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RTRAITS

소설가 김금희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글 : 염은영 에디터  / 사진 : 정치호 작가

두 해 전 겨울날, 김금희 작가와의 첫 만남을 명징하게 기억한다.
그가 《경애의 마음》 연재를 막 끝낸 몹시도 추웠던 날. 그날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연재는 끝냈는데, 결말을 아직 못 썼어요.”
그 미결의 상태가 그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끝이 만져진다면 모를까” (p.60, 《경애의 마음》) 소설 속 경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다행히도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흘러, 그 시간에 몸을 맡긴 이야기도 흐르고 흘러, 완결의 계절 여름에 이르렀고, 《경애의 마음》은 뜨겁게 세상으로 나왔다.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
《경애의 마음》 마지막 페이지에 쓰인 작가의 말에서 다행함을 느낀다.
우리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안녕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읽는다.
이 사실로부터 경외를 느낀다. 우리에게 다가올 엄청난 이야기를 손을 모아 기대케 만든다.
이 선험하는 모든 감정으로부터 《경애의 마음》을 배운다.
1년 만의 만남입니다. 얼굴이 좋아 보여요.
올해(2018년) 일을 많이 하신 것 같아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최근 3개월 동안 잘 쉬어서 그런 것 같아요. 새로운 글을 쓰지 않았거든요. 글을 쓰지 않으면 건강해지더라고요. 그걸 이제 알았어요.(웃음)


“최근 3개월 동안”이라면 가파도 에어(AIR・Artist In Residence) 생활 기간이겠어요.
문학인으로는 처음으로 가파도 에어에 참여하셨지요.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가파도 생활은 어떠셨어요?


너무 좋았어요. 문자 그대로 ‘완전한 휴식’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어요.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서울과의 단절감이랄까요. 매일 느끼던 일상의 의무에 무감해졌어요. 서울에서는 시시각각 도착하는 연락에 빠르게 반응하곤 했는데, 가파도에서는 그러지 않았어요. 저절로 느슨해졌고, 그렇게 되는 일이 좋았어요. 모든 걸 확 놔 버렸어요.(웃음) 걸어서 한 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 수 있었는데, 섬에서 보이는 모든 것, 섬의 풍광이나 주민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저 바라보는 일로 소일하는 게 만족스러웠어요.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죠. 창작을 해야 하는데, 일상을 채우는 것이 너무 아름다워져 버리니까 시동이 잘 안 걸리는 거예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좋은 상태, 그런 지경에 가버린 거였죠.


하지만 가파도에서의 시간과 새로운 책 출간의 시기가 겹치기도 했는걸요.
19편의 엽편을 모은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와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가 한 달 차이로 출간되었으니까요.


새 작품을 쓰는 데 앞서 필요한 작업은 지우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에 가파도에서의 생활이 참 알맞았죠. 거리감이 주는 망각의 힘이 있어요. 덕분에 언급하신 두 권의 책 후반 작업에 힘쓸 수 있었어요. 이미 작업을 마친 원고를 다듬는다거나, 여남은 부분을 완성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긴장 상태에서 이어가는 작업보다는 조금 수월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가파도에 있는 동안 무사히, 또 건강히 이 두 권의 책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딴 섬이라 교정지를 주고받는 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요.(웃음)


2018년에만 세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5년에 단편 〈조중균의 세계〉로 첫 번째 젊은작가상(제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을 기점으로 2018년까지 작품 활동의 왕성함이 갈수록 증폭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 원동력을 묻고 싶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 등단 후 5년 만에 나왔어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작가상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였어요, 청탁이 많아진 것이.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근래의 일이에요. 올해로 등단 10년 차인데, 3~4년 전부터 활동다운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일이 없다가 늘기 시작하니까 감사하기도 했고, 마감을 해야 한다는 감각이 작품을 쓰는 동력 자체가 되기도 해서 청탁을 거절할 줄도 몰랐어요. 매력적인 제안이라면 제 상황이 어떤지 계산도 안 해보고 승낙부터 했죠. 그러면 그때부터 지옥문이 활짝 열리게 되고….(웃음) 2018년에 나온 세 권의 책은 그 결과였어요. 약속 어기는 것을 못 견디는 마음도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고요.


