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주가 만난 미술가

작가 에디 강

잃어버린 동화를 찾아서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어릴 때부터 화가인 어머니의 작업실에 자주 따라갔어요. 작업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외국 화집을 뒤적거리곤 했죠. 그때부터 어머니처럼 작가가 되고 싶었고, 다른 꿈은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가나아트 한남점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 에디 강은 작품 〈DNA〉를 가리키면서 “어머니와 저, 다섯 살짜리 딸이 함께 만든 작품이에요. 하늘색 바탕은 추상화가인 어머니의 작품을 생각하면서 그렸고, 분홍색 선으로 묘사된 인물은 딸이 그린 제 모습입니다. ‘유전자는 속일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서 〈DNA〉라는 제목을 붙였죠”라고 설명한다. 작품에는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하얀색 강아지도 등장한다. 작가가 4년 동안 키웠던 유기견의 모습으로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DNA_ 2018, Mixed media on canvas, 161.8x130cm
“이전 주인에게 학대받아서인지 애정결핍이 심했어요. 항상 화가 나 있어서 만지지도 못하게 했죠. 밝고 애교 많은 몰티즈의 특성은 거의 사라지고 온종일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뇌 수막염 수술을 받았어요. 수의사는 수술 후 서너 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4년 가까이 더 살다가 갔습니다. 보통 작업하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죠. 그 강아지를 통해 관심과 애정은 임박한 죽음까지 피하게 할 정도로 위대하다는 사실을 또다시 느꼈습니다. 그 강아지를 ‘러브리스(loveless)’라는 이름으로 제 그림에 등장시켰습니다. ‘사랑 없는’이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가 역설적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전했고, 제 그림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2018년부터 글로벌 브랜드 MCM과 컬래버레이션으로 가방, 지갑, 휴대폰 케이스 등을 만들 때도 이 강아지를 등장시켰어요. 죽은 후에도 전 세계에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Love me or hate me, I always love you)〉 역시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눈을 감은 채 빨간색 풍선을 쥐고 있는 하얀색 강아지는 꿈을 이룬 후 과거를 돌아보는 작가 자신을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예술이 아니다(Not an Art)’ ‘별로 진지하지 않다(Not Serious Enough)’ ‘내가 사랑하는 것을 그린다(I Paint What I Love)’ ‘내 길을 간다(Go My Way)’ 같은 글귀가 적혀 있어 작가가 걸어온 길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상처를 딛고

Love me or hate me, I always love you_ 2018, Acylic on canvas, 162x130cm
작가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교에서 영상-애니메이션-비디오를 전공한 후 한국에 돌아와 군 복무를 마치고 작업을 해왔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 작업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대학에서는 영상을 전공했다고 설명한다.

“제가 막상 작가가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가장 강하게 반대하셨어요.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잘 아시니까요. 취직해서 디자이너로 일하거나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라고 하셨죠. 1년 안에 뭔가 보여드리지 못하면 취직하겠다고 약속하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가볍다’ ‘진지하지 않다’ ‘우리 화랑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상처를 받았지만 그런 말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했죠”라고 말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거야. 내 길을 갈 거야’라는 생각으로 꿋꿋이 나아갔다. 그의 그림에는 베개, 인형, 로봇 등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물건들이 등장한다.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힐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무한경쟁시대를 살다보면 삶이 갈수록 삭막해집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녕만 바라면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되지요.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아이의 순수함을 되찾는다면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물건들을 그림 속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Big city life_ 2018, Acrylic on canvas, 24.5x24.5cm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2007년과 2008년, 중국 상하이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고, 2008년 타이베이에서 첫 개인전을 하자마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제 작품을 보았던 이수경 작가가 어느 날 전화로 ‘한국을 방문한 대만 큐레이터를 만나보라’고 하셨어요. 그 큐레이터 소개로 상하이와 타이베이 전시에 참여했고, 그 전시들을 통해 제 작품이 알려지면서 타이베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했습니다.”

평면회화에 직접 만든 봉제인형을 붙인 그의 작품은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사회적으로 심한 압박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크릴물감과 펜, 오일 스틱으로 그린 평면회화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작품마다 하나씩 붙어 있는 봉제인형은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한다면서 “결국은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예언하는 사람도 있었고, 개인전 첫날 가져간 작품 18점이 모두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는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 서울, 상하이, 타이베이, 도쿄, 뉴욕, 홍콩 등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숲에 사는 요정이나 예티(雪人)를 등장시킨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판타지 소설에서 ‘이제 용이나 난쟁이, 요정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도시는 계속 변하지만 산은 변하지 않잖아요. ‘산속에 우리가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세계 곳곳에 사랑과 꿈을 전파

Super Red Moon_ 2018, Mixed media on canvas, 120cm (dia)
각박한 경쟁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순수함을 되찾고 다시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현대인의 동화’ 같다. 밝은 색감으로 만화 같은 형태를 그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트렌드인 애니마믹스(Animamix)로 분류되기도 한다.

애니마믹스는 미술평론가 빅토리아 루가 애니메이션(Animation)과 만화(Comics)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반영하기보다 개인적인 경험, 감정에서 출발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가 오랫동안 애착을 느끼는 존재들이고, 색감은 대부분 그의 감정을 대변한다.

Pink Moon_ 2018, Acrylic on canvas, 50cm(dia)
“어머니가 비구상 회화를 그리셨기 때문에 저도 색으로 작가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익숙해요. 어릴 때부터 세계적인 추상화가의 작품집을 많이 보았고, 어머니를 따라 추상화 작품 전시회에 많이 다녔거든요.”

작가에게 2019년 계획을 물으니 벌써 빼곡하게 차 있다. 이미 2월 20일까지 중국 선전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고, 3월에는 홍콩의 아트페어 ‘아트센트럴’에 참가한다. 4월에는 뉴욕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과 함께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한다. 영화제 수상자 8명에게 작가 8명의 작품을 트로피 대신 상으로 수여하는 행사로, 지난해에 이어 다시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5월에는 중국 톈진의 쇼핑몰에 그의 작품이 설치된다. 15×7m의 대형 작품이다. 행복을 퍼뜨리는 세포를 그린 그의 작품 〈행복한 세포(Happy Cell)〉처럼 그는 사랑, 행복, 꿈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에디 강
1980년 서울 출생. 200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비디오 학사. 타이베이, 상하이, 도쿄, 서울, 미국 뉴욕, 홍콩 등에서 10차례 개인전. 타이베이, 서울, 도쿄, 베니스, 홍콩, 선전 등에서 단체전 참여.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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