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0〉 〈가버나움〉

지독한 가난, 무력한 아이

“자기변호나 위장술에 탁월한 수완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가난이다.”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1939~)이 자전적 에세이에서 던진 말이다. 평범한 삶을 민족사의 비극과 관련지어 보여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는 “가난의 기억은 작가로서는 거의 전부라 할 수도 있을 경험이다. ‘가난’이라고 간단히 표현하지만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 말에 담을 수없는 많은 것들을 안다”고 덧붙였다.

가난이란 과연 무엇인가. “가난은 불행은 아니지만 불편함이다”(J. 플로리오) 같은 다소 한가한(?) 소리도 있지만, “가난은 너무나 무력하다”(에우리피데스), “가벼운 지갑은 지독한 저주다”(벤자민 프랭클린),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은 식욕과 성욕이며 가장 싫어하는 것은 죽음과 가난이다”(예기)에서 볼 수 있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은 한 인간의 삶에 치명적이다.

우리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고, 서양 속담에도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을 통해 날아간다”고 했다. 심지어 영국에는 “가난뱅이들은 영혼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올 1월에 개봉해 14만여 명(4월 7일 기준)이 관람하고, 예술전용극장에서 여전히 상영 중인 〈가버나움〉(Capernaum, 감독 나딘 라바키, 2018)은 바로 가난이 낳은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포스터에 쓰인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카피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 영화는 우선 타이틀 ‘가버나움’의 뜻부터 짚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는 126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 타임 동안 언급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은 지명이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마을로 신약성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다.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한 곳으로, 특히 백부장(centurion, 신약성경에 언급된 지휘관 중 한 명)의 중풍 걸린 하인, 앓아누운 베드로의 장모,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 등을 치유한 곳이다.

하지만 ‘자비와 위로의 마을’이란 뜻의 이 지역에서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부르짖으며 복음을 거부하고, 연약한 백성들은 가난과 강요된 율법으로 신음했다. 가버나움 사람들이 이처럼 회개하지 않았기에 예수는 그 멸망을 예언했고, 실제 6세기에 퇴락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됐다.


12세 소년 자인의 이야기

영화 〈가버나움〉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중동 국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슬럼가에서 태어난 12세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겪게 되는 가출, 구걸, 불법 체류자 모자(母子)와의 동거 생활 등 기구한 사연이 기본 스토리다. 따라서 이 영화를 좀 더 실감나게 감상하려면 레바논이란 나라를 알아야 한다. 레바논은 2차 대전 이후 1944년에 독립한 나라인데, 친(親)서구적이며 보수적인 그리스도교도와 아랍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급진적 이슬람교도라는 두 세력의 대립 위에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정치적으로 안정을 잃은 ‘불운한’ 곳이다.

서로에게 가장 적대적인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부딪치는 곳. 하필 위치도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둘러싸여 있다. 1970년대 친미 노선의 대통령이 취임하고 헌법 개정으로 촉발된 정부군과 반군의 길고 긴 내전(1975~1990)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또 1970년 이후 30년 넘도록 계속된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교 게릴라들과 이스라엘의 무장투쟁 등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즉 영화를 보고 나면 단번에 알게 되지만 타이틀 ‘가버나움’이란 결국 수많은 ‘자인’들이 살고 있는 레바논의 현재를 빗댄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12세 소년 자인은 “이 X 같은 나라(Fuck this shitty country)!”라는 대사를 한다.

레바논과 프랑스의 합작 영화인 〈가버나움〉의 감독 나딘 라바키(Nadine Labaki, 45)는 레바논 출신 배우이기도 하다. 레바논의 한 대학 영화과 출신인데, 졸업 작품이 1998년 파리 IMA가 개최한 ‘아랍영화비엔날레’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과 졸업 작품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면 감독으로서 자질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셈이다.

〈가버나움〉 이전에도 나딘 라바키는 베이루트에 살고 있는 레바논 여성들의 유쾌한 로맨스를 그린 〈카라멜〉(Caramel, 2007)로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감독으로서 세 번째 작품인 〈가버나움〉으로는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제72회 영국 아카데미,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와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당연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첫 레바논 영화다.


