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훔친 영화人 〈8〉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신의 경지에 이른 연기력

© newsis(Xinhua/Shan Yuqi)
미국 영화감독 토드 헤인즈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퀴어 시네마 감독으로, 두 여성 간의 사랑을 묘사한 〈캐롤〉(Carol, 2015)로 제50회 전미비평가협회 감독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그는 포크 록 가수 밥 딜런의 인생을 다룬 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2007)를 찍은 뒤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찬 베일은 함께 일해본 배우 중 단연 최고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빔 벤더스와 함께 1970년대 ‘뉴 저먼 시네마’의 주축 감독으로 꼽히는 베르너 헤어조크 또한 크리스찬 베일에 대해 “동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출신으로 2010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크리스찬 베일(1974~)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그를 영화 팬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작품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2000)의 감독 메리 해론은 그를 ‘연기하는 기계’라는 의미로, “로보액터(Roboactor)”라 불렀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찬 베일은 낮에는 여피족, 밤에는 연쇄 살인범인 패트릭 베이트만 역을 맡아 이른바 ‘귀족적인 사이코’를 완벽하게 소화함으로써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베일은 온갖 소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성 혐오자이자, 외모 지상주의와 자아도취에 사로잡힌 여피족 남자를 여실히 형상화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12세에 TV 시리즈로 연기를 시작한 크리스찬 베일은 13세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 영화 〈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 1987)에 주연으로 전격 출연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평은 갈렸지만 크리스찬 베일은 전국비평가협회가 주는 청소년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베일은 런던, 미국, 포르투갈 등에서 성장기를 보낸 덕에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복화술과 마술에 능했던 할아버지와 서커스단 댄서였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피가 그를 연기자로 이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역 따라 55kg에서 99kg까지 고무줄 체중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머시니스트〉(2004)
연기에 임하는 그의 철저함은 배역에 맞게 몸무게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81kg의 섹시한 몸매로 이중인격 사이코패스를 효과적으로 보여준 그는 〈머시니스트〉(The Machinist, 2004)에서는 불면증 탓에 환각을 보는 기계공을 표현하기 위해 55kg까지 몸무게를 줄였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또 이 영화를 마친 뒤 6주 만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를 찍기 위해 다시 99kg으로 살을 찌웠다. 이후 〈레스큐 던〉(Rescue Dawn, 2006)에서는 비쩍 마른 전쟁 포로 역할을 했고, 다시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의 배트맨, 그리고 〈파이터〉(The Fighter, 2010)에서 66kg까지 감량해 뼈만 앙상한 약물 중독자 역할을 소화해냈다.

대기업 CEO에서 펜타곤 수장을 거쳐 미국 부통령까지 오른 딕 체니의 삶을 그린 영화 〈바이스〉(Vice, 2018)에서 상당히 후덕한 모습을 보여줬던 베일은 1년 뒤 포드 GT40과 레이서를 다룬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2019)를 위해 또다시 30kg을 뺐다.

급격한 체중 변화와 관련된 일화도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머시니스트〉 촬영을 앞두고는 8주 동안 매일 사과 한 개와 참치 한 캔으로 보냈고, 셔츠를 벗고 상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있는 날에는 물도 마시지 않는 초인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가 이 작품을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부인이자 세르비아계 미국인 모델인 시비 블라직(Sibi Blazic)은 임신 중이어서 남편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숨어 식사를 했다고 한다. ‘고무줄 체중’과 관련, 정작 베일은 “육체적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그만큼 참선의 경지에 이른 고요함을 얻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배트맨 역을 가장 오래 한 배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 〉(2005)
크리스찬 베일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다크 나이트 3부작’이라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다. 주연 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2005년 〈배트맨 비긴즈〉는 베일을 지금의 톱스타 자리에 오르게 한 직접적인 발판이 된 영화다.

그동안 연기력은 높게 평가받았지만 B급 배우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DC 코믹스의 슈퍼스타 역을 맡으면서 단숨에 할리우드 1급 배우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은 팀 버튼 감독이 이뤄낸 판타지 감각의 배트맨과 달리 리얼리티에 바탕을 둔 무게감 있는 스토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2013)
크리스찬 베일은 2008년 〈다크 나이트〉에서도 브루스 웨인 역으로 출연, 내적 고뇌와 갈등을 겪는 배트맨을 탁월하게 그려냈고,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에서는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크리스찬 베일은 배트맨 실사 영화 시리즈 중 가장 오랜 기간 배트맨을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덜 알려진 영화라도 자신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열심히 참여한다. 오히려 대형 블록버스터보다 그런 작품을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는 것은 “지명도가 낮아지면 내가 원하는 배역을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마술이며 수수께끼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바이스〉(2018)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출연하는 영화마다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크리스찬 베일은 유난히 상복이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 수모(?)를 단번에 날려준 영화가 유명 복서 미키 워드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파이터〉다.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 출신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백업(back-up) 선수를 거쳐 라이트웰터급 세계 챔피언이 된 미키 워드(마크 월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제83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파이터〉에서 미키의 형이자 마약 중독자에, 트러블메이커인 딕키 에클런드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과 제68회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 제17회 미국배우조합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2019)
비쩍 마르고 껄렁한 몸짓으로 “네게 온 기회야. 난 놓쳤지만 너는 잡아야 해!”라며 동생을 다그치는 형의 투박하지만 애정 어린 모습을 표현한 그의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어 그는 미 부통령 딕 체니로 변신한 〈바이스〉에서 물오른 연기로 제76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제24회 크리틱스초이스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크리스찬 베일은 사생활을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는 마술이며 수수께끼다”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영화와 연기를 향한 그의 단도직입적 몰입은 일종의 신앙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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