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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생후 5주 된 손녀에게 11억짜리 시계 선물한 이유

스포츠에서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이 있다. 예컨대 프로권투 헤비급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가 1948년 7월부터 1956년 4월까지 세운 49전 무패 같은 것이다. 그는 영화 〈록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로키의 복싱 인생에 감동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그의 이름을 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처럼 로키는 무지 얻어맞는 선수였다. 그러나 맷집이 어마어마했다. 상대의 소나기 펀치를 견뎌내고 기어이 승리를 챙겼다. 7년여 프로 생활 중 로키가 다운된 것은 딱 두 번뿐. 복싱을 대표하는 수많은 복서가 로키의 49연승 기록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왼쪽)가 2015년 5월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프로복싱 WBC WBA WBO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매니 파퀴아오의 얼굴에 왼손 훅을 적중시키고 있다.© newsis
역사로 남을 뻔한 이 기록은 2017년 결점 없는 ‘아웃복싱’ 기술을 가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등장하면서 깨졌다. 매니 파퀴아오, 오스카 델 라 호야, 카넬로 알바레즈, 리키 해튼 등 당대 최고의 복서들을 모두 이긴 그는 2017년 종합격투기 최고 스타 코너 맥그리거까지 꺾으며 50승 무패 신기록을 썼다.

이 경기 후 그는 링과 작별을 선언했다. ‘50연승을 기록한 최초의 복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채. 물론 맥그리거가 정식 권투선수는 아니기에, 이 승패를 공식 전적에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정식 ‘복싱 룰’이었던 만큼 맥그리거가 그저 메이웨더의 제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벤트성 경기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로키의 아들 마르시아노 주니어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경기를 전적에 포함하는 것은 복싱의 수치”라며 “메이웨더 주니어의 신기록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0년간 1조 원 벌어

메이웨더 딸 아야나 메이웨더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첫 번째 롤렉스”라는 제목으로 딸 사진을 올렸다. © 아야나 메이웨더 SNS
어쨌든 메이웨더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싱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여전하다. 한 예로 멕시코에서 국민 스타 대접을 받는 건 축구선수가 아닌, 멕시코 복서 카넬로 알바레즈다. 그는 지난 2019년 한 해만 광고 수입, 대전료 등을 합쳐 9400만 달러(약 1060억 원)를 벌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12월 25일 홈페이지에 발표한 ‘최근 10년간 최고 수입 운동선수’ 1위는 메이웨더였다. 그는 10년 동안 9억 1500만 달러(약 1조 340억 원)를 벌었다. 메이웨더는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 그는 스스로를 ‘더 머니(the money)’라고 칭하며 ‘돈=메이웨더’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려 소셜미디어에 허세 샷 등 다양한 쇼맨십을 보여줬다.

이런 그의 행보는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최근 메이웨더는 생후 5주 된 손녀에게 100만 달러(약 11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롤렉스 시계를 선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시계는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트저스트’로 알려졌다. 메이웨더의 딸 아야나 메이웨더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첫 번째 롤렉스”라는 제목으로 딸 사진을 올렸다.


불행했던 유년 시절

메이웨더 주니어의 돈 자랑은 유명하다. © 메이웨더 SNS
지금은 100달러 돈뭉치로 테이블을 덮고, 명품관에서 한 번에 7억 원을 쓰며, 달러로 만든 침대에서 음악을 듣는 메이웨더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가난하고 불우했다. 1977년 2월 24일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그의 몸속에는 ‘복서의 피’가 흘렀다.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는 프로복싱에서 35전 28승(18KO) 1무 6패의 성적을 거둔 복서였고, 삼촌 로저 메이웨더는 웰터급 챔피언 출신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조기 교육’을 받게 됐다. 아버지는 그가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체육관에 데리고 다녔다. 메이웨더는 네 살 때 의자를 밟고 올라가 스피드백(빠르게 흔들리는 작은 샌드백)을 치며 놀았고, 일곱 살에는 자신의 복싱 글로브를 갖게 됐다. 열한 살 때 그는 18세의 복서들이 해내는 기술을 모두 섭렵했다. 그야말로 ‘천재’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메이웨더가 유복한 생활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메이웨더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메이웨더가 두 살 때 아버지는 전 외삼촌이 쏜 총에 맞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양육을 맡았지만 아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메이웨더를 오로지 복싱선수로만 키우려 했다. 가정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아들의 경기로 번 돈을 마약을 구입하는 데 썼다는 의혹도 받았다. 아버지는 마약 복용 혐의로 감옥신세를 졌다.

메이웨더는 어머니와 살게 됐지만, 어머니 역시 약물 중독자였다. 집 앞마당에 헤로인 주삿바늘이 널려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아동 학대 혐의로 처벌받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커온 메이웨더는 “사람들은 내가 지옥을 거슬러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웨더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오직 링 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의 키만 한 가방을 멘 채 버스를 타고 체육관에 가는 일상을 멈추지 않았다. 1996년 19세에 프로에 입문한 메이웨더는 승승장구했다. 2008년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9년 다시 링에 올라 챔피언 타이틀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프리티 보이? 어글리 보이?

메이웨더는 ‘프리티 보이(Pretty boy)’라 불렸다. 아마추어 시절, 경기 후 얼굴에 상처 하나 없던 그에게 동료가 붙여준 별명이다. 실제 메이웨더는 쉴 새 없이 상대를 때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거의 맞지 않았다. 복싱은 철저한 채점의 스포츠인 만큼 KO가 아닌 이상 무조건 정타를 많이 넣은 쪽이 이긴다.

메이웨더는 프로 생활 내내 정타 싸움에서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다. 동물적 감각을 뛰어넘는 빼어난 동체 시력에 빠르고 탄력 넘치며 기술까지 뛰어났다. 특히 숄더롤(어깨로 상대의 펀치를 저지하는 기술)을 복싱선수 중 가장 완벽하게 구사했다. 거기에 영리함까지 더해 경기의 흐름을 잡아가는 데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경기가 끝나도 얼굴에 상처 하나 없었던 이유다.

링 밖에서는 별명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영락없는 ‘어글리 보이(Ugly boy)’였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가정환경 탓인지 2002년 가정폭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04년에는 클럽에서 여성들에게 폭행을 가했다. 2012년 내연녀를 폭행한 혐의로 두 달간 옥살이를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이들과 대결을 펼친다. 막대한 돈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이벤트 경기가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재미와 만족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복싱계에서는 최고 복서가 돈의 노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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