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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훔친 영화人 〈17〉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50대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존재감

© newsis(AP Photo:Alastair Grant)
2017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더 와인스타인 컴퍼니’ 공동회장인 그가 30여 년 전부터 배우, 모델, 영화사 직원 등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범죄를 자행해왔다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촉발된 그의 추문을 놓고 처음엔 50여 명의 피해 여성들 증언이 나왔는데, 곧 그 수는 100명을 넘어섰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메릴 스트립은 “와인스타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권력 남용”이라고 성토했으며, 영국 배우 주디 덴치 또한 “피해 사실을 용감하게 공개한 여성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파문은 이후 광범위한 ‘미투 운동’으로 확산됐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여배우 중 한 명인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1967~)은 와인스타인 파문이 터지고 1년 뒤인 2018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는데, 결혼은 나에게 파워를 줬다기보다 보호를 줬다. (톰 크루즈를) 사랑하기에 결혼했지만, 매우 강력한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성추행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막강한 티켓 파워로 할리우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특급 배우와 결혼함으로써 그 업계에 만연한(?) 성적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니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비 와인스타인 파문이 일어나기 1년 전인 2016년 7월에는 미국 최고의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의 간판 진행자 그레천 칼슨이 폭스뉴스의 회장이자 CEO인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레천 칼슨은 폭스뉴스의 아침 프로그램인 〈폭스 앤 프렌즈〉의 얼굴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활약한 뒤, 오후 프로그램 〈더 리얼 스토리〉를 2016년까지 진행한 스타 앵커였다. 칼슨의 뒤를 이어 동료 언론인들이 추가 증언을 내놓았고, 이후 사퇴 압박을 못 이긴 로저 에일스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레천 칼슨은 이 일로 2017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캐릭터를 해석해내는 놀라운 재능

론 하워드 감독의 〈파 앤드 어웨이〉(1992).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Bombshell, 2019)이고, 니콜 키드먼이 바로 그레천 칼슨 역할을 맡았다.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 등 할리우드 대세 배우들과 함께 ‘쓰리 톱’으로 출연한 키드먼은 이 영화에 대해 “변화의 기폭제가 된 역사적 순간을 그린 강렬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제92회 아카데미에서 분장상을 받을 정도로 인물들의 사실감을 높인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실제 인물의 3D 안면 스캔과 석고 모형 작업을 거친 실리콘 분장을 해야 했다. 특히 니콜 키드먼은 눈꺼풀, 코끝, 아래턱 등 얼굴 보형물을 가장 많이 적용했다.

제이 로치 감독은 “니콜 키드먼은 뛰어난 서사적 본능이 있으며 관객에게 인물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서 “테이크를 갈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했고, 보여주는 것마다 사실적으로 느껴졌다”라는 말로 키드먼의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 놀라움을 표했다.

니콜 키드먼은 호주인 부모 사이에서 하와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이주해 미국과 호주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운 그는 일찌감치 연기에 재능을 보였고, 16세에 〈스킨 딥〉(Skin Deep)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액션, 로맨틱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다져왔다. 1989년 〈죽음의 항해〉(Dead Calm)에서 위험에 처한 아내 역할로 출연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키드먼은 레이싱 영화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 1990)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탑건〉 〈레인맨〉 〈7월 4일생〉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은 톰 크루즈가 키드먼을 전폭 지지해 캐스팅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키드먼은 주인공 ‘콜’(톰 크루즈)의 연인인 의사 ‘클레어’ 역을 맡았고, 둘은 영화 개봉 후 결혼식을 올려 할리우드 최고의 커플이 됐다. 두 사람은 19세기 말 아일랜드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1992)에서 다시 커플로 연기하며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톰 크루즈와 이혼 후 다시 맞은 전성기

제이 로치 감독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
〈배트맨 3-포에버〉(Batman Forever, 1995)로 인기몰이를 하던 키드먼은 〈투 다이 포〉(To Die For, 1995)를 통해 연기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성공을 향한 야심으로 가득 찬 기상 캐스터 ‘수잔’으로 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그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키드먼과 톰 크루즈 커플은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에서 권태기를 맞은 부부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으나 2년 후 이혼했다. 공교롭게도 키드먼은 이혼 후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일반 관객들이 키드먼의 대표작으로 쉽게 떠올리는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Moulin Rouge, 2001)에서는 연기뿐 아니라 출중한 노래와 춤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뮤지컬 가수 ‘샤틴’ 역을 맡아 열연한 그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두 번째 수상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세 시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그린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2)에서 키드먼은 1923년의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했다. 매부리코를 붙여 언뜻 보면 전혀 알아채지 못할 분장을 한 키드먼의 호연은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의 연기와 함께 놀라운 시너지를 냈다. 그 덕에 키드먼은 제7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는데, 이는 호주 출신 여배우로는 최초였다.


다양한 장르, 다작의 배우

캐린 쿠사마 감독의 〈디스트로이어〉(2018).
키드먼은 드라마, 코미디, 호러, 뮤지컬 등 온갖 장르에 도전해온 배우다. 할리우드 톱스타임에도 배역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해와서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따라가는 맛이 있다. 죽은 연인의 복수를 위해 17년 만에 나서는 여형사 역의 〈디스트로이어〉(Destroyer, 2018)에서는 30대와 50대를 넘나드는 변신을 보여줬고, DC 히어로 영화 〈아쿠아맨〉(Aquaman, 2018)에서는 바다의 수호자인 슈퍼히어로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의 어머니 ‘아틀라나’ 여왕을 맡아 화려한 액션 신을 선보이기도 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해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니콜 키드먼. 철저한 자기관리와 배우로서의 욕심을 발휘해 앞으로도 더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리라 기대해본다.
  •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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