“나를 왜 낳았나요?”


영화는 교도소 수감을 위해 발가벗고 신체검사를 하는 자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12세 소년이지만 제대로 먹지 못해 체구도 작고 배싹 말랐다. 부모가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아 신분도 확인 안 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죄명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살인 미수. 대체 자인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레바논 베이루트 슬럼가의 소년 자인은 생존이 급하다. 부모가 대책 없이 낳고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은, 정확히 몇 명인지 구분도 안 되는 많은 남매들은 방바닥에 뒤섞여 잠을 청한다. 교육은커녕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가정에서 학대를 받는다.

자인의 유일한 ‘학교’는 폐건물이 즐비하고 소아 성애자들이 곳곳에 도사린 위험한 거리다. 가스통 같은 무겁고 위험한 물건을 배달하고, 가짜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구한 약을 탄 주스를 길거리에서 팔며 연명한다. 주스 장사가 끝나면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는 건물의 주인 아사드의 식료품 가게에 가서 일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해오는 식으로 돈을 벌고,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는 부모 대신 동생들을 챙긴다. 한마디로 무능한 아버지 밑에 소년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못 먹어서 몸은 작지만, 막 대하는 어른들에게 욕을 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당돌한 모습을 보여준다.

레바논 사회가 방조한 빈곤과 무지가 악의 근원이겠지만, 자인의 부모는 역할 모델로도 최악이다. 엄마 수아드(카우사르 알 하다드)는 큰아들(10대 초반에 조혼으로 낳은)이 수감된 교도소에 환각성 약품을 밀반입하는 불법 행위에 자식들을 도구로 쓰고, 아빠 셀림(파디 유세프)이란 사람은 낮술에 취해 아이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엄마가 자인을 학교에 보내려 남편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옆집 애는 학교에 가서 음식도 받아 오고 옷가지도 가져오더라”이다. 자인의 장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주는 구호 물품이 우선인 것이다.


착한 천성 vs 악한 상황


자인의 유일한 낙은 연년생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와 빈 건물 옥상에 올라가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한 것을 안 자인은 가게에서 어른용 생리대를 훔쳐 채우게 한다. 그러나 월세를 조금이라도 깎을 요량으로 부모는 갓 초경을 치른 사하르를 아사드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이를 눈치 챈 자인이 사하르와 가출을 결심하지만 결국 사하르를 보호하지 못하고 혼자 무작정 집을 나온다.

버스를 타고 내린 낯선 동네에서 배를 곯으며 헤매던 자인은 불법 체류 여성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 그의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를 돌보게 된다. 에티오피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라힐은 한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6년을 일했지만 그 집 경비원과 눈이 맞아 임신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둔다. 판잣집에 살며 아들 요나스를 키우는데, 작은 놀이시설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중간중간 화장실에 숨겨놓은 아이를 챙기며 생활한다.

한눈에 자인이 아무런 대책 없이 집을 나왔고 천성이 착한 아이임을 알아본 라힐은 자신이 일하는 동안 자인에게 집에서 아이를 돌보게 한다. 가짜 체류증이 만료된 라힐은 새로운 체류증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가까스로 돈을 마련해 새 체류증을 받으러 가는 길에 경찰에 체포된다.

라힐이 계속 집에 돌아오지 않자 자인은 요나스를 안고 거리로 나서 먹을 것과 기저귀를 구하며 혼자서 돌본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아이가 갓난아이를 돌보는 장면들은 이 영화를 “당신이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써는 동안 지구 어느 곳에선 불쌍한 아이가 배를 곯고 있다”고 목소리 높이는 여타 ‘앵벌이’ 영화와 구분 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자인은 길거리에서 메이소운(파라 하스노)이라는 소녀를 만나기도 한다. 시리아 난민 가정의 아이로 시장에서 꽃이나 차를 파는 메이소운은 브로커에게 목돈을 주면 스웨덴이나 터키 같은 잘사는 나라로 입양될 수 있다고 자인에게 귀띔한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병에 걸려야만 죽는대”라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사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잘사는 나라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 자인은 엄마한테 배운 대로 약국에서 가짜 처방전으로 구입한 약들을 갈아 강물에 섞어 주스를 팔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요나스를 돌보는 데 한계를 절감한 자인은 시장에서 불법 체류증을 만들어주는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넘긴다.

