 내려오는 3가지 가르침이 있다. ①선대의 삶을 볼 것, ②2(두 번째)자가 들어가는 것을 갖지 말 것, ③지역사회에 공헌할 것. 그는 지역 커뮤니티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본사 7층 세미나실을 개방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각종 전통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바센의 부채는 반영구적이다. 종이를 교체하고 뼈대를 수리해가면서 10년 넘게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부채는 여름 한철 쓰고 버리는 한시적 계절용품’이라는 인식을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숙련된 장인의 기술이 녹아 있어 접었다 폈을 때 주름이 생기지 않고, 사용할수록 품격이 살아난다. 이 부채는 사용하는 아름다움, 즉 ‘용(用)의 미(美)’로 자연순환형 사회를 만들어가는 전통 장수기업의 지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글쓴이 염동호 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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