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당신의 마음을 훔친 영화人 〈18〉

각본가 아론 소킨 (Aaron Sorkin)

영화에서 각본가는 존재감이 작다고?

아론 소킨이 2011년 2월 27일 제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각색상을 수상한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newsis(Xinhua/Qi Heng)
지난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영화사 100년 만에 한국인의 독창성을 만방에 입증했다. 〈기생충〉이 수상한 부문은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자가 거장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는 감독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장편영화상 그리고 각본상이었다.

‘각본(脚本)’은 영화나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미디어에서 스토리와 대사, 등장인물의 행동, 촬영 또는 내레이션 기법 등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각본을 쓰는 각본가(scenarist)는 매체별로 그 비중이 다르다. 드라마에선 각 회의 각본뿐 아니라 전체 스토리와 설정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지만, 영화의 경우 스토리와 플롯, 상황 설정 면에서도 감독의 역할이 크다. 경우에 따라 영화의 백그라운드를 따로 짜는 스태프가 있기도 하다. 〈기생충〉의 각본상은 봉준호 감독과 다른 1인이 공동 수상했는데, 영화에서 감독과 각본가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역할을 나누고, 또 촬영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협력한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각본가는 막중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이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판권이 팔린 시나리오는 일단 촬영이 개시되면 감독이 그때그때 고치기 때문이다. 결국 당초 각본과 별개인 영화가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워낙 감독의 비중이 높다 보니 각본가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영화는 감독이 곧 각본가”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 평론에서도 각본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질 때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이 또한 감독이다.

그래서 한 영화가 망하면 감독은 거의 재기가 불가능해 실질적으로 은퇴의 길을 걷는 경우도 있지만, 각본가는 커리어에 큰 리스크가 없다. 오히려 작품 편수가 많을수록 필력 있는 작가라는 인정을 받는다.


편당 40여 억 원 받는 특A급 작가

9분 40초짜리 단편영화 〈오, 몽듀(O, Mon Dieu!)〉(2007)를 직접 쓰고 연출한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건축가가 집을 설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인이 제아무리 멋진 집을 머릿속에 구상한들 실제 건축 설계도를 그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본가 역시 전문적인 하드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빤하다고 무시하는 장르 영화일수록 더 그렇다. 상투성과 전형성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 잘 쓰는 이는 연출도 잘한다”고 인정하기에 각본가의 감독 데뷔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연출을 잘하는 이가 시나리오도 당연히 잘 쓸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아론 소킨(Aaron Sorkin, 1961~)은 수만 편의 시나리오가 흘러 다닌다는 할리우드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각본가다. 할리우드 A급 시나리오 작가들은 200~400만 달러(약 22~44억 원)를 받는데, 소킨은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편당 300~500만 달러(약 33~56억 원)를 챙기는 특A급 작가다. 뉴욕에서 태어나 시라큐스대학에서 극장 미술을 전공하며 연기자를 꿈꿨지만, 연기보다 극작에 더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닫고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는 데 집중했다.

본래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희곡을 영화 각본으로 옮긴 데뷔작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1992)은 흥행 수익 2억 달러(약 2200억 원)를 넘기는 대박을 터뜨리며 골든글러브 각색상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겨줬다. 이후 〈맬리스〉(Malice, 1993),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 1995) 등의 작품으로 잇따라 이름을 알린 소킨은 미국 대통령과 보좌관들의 활약을 박진감 있게 그려낸 NBC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 1999)의 각본은 물론 직접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할리우드 톱클래스 극작가로 자리 잡았다.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그랜드슬램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의 재판 장면 촬영 당시의 아론 소킨(가운데).
소킨은 이 영화로 2021년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소킨은 거장 데이빗 핀처 감독과 손잡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창업 과정과 갈등을 특유의 핍진감으로 묘사한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2010)로 아카데미 각색상, 골든글로브 각본상, 영국아카데미 각색상을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또 타협 없는 완벽주의로 주변 사람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묘사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15)로 다시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했다.

소킨은 2017년 거대 포커 하우스를 둘러싼 음모를 그린 영화 〈몰리스 게임〉(Molly’s Game)의 메가폰을 잡으며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또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평화롭게 시작했던 반전 시위가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변하면서 일곱 명의 시위 주동자 ‘시카고 7’이 기소됐던 악명 높은 재판을 다룬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hicago 7, 2020)의 각본과 감독을 겸하면서 올해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를 집필할 당시 마크 저커버그가 영화 내용에 너무 많은 통제권을 행사하자 저커버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방식으로 난관을 헤쳐 나갔다. 그의 말이다.

“처음에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난 곧 깨달았다. 아니 세상에,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영화 속 주요 세 부류 인물들의 서로 다른 주장을 날이 시퍼렇게 부딪치게 함으로써 강도 높은 긴장을 끌어낸 영화적 플롯은 그렇게 가능했다. 영화 속 몇몇 대사는 그 적절성과 촌철살인으로 관객에게 잊기 힘든 인상을 남겼다. 하버드대학 안에서도 최상위층으로 군림하던 쌍둥이 형제 윙클보스(아미 해머 분)가 소송을 걸어왔을 때 주인공 마크는 변호사 앞에서 핵심을 짚어냈다.

“걔네는 지적 재산권 때문에 나를 고소한 게 아니에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요.”

배신당한 걸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마크의 친구 왈도(앤드류 가필드 분)가 배신을 주도한 숀(저스틴 팀버레이크 분)을 향해 빈주먹을 날리며 던지는 대사, “네가 내 옆에 있을 때가 좋아, 숀. 넌 나를 세게 보이게 해주거든”은 현실 세계가 페이스북 세상을 향해 던지는 비아냥이자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다.

아론 소킨은 말한다.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가들이 부럽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다만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묘사할 뿐이다.”

그 방에서 나누는 대화에 인간과 사회의 핵심적 본질과 치명적인 맹점이 슬쩍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만들어낸 세계인지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아론 소킨이 구축한 영화 세상에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것이다.
  • 2021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