작가님이 편집자에서 작가로의 삶으로 완전히 전향하게 된 일화(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넘어진 날 사표를 내고 소설 쓰기에 돌입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꽤 유명하죠.
‘소설가로 등단하겠다’는 도전의 길에 섰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장편소설인 《경애의 마음》이 책으로 나온 지금을 쉬이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경애의 마음》이 책으로 태어나던 날 편집자님으로부터 책의 실물 사진이 담긴 메시지를 받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 ‘다들 이렇게 요란하게 쓰나’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주변에 힘든 티도 많이 냈고, 출간 일정을 아주 미룰 생각도 했던 때가 떠올라서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끝이 보이지 않는 작품이었어요. 어느 자리에서 구효서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첫 번째 장편소설이었으니 얼마나 부담됐을 거야.” 그 말씀이 참 위로가 됐어요.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많은 분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지나가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누그러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인 것 같아요. 지금 하는 것밖에 모르는 피곤한 타입이랄까요.(웃음) 소설가가 되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출발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들이 축적되고 경험과 인지도가 쌓였음이 분명한데도, 다시금 지금 쓰는 작품이 버거운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선으로 그어보지만, 그건 그저 선일 뿐이에요.



《경애의 마음》 출간 직후 출연한 팟캐스트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에서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말씀하셨지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써야 할까”의 막막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동안 어떤 소설을 써 왔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한 편 한 편을 흥미로운 이야기를 실마리로 써 왔을 뿐, ‘내 소설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제 소설의 어떠함에 대해서는 독자분들이 알려주셨어요. 그분들께서 말씀해 주신 제 소설의 특징은 흥미로운 인물의 등장, 그들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 독특한 문체 등이었어요. ‘발견자’라는 말로 저를 설명해 주신 분도 계셨는데, 그 명명은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안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가님 소설에는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대한 포착이 인상 깊게 드러나 있습니다.
《경애의 마음》에서 상수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부하 직원인 경애에게 미션처럼 말하는 대목이라든가, 산주가 경애를 떠나보낼 때 했던 고백이라든가.
경애라는 인물을 통해 설명되는 이야기의 무게가 꽤 무거웠어요.


경애를 중심으로 도는 우주를 그린 이 소설에서 경애는 탁월한 관찰자예요. 게다가 경애는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캐릭터죠. 반대로 상수는 그 감각이 덜해요. 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해 있는 사람이니까요. 이런 인물들을 그리는 데 있어서 확실히 장편소설이 알맞았던 것 같아요. 원 없이 썼어요. 상실감을 여러 방면으로 기술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었어요. 처음에 구상한 것은 경애가 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보다 더 슬프게 끝을 맺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그려지지는 않았어요. 경애가 피켓을 들고, 관계를 정리하고, 자기 입장을 내세우게 했어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끝내 경애가 일어설 수 있어서요.


이렇게 쏟아낸 작품의 인물은 작가님께 어떻게 남아 있나요.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현실에 가까운 기억으로요. 제 기억 속의 경애는 제가 예전에 다녔던 동교동의 모 회사에 서 있어요. 실제로 《경애의 마음》의 배경이 된 반도미싱을 이 회사를 떠올리면서 썼는데, 현실에 존재한다면 경애는 아직도 반도미싱에 다니고 있을 테니까…. 지금도 문득 일하고 있는 경애에 대해서 생각하곤 해요.


한창 매진 중인 다음 작품에 대한 마음이 궁금합니다.

마감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웃음) 이것에 몰두하는 바쁜 상태가 좋아요. 지금 쓰는 소설은 문장웹진에 발표하게 될 작품이에요. 오랜만의 새 단편소설 작업이에요.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소설 쓰는 게 뭐더라? 싶은 거 있죠, 당황스럽게요.(웃음) 지금도 예열하는 데 번번이 긴 시간이 들어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일이 좋아서 잘 버텨내고 있어요.


버텨야 하는 순간마다 작가님 스스로에게 다짐처럼 했던 말이 작품에도 담겨 있겠지요?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에 수록된 〈파리살롱〉을 좋아해요. 주인공 윤이 차가운 레스토랑에 혼자 앉아있는데, 그게 딱 제가 글 쓸 때 느끼는 기분이에요.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이 문장에 기대어 사는 느낌이에요. 슬플 때면, 힘들 때면 스스로 나를 건져 올리겠다는 다짐을 끝내 붙들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끝까지 쓰고 싶어요.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데뷔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를 출간했고, 2015년·2017년 젊은작가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 그의 작품 활동은 좀 더 구체적으로 왕성해졌다. 2017년 경향신문 등에 연재한 엽편 19편을 모은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현대문학 핀시리즈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첫 번째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발표한 것. 《경애의 마음》은 2017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소설로, 초판만 2만 부를 찍었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 화재사건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애와 상수가 서로의 연결고리를 모른 채 ‘반도미싱’이라는 회사의 동료로 만나 각자의 방식으로 경애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다.

염은영은 책과 영화의 이야기를 글로 매만지던 사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에디터였다.
따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꺼워한다.

정치호는 기자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디자인 그룹 엇모스트의 대표이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민낯’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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