국경을 넘으려면 신분증이 필요함을 알게 된 자인은 서류를 찾으러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사드에게 팔려 간 여동생 사하르가 강제로 임신했다가 잘못돼 합병증으로 죽고 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에 휩싸인 자인은 식칼을 들고 아사드의 가게로 달려가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다.

불법 체류자로 본국 송환을 위해 감옥에 갇혀 있던 라힐은 옥에 들어온 자인을 발견하고, “네가 여기 있으면, 내 아이 요나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라면서 오열한다. 나중에 무사히 요나스를 찾게 된 라힐은 참고인 자격으로 자인의 법정에 나와 자인이 나쁜 아이가 아님을 증언한다.


실제 난민 캐스팅

이 영화는 놀랍게도 레바논에서 실제 난민들을 캐스팅해서 촬영했다. 주인공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 난민 가정의 아이로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은 베이루트 슬럼가에서 꽃을 팔다가 캐스팅됐다.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또한 실제 불법 체류자였다. 영화의 마스코트 요나스 역을 맡은 아기는 케냐 난민 부부의 딸이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사를 외워서 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주고 그에 어울리는 대사를 알아서 하게 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자인 알 라피아를 비롯한 등장 배우들 대다수가 영화에서처럼 출생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영화제 일주일 전에 신분증이 발급되면서 간신히 참석할 수 있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다. 사람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는 말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 어디서나 경멸당한다”(J. K. 제롬)는 말이 있다. 국가의 무능이 국민을 가난으로 내몰 때 가장 고통받는 건 바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가버나움〉은 차분히, 그러나 강력하게 보여준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은 법정 장면이다. 교도소에 갇혀 있던 12세 소년 자인이 감방 내 TV를 통해 시사성 라이브 고발 프로그램을 접하고, 교도소 내 공중전화로 “나를 낳은 내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센세이셔널한 통화 내용이 방송을 탄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자인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선 여성 변호사(감독 나딘 라바키가 역을 맡았다). 그 곁에 앉아 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피고인으로 불려 나온 부모를 가리키며, 특히 뱃속에 아기를 밴 엄마를 향해 자인은 말한다.


자인: 내 부모에게 항의하고 싶어요. 어른들이 내 말을 귀담아들어주길 원합니다. 자식을 양육할 능력이 없는 어른은 아기를 갖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뭘 기억할까요? 폭력, 모욕, 두들겨 맞기, 체인과 몽둥이와 벨트로 맞기? 내가 들은 가장 친절한 말이라곤 이 창녀의 자식아 저리 가,였습니다! 쓰레기들, 꺼져버려! 인생은 똥더미예요. 내 신발보다 가치가 없어요. 난 이곳 지옥에서 살아요. 나는 썩은 고기처럼 불타고 있어요. 인생이 개 같아요. 난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어 모두로부터 사랑받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신은 우리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요. 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걸레가 되길 원했던 거예요. 당신이 뱃속에 배고 있는 아기는 나처럼 될 거예요.

Zain: I want to make a complaint against my parents. I’d want adults to listen to me. I want adults who can’t raise kids not to have any. What will I remember? Violence, insults or beatings, hit with chains, pipes, or a belt? The kindest words I heard were get out son of a whore! Bug off, piece of garbage! Life is a pile of shit. Not worth more than my shoe. I live in hell here. I burn like rotting meat. Life is a bitch. I thought we’d become good people, loved by all. But God doesn’t want that for us. He’d rather we be wash rags for others. The child you’re carrying will be like I am.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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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이만수   ( 2019-05-20 ) 찬성 : 4 반대 : 2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어린아이를 이용하여 신을 저주하고 원망하는 영화 결말은 모순이다. 기자가 앞서 말했듯이, 회개하지 않아 멸망한 지역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제 와서 신을 저주해야 할까, 회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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